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의 실질 가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로 추락하는 등 원·달러 환율 불안이 커지자 정부가 ‘국민연금 활용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24일 보건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과 4자 협의체를 구성·가동하면서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 과정에서 외환시장 영향 등을 점검하는 첫 회의를 가졌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 거래일보다 1.5원 오른 1477.1원이다. 외국인 순매도에 6거래일 연속 상승하면서 7개월 반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이에 정부는 국민들의 노후 안전판인 국민연금까지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외환시장에 등판시킨 것은 최근의 고환율 장기화 추세가 과거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심상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올 8월 말 기준 총운용자산 1322조 원 가운데 58.3%를 해외 주식·채권에 투자하는 큰손이다. 국민연금은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환 헤지를 최소화하고 해외투자에 필요한 달러를 국내 외환시장에서 조달하는데 이는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이날 4자 협의체에서도 국민연금의 운용 수익률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환 헤지 기준·비중 변경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환율 방어에 동원하는 것은 정공법이 아닐뿐더러 국민연금 운용의 독립성을 해치고 국민의 노후가 달린 연금 수익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게다가 최근 고환율은 경상수지 흑자에도 자본이 유출되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다 길어진 한미 금리 역전과 확장 재정 정책에 따른 대규모 유동성이 고환율을 이끌었다. 한미 관세 협상에 따른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와 달러 유출 우려, 외국인투자가의 국내 증시 이탈, 서학개미의 해외투자 증가 등도 고환율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국민연금 동원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환율 안정 대책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 완화로 경제 활력을 높이고 기업의 국내투자를 유도해 생산성과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강해져야 고환율 불안이 고물가 등 실물경제 충격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고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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