미국 고용시장 둔화 조짐이 확연해지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 기준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관측이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간 베이비컷(0.25%포인트 금리 인하)만 예상됐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빅컷(0.50%포인트 금리 인하) 전망까지 나왔다. 미국 민주당이 고용 악화의 배경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을 지목하며 정치 공세를 퍼붓자 트럼프 대통령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화살을 돌리며 후임 인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7일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8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은 2만 2000명으로 다우존스 전망치(7만 5000명)를 크게 밑돌았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1만 2000명 감소), 건설업(7000명 감소), 광업·벌목업(6000명 감소) 등 관세 충격이 큰 업종에서 고용 악화가 두드러졌다. 6~7월 고용 증가 폭도 종전 발표 수치보다 총 2만 1000명 하향 조정됐다. 7월은 6000건 상향 조정됐지만 6월은 1만 4000건 증가에서 1만 3000건 감소로 전환되며 2020년 이후 처음으로 고용이 줄어들었다. 연준 출신 클라우디아 샴 뉴센추리어드바이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고용시장은 정체 상태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고용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에리카 매켄타퍼 노동통계국장을 전격 경질한 후 처음 나온 보고서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켄타퍼 전 국장이 정치적 의도로 통계를 조작했다고 주장하며 보수 싱크탱크 출신 인사를 후임자로 앉혔지만 시장 흐름을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용 악화가 확실해지자 시장은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의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가 집계하는 9월 기준금리 인하 확률은 6일 100%까지 치솟았다. 4일까지만 해도 없었던 ‘빅컷’ 전망도 11%까지 늘었다. 고용 둔화 우려에 안전자산인 금 현물 가격도 5일 한때 전장 대비 1.4% 오른 트로이온스당 3596.6달러까지 오르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상호관세 부과와 이민자 단속 정책 이후 고용 냉각 흐름이 뚜렷해지자 민주당의 공세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8월 고용보고서 발표 직후 “트럼프의 무모한 관세와 혼란스러운 경제정책의 직접적 결과”라고 맹비난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1월 취임 직후 52%에서 이달 42%까지 하락했다. 핵심 공약인 일자리 창출에 차질을 빚으면서 내년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고용시장 악화를 파월 의장 탓으로 돌리며 책임 회피에 나섰다. 파월 의장이 금리를 내리지 않아 고용시장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 측의 주장이다. 후임 인선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차기 연준 의장 후보군을 케빈 해싯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 등 3명으로 압축했다고 밝혔다. 인선 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최종 지명 시점을 이번 가을로 못 박았다. 파월 의장 임기가 내년 5월까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기 지명을 분명히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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