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내 발표를 예고했던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VCM) 활성화 방안이 답보 상태에 놓였다. VCM은 기업의 수익 확보와 탄소 감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았으나 수요 창출과 검인증 신뢰성 확보 문제 등 선결 과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 제도 설계에 난항을 겪고 있다.
11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기획재정부는 연내 내놓기로 했던 ‘한국형 VCM 활성화 방안’ 발표를 내년으로 연기하고 추가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관계 부처 간 협의가 더 필요한 부분이 있어 발표는 내년으로 미뤄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VCM은 개인·기업·정부 등 다양한 주체가 자발적으로 탄소를 감축하고 그 실적을 탄소 크레디트로 부여받아 시장에서 거래하는 모델이다. VCM은 탄소 감축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또 다른 이윤 창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대표적으로 전기차 기업 테슬라는 2024년 한 해 동안 탄소 크레디트 판매로 27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17억 9000만 달러) 대비 약 54% 증가한 수치이자 지난해 테슬라 순이익의 40%를 웃도는 규모다. 글로벌 컨설팅 그룹 맥킨지는 2030년 VCM 시장 규모가 2020년 대비 최소 15배 성장해 약 5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한국에서는 탄소 크레디트 거래를 활성화하기 쉽지 않다는 진단이 나온다. 우선 탄소 감축 제도가 ‘배출권 거래’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는 점이 문제다. VCM이 감축한 탄소를 인증받아 ‘크레디트’로 판매하는 인센티브 모델이라면 탄소배출권 시장은 사전에 배출권을 배부받은 뒤 기업들이 탄소를 배출할 권리를 사고파는 ‘선규제 후거래’ 방식이다.
탄소배출권 제도는 2015년 처음 도입된 후 지난해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증권(ETN) 개설이 허용됐다. 여기에 올해 11월부터는 증권사를 통한 위탁매매 제도도 도입되는 등 산업·발전 부문 탄소 배출 규제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에 지난해 탄소배출권 시장의 연간 거래 대금은 9434억 원을 기록해 전년(7952억 원) 대비 18.6% 증가하는 등 매년 확장하는 추세다. 탄소 배출 감축이 필요한 기업 대부분이 이미 배출권 시장을 적극 활용 중인 만큼 VCM 시장으로 기업들의 참여를 유인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탄소 감축에 대한 검인증 신뢰도 역시 걸림돌로 지목된다. 자발적 탄소 배출 감축분을 크레디트로 인증받아 판매하는 형태이므로 거짓으로 크레디트를 발행하는 경우 ‘그린워싱’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린워싱은 실제로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제품이나 제도를 친환경으로 포장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실제로 글로벌 VCM 시장에서도 감축량 과대 계상, 이중 계산 등 품질 논란이 반복돼왔다. 산림 벌채 위험이 전혀 없는 열대우림에 ‘보존 프로젝트’를 설정해 크레디트를 인증했던 민간 기관 베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가 검인증 체계를 운영하고 있지만 감축 실적을 어떻게 산정하고 어떤 기준으로 크레디트를 부여할지에 대한 정부 차원의 통일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검인증 기준이 불명확할 경우 기업의 참여 유인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배출권 거래 제도의 보조 수단으로 VCM 활성화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김녹영 대한상공회의소 탄소감축인증센터장은 “탄소 감축을 규제 시장만으로 달성하려 하기보다 기업이 인센티브를 통해 자발적으로 감축에 나설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VCM 시장이 활성화되면 기업의 감축 실적이 추가적인 경제적 가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선 법무법인 린 탄소전략연구소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포럼에서 “민간 주도 생태계 조성과 동시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탄소 크레디트의 생성·유통·소멸의 전 주기별 무결성 기준을 마련해 그린워싱 문제를 해결하면 VCM 시장 활성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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