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전력이 필요한 인공지능(AI) 시대에 전력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블랙아웃(대정전)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AI 학습 과정에서 수만 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한 번에 켜졌다가 꺼지는 과정에서 전력 수요가 출렁일 수 있고 이를 전력망이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스페인 대정전’과 같은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찬국 한국외대 기후변화융합학부 교수는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된 ‘개원 39주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례 정책 세미나’에서 AI 시대 에너지 산업의 구조 변화를 예측했다.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박 교수는 “시뮬레이션 결과 AI 훈련에 들어가는 전력 수요는 순간적으로 50% 가까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데이터센터 용량이 크지 않을 때는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1기가와트(GW)급 데이터센터들이 이 같은 학습을 한다면 전력망에 상당히 큰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력 수요가 급격히 떨어져 공급과 불일치가 발생하면 주파수·전압 등도 불안정해지는데 이는 전력망에 큰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정전과 같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지난해 415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945TWh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교수는 “AI 데이터센터의 밀리초·초·분 단위 극심한 부하(사용량) 변동은 기존의 전통적인 전력망 설계 가정을 근본적으로 위협할 것”이라며 “대규모 부하의 동시 이탈이 연쇄 정전의 현실적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렬 한국전기연구원 차세대전력망연구센터장은 이와 관련해 “재생에너지 변동성은 그나마 구름이 얼마나 낄지, 바람이 얼마나 불지 등을 예측해 측정할 수 있는데 AI 데이터센터는 변동성을 예측하기 어렵고 부하도 너무 커 전력 계통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며 “수도권 신규 데이터센터를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풍부한 지방으로 분산할 유인책과 국가 기간망 확충을 통한 구조적 대응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원자력 기반 청정수소(핑크수소)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두 번째 세션에서 주제 발표를 진행한 안지영 에경연 수소경제연구단 연구위원은 “재생 전력에 대한 직접 수요가 높아 수소 생산용 전력 공급은 제한적인 국내 재생에너지 여건상 그린수소를 대량으로 생산하기는 어렵다”며 “원자력은 무탄소 전원이고 이미 국내에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된 경험이 있는 만큼 핑크수소가 국내 청정수소 산업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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