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관세 협상의 최대 쟁점이었던 총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펀드 가운데 2000억 달러를 현금 투자하되 연간 한도를 200억 달러로 제한하기로 29일 합의했다. 관세 협상 타결로 한국산 자동차·부품 관세가 25%에서 15%로 조정됨에 따라 국내 자동차 업계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여기에 양측이 대미 투자에 대한 ‘상업적 합리성’을 문건에 명시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로 올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한 후 210일 만에 한미 관세 협상이 마침표를 찍게 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경북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국과의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고 밝혔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국제미디어센터 브리핑에서 “대미 투자펀드 3500억 달러는 현금 투자 2000억 달러와 조선업 협력 1500억 달러로 구성된다”며 “일본이 미국과 합의한 5500억 달러 금융 패키지와 유사한 구조이지만 우리는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 달러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또 “원리금이 보장되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양해각서(MOU)에 명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MOU는 문안 마무리 단계로 안보 분야 팩트시트까지 포함해 빠르면 이틀 안에 공개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실장은 “투자 약정은 2029년 1월까지지만 실제 조달은 장기간 이뤄지고 시장 매입이 아닌 방식으로 조달해 외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더 완화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원리금 상환 전까지 한미 간 수익을 5대5로 배분하되 20년 내에 원리금을 전액 상환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면 수익 배분 비율도 조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품목관세 중 의약품·목재 등은 최혜국 대우를 받고 반도체의 경우 경쟁국인 대만과 대비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김 실장은 “쌀·쇠고기 포함 농업 분야 추가 개방도 방어했다”고 전했다.
김 실장은 "어제(28일) 저녁까지도 전망이 밝지 않았다"며 "우리로서는 (회담)당일(29일) (논의가) 급진전됐다"고 말했다. 이어 "협상 과정이라 상대방에 대한 말씀을 드리기 어려운데 우리가 양보했으면 그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는 원칙을 갖고 누차 말씀드린 대로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국익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원칙대로 임했다"고 했다.
日은 없는 ‘연 투자 한도’ 200억 달러, "외환위기 위험 최소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현금 투자 비중과 방식을 놓고 팽팽히 맞섰던 한미 양국이 29일 전격적으로 합의에 이른 배경에는 양측이 실리와 명분의 균형점을 찾은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에 합의한 대미 금융 투자 3500억 달러는 일본이 미국과 체결한 5500억 달러 금융 패키지와 유사한 구조이지만 한국은 미일 합의에는 없던 연간 200억 달러의 투자 한도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현금 투자액은 미국의 요구인 2000억 달러를 수용해 명분을 주되 투자 약정 기한을 2029년 1월까지 연장하고 달러 조달의 상한선을 설정해 그동안 우려됐던 외환시장의 안전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한미 정상회담 이후 브리핑을 통해 “미국과 대미 투자 3500억 달러 중 현금 투자는 2000억 달러, 조선업 투자는 1500억 달러로 하기로 세부 내용에 합의했다”면서 “다만 외환시장 영향을 고려해 2000억 달러 현금은 한 번에 투자하는 것이 아닌 연간 2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간 200억 달러의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투자하기 때문에 우리 외환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에 있으며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개월 줄다리기 협상 끝에 극적 타결
2000억 달러 현금 美엔 명분 내주고
韓은 200억달러 年한도 '실리' 챙겨
2000억 달러 현금 美엔 명분 내주고
韓은 200억달러 年한도 '실리' 챙겨
그동안 현금 투자 비중과 투자 기간은 한미 관세 협상의 최대 쟁점이었다. 한국은 7월 말 미국과 상호관세 및 자동차 품목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가로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현금 투자 비중과 투자 기한·방식 등을 놓고 의견 차이가 이어졌다. 우리 측은 투자금 대부분을 대출·보증 형태로 하겠다는 입장이었고 미국은 전액 현금을 선불로 투자해야 한다며 맞섰다.
이후 양국은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은 연간 250억 달러씩 8년에 걸쳐 총 2000억 달러를, 한국은 10년에 걸쳐 연간 150억 달러를 제시하며 접점을 찾아갔다. 결국 이날 정상 간 만남에서 미국은 현금 투자액(2000억 달러)의 명분을, 한국은 연간 한도(200억 달러)라는 실리를 취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특히 우리 측은 외환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최대한 조달 가능한 연간 달러 규모를 200억 달러로 추산하는데 이번 합의에서 마지노선을 지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간 현금 투자 한도는 일본에 없는 조건으로, 5500억 달러 전액을 현금으로 투자한 일본의 약 36% 수준에 그친다. 정부는 외환보유액을 쓰지 않고 외환 자산의 이자·배당 등 운용 수익을 통해 현금 투자 재원을 마련할 방침이다.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추진하려 했던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은 이번 합의에서 제외됐다.
현금 투자 기한을 실질적으로 연장하는 효과가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도 눈에 띈다. 한국은 2000억 달러의 현금 투자를 2029년 1월까지 하기로 약정했지만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납입 시기와 금액 조정을 미국에 요구할 수 있는 별도 근거를 마련했다. 김 실장은 “현금 투자에 필요한 달러는 외환시장에서 매입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을 쓸 것”이라며 “만약 외환시장의 불안이 우려되면 납입 시기와 금액을 조정해 달러 조달이 장기에 걸쳐 이뤄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2029년 1월까지 투자기한 약정했지만
외환시장 불안시 美에 조정 요구 마련
실질적으론 장기에 걸쳐 달러 조달 효과
상업적 합리성도 MOU 1조에 명확화
외환시장 불안시 美에 조정 요구 마련
실질적으론 장기에 걸쳐 달러 조달 효과
상업적 합리성도 MOU 1조에 명확화
원금 회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안전장치도 확보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수차례 강조한 ‘상업적 합리성’을 양해각서(MOU) 1조에 명시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 실장은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추진하기로 하고 이를 MOU 문안에 명시하기로 했다”며 “투자위원회 및 협의위원회를 가동해 양국이 투자할 가치가 없는 프로젝트의 경우 걸러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소개했다.
현금 투자 비중 못지않게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수익 배분은 원리금 상환 전까지는 한미가 수익을 5대5로 배분하기로 하고 20년 이내에 원리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하면 수익 배분 비율을 조정하기로 상호 양해가 이뤄졌다. 투자 사업 프로젝트별로 회수 속도와 현금 흐름에 따라 우리 측이 더 많은 수익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미국 측은 원리금 회수 뒤에는 수익 배분을 9(미국)대1(한국)로 나누는 방안을 주장해왔는데, 이에 대해서는 미 측 주장이 관철될 가능성이 큰 상황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특정 프로젝트에서 손실이 나더라도 다른 프로젝트에서 이를 보전할 수 있도록 ‘우산 형태’로 특수목적법인(SPC) 구조를 설계해 손실 리스크를 크게 낮췄다”고 설명했다.
대미 투자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가급적 한국이 추천하는 한국 업체를 선정하고 한국인 매니저를 채용하기로 한 점도 합의에 포함됐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가 원했던 금액은 아닐지언정 시장 안정 장치는 잘 관철했다고 본다”며 “다만 실제 MOU에 ‘상업적 합리성 추구’에 대한 것이 얼마나 실질적인 문구로 담기는지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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