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은 수 없이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졌다. 드라마틱한 인생과 캐릭터 때문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의 ‘골든’의 작곡가 겸 가수 이재의 외할아버지이자 원로 배우 신영균부터 이대근, 유인촌 전 문화제육부장관, 정진영('왕의 남자'), 김강우('간신'), 김지석('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등 당대 최고 연기파 배우들이 연산군을 연기했다. 때로는 희대의 폭군만이 부각되기도 했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연약한 남자, 간신을 비롯해 기생 장녹수에 휘둘린 군왕,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예인으로서의 면모 등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는 연산군은 그야 말로 어떻게 그리든 드라마틱한 캐릭터임에는 이견이 없다.
◇우리가 알던 연산군 아닌 귀엽고 청량하고 로맨틱하고 엉뚱한 소년미 가득한 이헌으로 재탄생해 시청률 20% 견인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연산군이 아닌 귀엽고 청량한 연산군이 연희군으로 재탄생해 그 어느 연산군보다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시청률 17.1%종영한 tvN 토일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 이헌(연희군) 역을 맡은 배우 이채민(사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연산군인 듯 아닌 듯, 귀엽고 엉뚱하면서도 애틋한 사랑의 의미를 아는 왕으로 다채로운 매력을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이채민 배우의 힘이 시청률 4%대에서 시작해 순간 시청률 20%까지 끌어 올렸다는 평가다. 이제 겨우 스물 다섯에 슈퍼 스타 반열에 오른 이채민을 1일 강남구의 한 키페에서 만났다. 이헌에게서 느껴졌던 소년미와 장난기가 가득한 모습 그대로인 그는 최근의 인기에 대해 “어안이 벙벙하다”고 했다. 실감을 못하다가 “기자님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실 때, 주변에서 ‘연산군’이라고 부를 때 인기를 비로소 실감한다”며 어색한 듯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인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저는 달라진 게 없고, 수치(시청률)가 올라가는 게 보이고, 팬미팅도 잡히기 시작해서 느끼고 있다. 굳이 장난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날 알아봐 줘’ 이러면서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라서"라며 말끝을 흐리며 여전히 쑥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인터뷰를 비롯해 팬들의 관심이 아직은 정말로 낯설게 느껴지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도 “'이헌 그 자체'라는 평가를 들을 때 처음 연기를 하려고 했던 이유 ‘쾌감’,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인기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너는 좋은 사람이니 그것을 잃지 말아라'라는 선배들 말 깊이 새겨
인기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감사한 마음이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인기는 그저 ‘감사함’이라는 것이다. 그는 “모르겠어요. 항상 나 자신을 잃지 말자가 목표고, 나 자신을 잃을 수 있는 상황, 막 화를 내거나 하는 그런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며 “인기라는 감사함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배를 비롯해 지인들이 조언을 새겨 듣고 있다고도 했다. “'폭셰' 전 작품들에서는 또래 배우들과 많이 촬영을 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은 유독 대선배님들이 많았어요. 인생, 연기에 대한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지금 네가 좋은 사람이니까 그것을 잃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농담 삼아서 ‘나 잊지 말아라'라고 하셨는데, 정말 제가 어떻게 선배님들을 잊겠어요?. 정말 제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구나, 더 귀기울일 때가 왔구나 생각했어요.”
◇임윤아, 김광규, 장광, 오의식 등 대 선배들에게 늘 배워
실제로 ‘폭셰’에서는 그가 막내다. 극 중 상대 역인 대령숙수, 연지영 역의 임윤아를 비롯해 죽마고우 임송재(오의식 분), 엄숙수(김광규 분), 제산대군(최귀화 분), 맹숙수(홍진기 분), 강목주(강한나 분), 심숙수(주광현 분), 민숙수(김현목 분), 공길(이주안 분), 창선(장광 분), 기미상궁 말임(박준면 분) 등 모두 선배들이다.
대선배들 틈에서 연기했지만 특유의 밝고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인해 오의식과는 ‘베프’가 됐다고도 했다. 그는 “지금 1분 거리에 계시다”며 “정말 ‘베프’"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를 많이 아껴주시고 챙겨주신다”며 “물론 윤아 선배님과도 친하지만 오의식 선배님과는 항상 같이 밥도 먹었고, 현장에서 웃음을 주시는 분이어서 힘들 때마다 재치있는 농담으로 웃음을 선사해주시고 힘도 많이 주셨다. 선배님이자 어른으로 제가 제일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배님이다"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이헌은 어떻게 탄생했나'…인물의 과거 서사 상상해보고 나와 공통점 찾고…나의 특징과 장점 활용해 거울 앞에서 다양한 표정 연습
대령숙수 연지영 숙수와의 호흡도 화제가 됐다. 이채민은 작품에 뒤늦게 투입되면서 짧은 시간에 캐릭터를 준비해야 했다. 그는 “선배님께서 먼저 인사도 해주셔서 저도 자연스럽게 선배님에게 편안함을 느끼고 서슴없이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며 “소녀시대부터 정말 너무 팬이었는데, 정말 많이 가르쳐주시고 편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다”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앞서 언급했듯 연산군은 수 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참고하려고만 한다면 참고할 만한 연기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새롭지만 납득이 가고 귀엽고 코믹하면서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연희군 역을 만들어낸 것은 오로지 이채민 배우의 상상력과 캐릭터 분석력이었다. 그는 연기할 때 인물이 과거 서사에 대해 상상을 해보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러면 어땠을까. 그때 느끼는 게 뭐였을까를 적어 본다. 과거가 모이고 모여서 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과거에 대해서 생각하고 베이스를 만들고나버부터 나와의 공통점을 찾는다. 그리고 나의 특징과 장점을 활용해 보려고 한다. 거울 앞에서 표정을 지어 보고 다양한 말투로 해보고 가장 맞는 것을 선택한다.”
◇그가 꼽은 명장면 셋…'과인은 너로 정했다' ‘나의 반려가 되어 다오. 아침마다 손수 비빈밥을 만들어 주마’…
특히 그는 이헌이 폭군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매력이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그는 “폭군에 국한된 인물이 아니라 로맨스도 있고, 드라마다 있다 보니 다양한 면을 분석하려고 했다”며 “음식에 진심인 점 등등 다양한 면모를 캐릭터에 해석해 반영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폭군의 셰프’는 수 많은 명장면과 명대사가 나온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에게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아 달라고 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주로 세 장면을 이야기해요. 사슴 고기를 먹고 지영을 끌어 당겨 ‘과인은 너로 정했다'라는 장면, 10부 엔딩 ‘나의 반려가 되어 다오. 아침마다 손수 비빈밥(비빔밥)을 만들어 주마'라고 하는 고백신, 재회신도 아름답게 나온 거 같아요. 애정하는 작품이다 보니 기억 나는 장면이 너무 많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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