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의 안부가 궁금해서라도 북극해 탐사를 멈출 수 없어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양은진 극지연구소 박사는 쇄빙선 아라온호 탑승을 앞두고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양 박사는 “북극 해빙(海氷)이 줄어들면 지구가 더 많은 태양열을 흡수하고, 이로 인해 수온과 대기 온도가 상승한다”며 “한반도 이상 기후를 예측하기 위해서라도 북극 연구는 무척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유일 쇄빙선 아라온호가 16번째 북극 연구를 마치고 지난 1일 광양호로 돌아왔다. 아라온호는 베링해협과 축치해, 동시베리아해 등 북극해 북서부 지역을 90일간 탐사했다. 아라온호는 북극해 생태계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55개 지점에서 종합 해양조사를 시행하고 해빙이 붕괴할 때 발생하는 소음도 관측했다.
두꺼워진 해빙
이번 탐사 결과 탐사단은 태평양측 해역의 바다 얼음, 해빙이 예년과 달리 두껍게 나타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해류와 바람의 영향 등 때문이다. 특히 알래스카 방면에서 흘러내린 차가운 해류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바람의 흐름이 따뜻한 공기를 북쪽으로 밀어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해빙이 두꺼워진 것으로 보인다. 북극에서 일어난 기후 변화가 얼마나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로 인해 탐사단은 지난해 설치해 둔 수중 관측 장비 중 일부만 수거할 수 있었다. 해저 동토층 지구물리탐사도 계획한 해역이 얼음으로 막혀 다른 곳에서 수행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홍종국 박사 연구팀은 동토층 발달이 예상되지 않았던 지역에서 지형 변화 흔적과 함께 얼음층의 존재를 확인하는 뜻밖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번 항해를 통해 탐사단은 북극의 단기 변화가 단순히 ‘감소’나 ‘증가’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위성 관측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북극해 해빙은 역대 최소 면적을 기록하다가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해역별로 차이를 나타냈다. 태평양 쪽 북극해에서 해빙의 계절적 감소는 더디게 나타난 반면, 같은 기간 대서양 쪽 해빙 분포 면적은 최저 수준이었다. 또한 아라온호가 2022년에 처음 목격한 강우 사례가 이번 항해에서 더 자주 관찰됐는데, 일부 구역에서는 비가 하루 종일 내리기도 했다. 빈번한 강우는 바다 얼음을 더 빠르게 녹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양 박사는 지난 16년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매해 여름마다 북극해 탐사에 참여했다. 그는 “해빙이 계속 줄면서 지난해에는 위도 80도에 이르러서야 해빙다운 해빙을 볼 수 있었는데, 올해는 태평양에서 북극해로 진입하는 초입인 위도 70도에서 두꺼운 해빙을 만날 정도로 이례적이었다”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는 북극 해빙의 큰 변동성과 면밀한 연구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해빙 붕괴와 탄소 순환의 변화
아라온호는 북극의 다양한 생물종 변화도 관찰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후 변화에 따른 북극 해빙의 조기 붕괴가 생물 펌프에 미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생물 펌프는 바다의 유기물이 심해로 가라앉으면서 탄소를 장기간 격리하는 과정을 말한다. 주로 해빙 내부와 바닥에 서식하는 광합성 미세조류인 ‘해빙미세조류’가 해빙이 녹을 때 바다로 떨어져 동물플랑크톤과 어류, 저서생물 등의 먹이가 되고, 생물펌프로 탄소 격리에 기여한다. 해빙미세조류는 북극해 전체 일차생산자의 최대 60%를 차지할 만큼 규모도 크다.
극지연 연구진은 아라온호가 2017년부터 6년간 북극 동시베리아와 추크치해에서 확보한 장기 데이터를 분석해 “북극 해빙 붕괴가 빨라지면서 해빙에 서식하던 미세조류가 떨어져 나가 심해로 가라앉는 침강 시점이 앞당겨졌고, 미세조류의 먹이인 영양염의 공급도 변하면서 생산량과 침강 지속성에도 변화가 나타났다”는 결과를 공개했다. 영양염이 충분할 때는 생산과 침강이 길게 이어졌지만, 부족할 경우 침강량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해당 연구에 참여한 양 박사는 “기후변화에 따른 북극해 해빙 감소는 단순히 얼음이 사라지는 차원을 넘어, 북극해 먹이망과 탄소순환 전반에 구조적인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며 “해빙 붕괴로 인한 조기 침강과 영양염 공급 감소에 따른 침강량 변화가 결국 심해로 격리되는 탄소의 양을 줄여 지구온난화의 가속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극 연구, 더 정밀하게
한편 극지연구소는 이번 항해를 포함해 과거 현장에서 확보한 정보와 원격 관측자료, 인공지능(AI) 분석 기술을 복합적으로 활용해 북극해 해빙 예측 정확도를 높이는 새로운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북극항로 개척에 필수적인 안전 확보 등 실질적 기반을 마련할 예정이다. 신형철 극지연구소 소장은 “북극의 변화를 완전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과학 연구를 통해 최대한 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그간 축적된 역량과 경험을 바탕으로 변화무쌍한 북극 연구의 미래를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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