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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의료 시장의 현대판 고구려 VS 나·당 전쟁 [유석환의 AI 장기재생과 역노화]

유석환 로킷헬스케어 대표(전 셀트리온헬스케어 사장)

기존 의약품에 기술 덧씌운 에버그린 전략 '빅파마'  

초고령사회 천문학적 의료비·건강보험 재정 초래

바이오시밀러부터 세계 제약시장 승전보 여는 韓

AI 장기재생·디지털헬스로 '판' 바꿔 최종승자 돼야





세계 제약 시장은 거대한 지각변동이 벌어지는 격동의 전쟁터다. 세계 매출 상위 10대 제약사의 평균 신약 개발 비용은 10조~20조 원에 달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을 쏟아부어도 최종 성공 확률은 10% 미만에 그친다. 이에 글로벌 빅파마(Big Pharma)들은 깊은 딜레마에 빠졌다. 그러나 그들이 찾아낸 생존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혁신이 아닌 현상 유지에 가까워 보인다.

이들은 위험 부담이 큰 신물질 개발 대신, 기존 의약품에 새로운 기술을 덧씌워 특허 기간을 연장하는 이른바 에버그린(Evergreen) 전략을 펴고 있다. 약물의 투여 방식을 주사에서 경구용으로 바꾸거나 약효 방출 시간을 조절하는 DDS(Drug Delivery System)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는 혁신 신약이라기보다 사실상 ‘구물질의 변주곡’에 가깝다. 물론 환자의 편의성을 높인다는 명분은 있지만 본질은 특허 만료로 인한 수익 절벽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흥미롭게도 이 과정에서 한국과 인도의 몇몇 DDS 플랫폼 기업들이 글로벌 빅파마와 손을 잡고 연합군을 형성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이를 한국 제약의 미래라고 주장한다.

빅파마의 ‘에버그린’ 편승의 함정

하지만 이 전선은 마치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하려 했던 나·당 연합군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제약사 입장에서는 빅파마의 자본과 글로벌 규제에 대한 영향력, 그리고 연합군의 기술력이 합쳐져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결국 거대 제국의 질서에 편승하여 기술적 하청기지 역할에 머무르는 길일 수 있다. 제약 산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꾸는 주도권을 가져오지는 못하는 것이다.



바이오시밀러에서 승리한 K-바이오

반면 많은 한국의 바이오 기업들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좁은 내수 시장과 부족한 자본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동성과 혁신적인 기술력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이들의 모습은 강대국 수·당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고구려를 연상시킨다.

그 첫 번째 승전보는 바이오시밀러 산업에서 울려 퍼졌다. 특허가 만료된 휴미라, 레미케이드, 허셉틴과 같은 블록버스터 바이오 의약품의 연간 시장 규모는 수십조 원에 달한다. 한국의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 거대한 시장에서 오리지널 의약품과 동등한 효능을 증명하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점유율 30% 이상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단순한 ‘복제약’ 생산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기술과 품질 관리 능력을 입증한 사건이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연평균 17% 이상 성장하여 2030년에는 약 730억 달러(약 100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데 K-바이오는 이 시장의 확고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



AI 장기재생: 전세 뒤바꿀 오가노이드

역사가 보여주듯 전쟁의 승패는 단순한 군대의 크기가 아니라 혁신 전략과 무기, 그리고 누구와 동맹을 맺느냐에 따라 갈린다. 바이오시밀러가 고구려의 견고한 ‘안시성’이었다면 이제는 전세를 뒤바꿀 새로운 ‘비밀 병기’에 주목해야 할 때다. 그 핵심은 바로 AI 기반 장기재생, 오가노이드, 디지털 헬스케어, 그리고 유전자 치료제와 같은 차세대 기술 왕국이다.



로킷헬스케어와 같은 국내 혁신 기업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환자 맞춤형 피부, 연골 등을 재생하는 플랫폼을 현실화하고 있다.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 든 초소형 인공 장기 오가노이드(Organoid)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동물 실험을 대체하고 개인 맞춤형 치료법을 찾는 데 혁명을 일으킬 잠재력을 지닌다. 이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손상된 인체를 복원하는 개념의 전환을 의미한다.

또 소프트웨어를 통해 질병을 예방, 관리,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DTx)는 약물 중심의 의료 패러다임을 보완하고 있다. AI를 통해 환자의 생체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하여 질병을 예측하고 가상현실(VR)로 심리 치료를 하는 새로운 의료 서비스가 부상하고 있다.

질병의 원인인 유전자를 직접 교정하거나 면역세포(T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해 암을 공격하게 만드는 CAR-T 치료제 등은 과거에는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질병에 대한 완치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판’을 바꿔 최종 승자를 꿈꾸다

이러한 혁신이 시급한 이유는 인류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의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의 의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넘어섰고, 미국은 매년 4조 달러(약 5300조 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의료비 부담으로 나라가 붕괴되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결국 해답은 파괴적 혁신에 있다. 빅파마의 에버그린 전략은 거대한 제국의 몰락을 늦추려는 시간벌기에 불과하다. 지금이 바로 K-바이오가 ‘게임 체인저’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다. 고구려가 수십 년간 수·당의 대군을 막아냈던 것처럼 한국의 바이오 기업들도 혁신과 전략적 동맹을 통해 세계 제약 패러다임 전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우리나라는 바이오시밀러를 통해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을 낮춰 의료 시스템의 부담을 덜어주는 첫걸음을 뗐다.

이제는 바이오시밀러를 넘어 환자 맞춤형 장기재생, 오가노이드, AI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본격화할 때다. 적은 치료비로도 80~90%까지 치료 성공률을 끌어올리면서 미래 성장 동력도 키우기 위해서다. 이렇게 되면 기존 ‘판’을 완전히 바꾸며 최종 승자가 될 수 있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최종 승자가 됐을 때를 상상해보라. 지금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산업이 그랬듯 한국의 주요 산업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시작한 선구자들의 담대한 도전으로 만들어졌다. K-바이오의 새로운 신화는 이미 시작됐다.

서경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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