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 분리를 골자로 한 금융당국 개편안을 추진하지 않기로 하자 기획재정부 내부에서 반발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당초 개편안에 따르면 기재부에서 분리되는 재정경제부가 금융위원회의 국내금융정책을 이관받을 예정이었지만 개편안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예산 기능까지 사라진 재경부의 권한과 위상이 급격하게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25일 대통령실과 정부, 더불어민주당은 긴급 고위 당정대 회의를 열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수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의 정책·감독 기능 분리와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을 개편안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개편안이 백지화 됐지만 기획재정부는 애초 개편안대로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쪼개진다. 예산처는 예산편성 기능을, 재정경제부는 세제와 공공기관 관련 기능 등을 갖게 된다. 재정경제부 장관이 부총리를 담당하게 되지만 정책 수단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의 한 고위공직자는 “재경부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기능이 없고 경제 정책을 조율할 힘도 없다"며 “이 정도면 경제부총리 타이틀을 떼는 게 맞을 정도로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금융 기능 이관이 무산된 만큼 원래대로 다시 세제와 예산이 합쳐지는 게 정상이다”라고 덧붙였다. 한 기재부의 공무원은 “금융위가 정부 조직 개편에 반발했던 것처럼 기재부 후배들이 연판장이라도 써줬으면 한다”면서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재부의 여러 공무원들은 이같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수정안이 발표돼자 “허탈하다”, “우리도 상복 시위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내일 구내식당에선 육개장이 나오는 거냐”며 자조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기재부는 이날 오전 금융당국 개편 백지화 방안이 발표된 뒤 언론 공지를 통해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확정 시 경제정책 총괄 조정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민생경제 회복과 초혁신경제 구축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재정·금융당국과도 긴밀하게 소통하겠다”고 덧붙였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고위 당정대 회의 이후 브리핑에서 “정부 조직개편이 소모적 정쟁과 국론 분열의 소재가 돼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며 금융위 정책·감독 기능 분리 무산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의 정책·감독 기능 분리와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 등은 이번 정부조직법 개편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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