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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값싼 탄소가 기후테크 혁신을 멈춘다

■엄지용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한국 배출권 가격 中보다도 낮아

수익 불투명…기업 상용화 발목

배출권거래제 정상화 서둘러야





올해 노벨화학상은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하거나 전환할 수 있는 금속유기구조체(MOF)를 개발한 화학자들에게 돌아갔다. MOF를 비롯해 탄소 감축·제거와 탄소 시장 확대에 기여하는 기후테크 전반에 전 세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1억 달러의 상금을 건 엑스프라이즈(X-Prize)에 수많은 스타트업이 몰렸고 퓨로어스(Puro.earth)는 탄소 제거 프로젝트를 거래 자산으로 만들어 1톤당 100달러 이상에 판매하며 새 시장을 열었다. 세계는 이제 기후위기를 경제의 신성장 동력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신성장 동력은 한국에 절실하다. 저출산·고령화와 수출 둔화 속에서 성장률이 1%로 떨어진 현실은 양적 성장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질적 전환이다. 기존 산업을 혁신하고 저탄소 기술로 새로운 경쟁력을 구축하는 ‘질적 성장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그 중심에는 기후테크가 있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녹색금융 활성화, 민간 자본 유입 촉진 정책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테크가 산업으로 성장하려면 정책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 투자의 수익성을 뒷받침할 시장 신호, 즉 ‘탄소 가격’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기업이 감축에 투자하려면 충분하고 예측 가능한 가격이 보장돼야 하며, 그래야 투자와 성장의 선순환이 형성된다. 하지만 한국의 배출권 가격은 1톤당 약 1만 원으로 유럽연합(EU), 미국 등은 물론 중국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느슨한 총량 설정과 경기 둔화로 공급이 과잉되며 탄소 가격이 급락해 감축 투자의 유인이 약화됐다. 결국 많은 기후테크 기업이 상용화 단계에서 자금 조달에 실패한 채 멈춰 서 있다.



해외는 이미 가격이 혁신을 이끌고 시장을 확대하는 구조를 갖췄다. EU는 시장안정화예비분(MSR)으로 잉여 배출권을 흡수해 가격을 5유로에서 80유로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이에 민간투자가 급증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투자 인센티브와 자발적탄소시장(VCM)의 확대가 맞물리며 애플·아마존 등 빅테크가 수억 달러 규모의 감축 실적을 구매하는 보상 체계를 구축했다. 그 결과 지난해 미국의 기후테크 투자액은 250억 달러에 이르며 수백 개의 스타트업이 상업화 단계로 진입했다.

한국도 기후테크 산업을 키우려면 탄소 시장 정상화가 필수다. 정부는 이를 반영해 곧 제4차 배출권거래제를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계획은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을 막고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맞춰 총량 축소와 유상 할당 확대를 추진하는 등 방향성 측면에서 분명한 진전을 보여준다. 이런 조치들이 시장 정상화의 토대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갈 길이 있다. 시장 신뢰 회복, 유동성 확보, 정책 일관성 등 구조적 과제들도 병행될 때 탄소 시장은 기후테크 혁신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기후테크는 보조금이 아닌 시장 신호로 성장하는 산업이다. 정부의 역할은 무조건적 지원이 아니라 자생적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런 기반이 마련돼야 혁신적 아이디어가 기후테크 스타트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탄소 가격을 바로 세워야 한다. 값싼 탄소는 혁신을 멈춘다. 한국 경제의 새 성장 공식을 세우기 위해 배출권거래제 정상화가 성공적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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