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노조가 최근 직원들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사퇴 여부를 묻는 문항을 포함한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지속된 기재부 홀대론에 더해 최근 금융정책 이관 무산으로 경제 컨트롤타워 기능까지 약화되자 조직 위상 추락에 대한 불만이 본격적으로 표출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일 관가에 따르면 기재부 노조는 구윤철 부총리의 사퇴 필요성을 묻는 문항을 포함한 설문조사를 이날까지 진행한다. 이번 조사는 QR코드 접속 방식으로, 장차관과 1급을 제외한 국장급까지 의견을 묻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기재부처럼 중앙부처 소속 공무원노조 가입 대상은 과장급 이상의 실질적 관리·감독 업무 담당자를 제외한 사무관·서기관에 한정된다. 하지만 이번 설문은 노조원을 넘어 사실상 조직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형태여서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재부 직원들의 불만은 지난달 25일 여당과 대통령실이 금융당국 개편안을 철회하면서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개편안 철회로 내년 1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분리에 맞춰 진행될 예정이었던 금융위원회의 국내금융정책 이관도 무산됐다. 예산 기능이 분리되더라도 금융정책 기능을 흡수해 경제 총괄 지위를 유지할 것이란 내부 기대도 사라졌다.
사태가 불거진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내부 게시판은 젊은 사무관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들끓고 있다. “가만히 있다가 우리만 바보 됐다”는 자조섞인 불만부터 “정책 설계자가 아니라 단순 집행자에 불과하다”는 무력감까지 분노와 허탈감이 뒤섞이고 있다. 조직 추락의 책임을 두고 간부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꼬집는 글들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구 부총리의 지시로 이형일 1차관이 내부 간담회를 열어 진화에 나섰지만 불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관가에서는 기재부의 이 같은 행동을 놓고 이례적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재부는 전통적으로 ‘모범생 관료 집단’으로 불리며 상부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보수적인 조직 문화가 뿌리 깊게 배어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기재부 패싱과 조직 분리 등 일관된 조직 힘 빼기 작업에도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금융정책 이관이 무산되면서 예산 기능을 잃고 사실상 세제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자 내부에 쌓였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번 사태가 단순한 내부 불만 차원을 넘어 정권 전반의 정책 추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설문 조사 결과에서 구 부총리의 사퇴 필요성에 대한 응답률이 높게 나올 경우 리더십에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어서다. 설문 결과에 구속력은 없지만,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관료 집단에서 수장의 퇴진 문제를 거론한 것 자체가 드문 사례라는 평가다.
일각에선 이같은 내부 반발을 최근 검찰청 폐지 방침에 반발해 집단행동에 나선 김건희 특검팀 검사들의 사례가 연상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권 차원의 조직 개편 결정에 대해 공무원 집단이 조직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반기를 드는 행동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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