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US 오픈 때의 타이거 우즈를 보는 것 같아요.”
미국 골프채널의 저명한 해설자 브랜들 챔블리(미국)의 말이다. 28일(한국 시간) 미국 뉴욕주 파밍데일의 베스페이지 블랙 코스(파70)에서 계속된 제45회 라이더컵. 홈에서 첫날 3점 차로 뒤진 미국은 ‘제국의 역습’을 다짐했지만 이튿날 경기 뒤 점수 차는 7점으로 더 벌어졌다. 미국-유럽 남자프로골프 대항전인 라이더컵에서 유럽은 13년 만의 미국 원정 승리를 눈앞에 뒀다. 29일 있을 12개 싱글 매치에서 2.5점(2승 1무)만 따도 우승이다.
챔블리는 이틀 간 유럽팀의 경기력이 2000년 US 오픈의 우즈 같다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즈는 그해 US 오픈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릿수 언더파(12언더파)를 기록하며 2위와 15타 차로 우승했다. 4개 메이저 대회를 연속 우승한 ‘타이거 슬램’의 출발점이었다.
유럽은 이날 포섬(번갈아 치기)에서 3승 1패, 포볼(각자 공치기)에서 역시 3승 1패를 거둬 하루에 6승(2패)을 쌓았다. 이틀 합계 11.5대4.5로 크게 앞섰다. 라이더컵이 지금의 형식으로 열리기 시작한 1979년부터 7점 차는 이틀째까지 최다 점수 차 신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6점이다.
각 팀 에이스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세계 랭킹 2위인 유럽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포섬에서 토미 플리트우드(잉글랜드)와 호흡을 맞춰 미국팀 해리스 잉글리시, 콜린 모리카와를 3&2(2홀 남기고 3홀 차)로 격파했고 ‘절친’ 셰인 라우리(아일랜드)와 함께 나간 포볼에서는 저스틴 토머스, 캐머런 영을 2홀 차로 이겼다. 전날 1승 1무에 이은 3승 1무의 무패 행진이다.
올해 4월 마스터스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석권) 위업을 이룬 매킬로이는 라이더컵 원정 승리라는 또 하나의 이정표에 바짝 다가섰다. 그는 2012년 미국 원정에서 유럽이 1점 차 신승을 거둘 때도 3승 2패로 활약했었다.
스코티 셰플러(미국)는 연전연패로 세계 1위 체면이 말이 아니다. 2주 전까지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대회를 우승해 시즌 6승을 쌓고 절정의 기량으로 성조기를 달았는데 동료와 함께하는 경기 방식에서는 영 힘을 못 쓰고 있다. 러셀 헨리와 포섬에 나서 로버트 매킨타이어(스코틀랜드), 빅토르 호블란(노르웨이) 조에 1홀 차로 졌고 브라이슨 디섐보와 나간 포볼에서는 토미 플리트우드, 저스틴 로즈(잉글랜드)에 3&2로 또 졌다. 4전 전패다.
1967년 이후로 첫 4개 세션에 4패를 떠안은 선수는 셰플러가 처음. 남자 골프 세계 랭킹이 도입된 1986년 이후 세계 1위가 3연패 이상을 당한 것도 셰플러가 처음이다. 직전 대회인 2023년에도 2무 2패에 그쳤던 셰플러다. 셰플러에 대한 책임론과 함께 그의 활용법에 대한 비판이 대두하자 미국팀 단장 키건 브래들리는 “셰플러는 문제없다. 훌륭한 팀원”이라며 감쌌다.
한편 안 그래도 극성스러운 뉴욕 팬들의 응원과 야유는 미국의 충격적인 부진에 도를 넘어선 분위기다. 매킬로이가 이날 퍼트를 하려 어드레스를 선 순간 갤러리 사이에서 ‘F’로 시작하는 노골적인 욕설이 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매킬로이는 자세를 풀었다가 다시 쳐야 했다.
일부 미국 팬의 끈질긴 방해에도 매킬로이는 승리를 챙기며 보란 듯 포효했다. 라이더컵 통산 21.5점을 번 매킬로이는 닉 팔도(22점), 세베 바예스테로스(22.5점) 등 전설들의 포인트에 가까워졌다. 싱글 매치 상대는 다름 아닌 셰플러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