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 H200의 대중국 수출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중국 내 검증된 고객에게만 수출을 허용하고 판매 금액의 25%는 관세로 징수하겠다는 조건이다. 다만 ‘반도체 자립’에 나선 중국이 H200을 얼마만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 시간) 트루스소셜을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미국이 강력한 국가 안보를 유지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엔비디아가 H200을 출하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라고 통보했다”며 “시 주석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H200 가격의) 25%는 미국에 지불될 것”이라며 “이 접근 방식은 AMD·인텔 등 다른 위대한 미국 기업에도 적용된다”고 적었다. 단 최첨단 AI 칩인 블랙웰과 내년 출시될 예정인 루빈은 합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H200은 대만에서 만들어져 보안 검사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선적된 후 다시 중국으로 수출된다. 25%의 관세는 대만에서 미국으로 들어올 때 부과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중국에 블랙웰을 수출할지, 아니면 AI 칩 수출을 전면 금지할지 고심하던 트럼프 행정부가 내린 절충안이라 보고 있다. 앞서 엔비디아는 10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블랙웰 저성능 버전의 대중국 수출을 추진해왔지만 국가 안보를 해친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하지만 엔비디아 AI 칩의 대중국 수출을 전면 금지할 경우 화웨이 등 중국 업체가 자국 시장을 독점하며 기술 발전 측면에서 빠르게 치고 올라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결국 H200 수출을 승인했다.
아울러 검증된 고객에게만 판매하고 25%의 관세를 매긴 것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을 달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마가의 대부 격인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중국 딥시크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반도체 수출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가 안보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검증된 고객에게만 수출을 할 것이며 관세 수입도 올려 미국 납세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내세웠다.
다만 중국이 H200을 얼마나 수입할지는 불투명하다. 미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크레이그 싱글턴 중국담당 선임국장은 “중국 기업들은 H200을 원하지만 중국 정부는 자국산 반도체 사용 장려라는 자존심을 세우려 하고 있다”며 “중국이 어떻게 반응할지 불확실하다”고 짚었다. 중국 정부가 엔비디아 반도체에 ‘백도어(비밀 접근 통로)’가 있을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점도 H200 수입을 가로막는 요소다. 반면 중국산 칩에 비해 월등한 성능을 갖춘 만큼 중국 업체들이 구매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크리스 맥과이어 외교관계협의회(CFR) 연구원은 “H200은 중국이 만드는 어떤 반도체보다도 뛰어나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멸적인 행위”라고 분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lassic@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