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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케임브리지, 亞 최초 겸직 허용…'양자 신약' 개발도 물꼬

■첨단산업 전쟁 위기의 대학 -<3> 숨막히는 인재전쟁

해외석학에 이례적 이중 소속 혜택

융합연구 확장·투자 협력 등 활발

재정 한계 탓 추가 사례는 미지수

연봉 보장해도 행정업무 등 과제

"장기 정착 유인책없인 이탈 가속"


연세대와 케임브리지대의 공동 연구센터 설립 추진은 한 명의 해외 석학 영입이 대학의 경쟁력 향상에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다만 이번 성과가 국내 대학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연봉과 연구 환경 면에서 해외 명문 대학들과의 격차가 여전한 탓에 비슷한 수준의 인재 영입이 잇따라 나오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다.





13일 대학가에 따르면 한남식 케임브리지대 밀너연구소 인공지능연구센터장의 영입에는 수차례에 걸친 연세대 측의 집요한 설득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연세대는 “양자 연구 역량을 바이오 분야에 집중시키겠다”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며 합류를 이끌어냈다. 연세대가 최근 확보한 ‘IBM 퀀텀 시스템 원’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면 한 교수가 연구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10년간 매년 약 6억 원을 지원받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해외 우수 과학자 유치 사업(BP+) 패키지도 힘을 보탰다. 한 교수의 합류는 국내 대학 전임 교원이 해외 대학에도 이중 소속을 둔 이례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자교 외국인 교수가 원할 경우 모국에서의 겸직을 허용하는 케임브리지대에도 아시아권 최초 케이스로 알려졌다.

이후 연세대와 케임브리지대 간 협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양측이 2027년 개소를 목표로 구상 중인 공동 연구센터는 양자기술을 줄기세포·인공지능(AI)·신약 개발에 접목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향후 기술이전, 투자 협력,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까지 포괄하는 실질적 협력 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4월에는 ‘양자 분야의 학술 교류와 연구 협력 강화’를 취지로 두 대학의 양해 각서가 체결된 바 있다. 연내 기술이전과 투자 협력 분야에서의 논의도 추가로 이뤄질 예정이다. 케임브리지 소속 교수들의 단기 방문 연구나 강연 프로그램도 추진된다. 이 과정에서 한 교수는 양측을 잇는 다리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향후 한국에서 이 같은 사례가 반복해 나오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최근 국제적으로 ‘해외 인재 영입전’이 벌어지는 상황에 국내 대학은 특히 연봉을 포함한 처우 면에서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한국연구재단의 조사 결과 국내 외국인 연구자들의 탈(脫)한국 이유로 ‘낮은 연봉’을 꼽은 이들이 23.2%로 1위를 차지했다. 다른 응답들 가운데 ‘부족한 생활 지원(21.1%)’과 ‘낙후된 연구 환경(14.7%)’도 국내 대학의 재정 여력 부족과 관련이 있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영입은커녕 이탈만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홍성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AI 학자 초봉이 해외에서는 수십억 원대에 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국내 대학은 1억 원 안팎에 머문다”며 “핵심 인재일수록 미래가 불확실한 한국보다는 미국·중국·유럽 등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나마 없는 여력을 모아 파격적인 대우를 보장하더라도 기존 교수진과의 형평성 문제와 그로 인한 박탈감은 넘어야 할 산이다. 국내 대학 교수의 임금은 호봉제하에서 단과대별로 설정한 인센티브가 붙는 구조다. 서울 소재 사립대학에서 재정 관련 업무를 맡은 한 교수는 “해외 이공계 교수들을 영입하기 위해서는 있는 기금이라도 짜내 적절한 유인책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수”라면서도 “서로 내부 반발을 우려하는 탓에 단과대들끼리조차 임금 체계 공유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처우뿐만 아니라 한국 특유의 연구 문화도 해외 학자들의 영입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꼽힌다. 해외 학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대학은 행정 업무가 과다한 데다 연구 과정도 보고서 쓰다 끝난다”는 인식이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자가 연구에 투입 가능한 시간은 전체의 37.3%에 불과했다. 나머지 시간은 복잡한 행정 업무와 과도하게 편성된 강의 등에 사실상 빼앗기는 상태다. 전체 근무시간의 49.8%가 순수 연구에만 투입되도록 보장하는 미국과는 격차가 있다. 윤태식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반도체소재부품대학원장은 “일례로 1명이 10대 이상의 연구 장비를 담당하는 UNIST와 달리 세계 유명 대학 대부분은 3~4대 정도만 관리하도록 해 차이가 크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해외 인재가 ‘장기간 머물 이유’를 만드는 구조적 개편 없이는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대학은 우수 연구자를 데려와도 장기적으로 성장·정착할 경로 자체가 없어 소모적 구조가 고착돼 있다”며 “이런 생태계에서는 영입 성과가 쌓이기보다 이탈이 더 빠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김현철 연세대 의대 겸 홍콩과기대 경제·정책학과 교수는 “이미 수십 년이 지난 성과를 바탕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석학보다도 40~50대의 전도유망한 학자 몇 명을 데려와 연구 생태계를 만드는 방안이 국내 학계에는 효과적”이라면서 “연구비를 포함한 인센티브의 확대는 이들을 끌어들이는 작업에 필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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