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의료계에서 ‘쉐어드 디시전(shared decision)’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과거에는 환자들이 ‘선생님 마음대로 해주세요’라고 했지만 이제는 의사와 함께 치료 방안을 논의해야 합니다. 같은 암이라도 환자마다 체력·여건·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치료법을 스스로 선택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우용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은 2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환자가 치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성과가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사 입장에서는 다소 귀찮아질 수 있지만 환자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수록 생존율이 더 높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암 치료의 목적을 단순히 병을 없애는 것에 두지 않는다. 진단과 수술, 항암치료뿐 아니라 환자의 정서적·사회적 회복까지 살피는 것이 진정한 명품 병원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의 영문명에 ‘통합적’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Comprehensive)가 들어가는 이유다. 병원은 ‘첫 방문 클리닉’을 운영해 환자가 처음 병원에 왔을 때 느끼는 두려움을 덜어주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심리사회적 지지를 제공하는 암교육센터를 운영하는 등 첫 방문부터 치료 이후 삶의 질 회복까지 아우르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는 “병은 고쳤지만 환자가 사회에 돌아가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며 “치료를 잘 하는 병원은 좋은 병원이지만 환자의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명품 병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환자 중심 철학의 대표적인 사례가 다학제 진료다. 다학제 진료는 여러 전공의 전문가들이 한 환자의 치료 과정에 참여해 최적의 치료 방안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이 원장은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이 세계 3위 암병원에 오른 경쟁력으로도 다학제 진료를 꼽았다. 앞서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은 글로벌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 세계 병원 평가에서 암 분야 2년 연속 세계 3위, 4년 연속 아시아 1위를 달성했다. 해외 유수의 병원들에 비해 예산과 인력 등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뤄낸 성취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삼성서울병원은 국내 최초로 다학제 진료를 도입했다. 이 원장은 종합병원을 ‘중소기업중앙회’에 비유하며 “외과·내과 등 여러 과가 각자의 주장만 내세우면 최선의 치료가 나오기 어렵다”며 “각 과가 독립된 중소기업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협력이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협력 문화가 자리 잡아 환자 치료를 위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의 성과가 10년 뒤에도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진료·교육·연구의 3박자가 맞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좋은 인력의 유입이 필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는 “외과 지원율이 낮고 필수과는 기피되고 있다”며 “선의를 가지고 수술하다가 불가피한 사고가 나도 형사 고발까지 당하는 상황에서 누가 어려운 수술을 하겠느냐”는 지적이다. 그는 미국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에서는 ‘닥터(doctor)’보다 ‘서전(surgeon)’이라고 하면 더 존중받지만 한국의 필수과 의사들은 낮은 보상과 형사책임이라는 법적 위험까지 짊어지고 있다”며 “국가가 수가를 현실화하고 사회 구성원도 필수과 의사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후배 의사들에게 “내가 왜 의사가 됐는지를 잊지 말라”며 “의사의 존재 이유는 결국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환자와 사회가 원하고 스스로 꿈꾸던 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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