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한 재미 교포에게서 거북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요즘 미국 교민 사회에서 한국이 주요국 중 제일 빨리 무너질 나라로 꼽힌다는 얘기다.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문제일 듯하다며 그는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2년 전 자신의 강남 소재 아파트를 20억 원대에 팔았는데 최근 30억 원대로 뛰었고 매각 대금을 달러로 환전하지 않아 큰 환차손까지 봤다는 것이었다. 근거 없는 조국에 대한 험담이 언짢았으나 부동산·고환율 걱정이 얼마나 크면 그럴까 싶기도 했다.
사실 한국의 몰락을 경고한 해외 석학은 더러 있다. 미국의 글로벌 전략가 피터 자이한은 “한국은 세계화의 종말, 지정경학적 불안전성, 인구의 급격한 감소 등으로 여러 쇠락 과정을 겪고 있는 국가 중 하나가 아니라 그 자체를 대표하는 정확한 사례”라고 직격했다. 노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명예교수는 2023년 TV 방송에서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국내의 자체 진단도 암울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신년사에서 “(올해) 부문 간 회복 격차가 커 체감경기와의 괴리가 클 수 있다”며 경제 양극화를 깊게 하는 ‘K자형 회복’을 우려했다. 1년 전 이맘때는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내리막 포비아’라는 신조어로 초고령사회와 탈산업화를 맞는 한국 사회의 위기 상황에 경종을 울렸다. 그는 “내리막을 평지로 만들 리더십을 만들어내거나 내리막을 두려움 없이 헤쳐나갈 정신의 힘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초고령사회 첫해를 맞은 한국의 과제”라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변한 게 별로 없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요즘 성장과 대전환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는 것이 리더십 회복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올 한 해를 붉은 말처럼 힘차게 달리는 대한민국 대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면서 ‘성장’을 무려 41번이나 반복했다. 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지속 가능한 모두의 성장은 미래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성장과 대전환은 반복적인 언급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냉철한 현실 인식과 강한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치솟는 물가·환율의 공포에 짓눌린 서민의 고통과 기업들의 불안을 직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울경제신문이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환율이 다시 1450원을 넘을 경우 대기업의 70%가 버티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더 나아가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규제 혁파와 구조 개혁을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주52시간 근무제 완화, 가업 상속세 인하 등 기업 투자와 혁신을 북돋울 수 있는 정책을 적극 앞세워야 성장의 주역인 기업들이 마음껏 뛸 수 있게 되고 경제에도 다시 활기가 돌 것이다.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경제·사회 시스템의 근간을 바꾸는 구조 개혁도 본격화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 성장과 국가 경쟁력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나라의 흥망을 가를 열쇠는 경제에 있다. 중국 제왕학의 고전 ‘정관정요’는 “백성이 피폐하면 임금도 멸망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1992년 미국 대선 때의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은 경제가 그 어떤 정치·군사적 업적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당시 그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선거 구호로 파나마의 군부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끌어내리고 걸프전 승리까지 이끌어 영웅시됐던 현직 대통령 조지 부시를 꺾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기습과 중국의 대만 포위 군사훈련 등으로 새해 벽두부터 국제사회가 혼란스럽다. 다시 약육강식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고개를 들고 ‘역시 강한 군사력만이 나라를 살리는 최선의 힘’이라는 다짐도 곳곳에서 들린다. 그러나 미래학자 폴 케네디가 39년 전 쓴 ‘강대국의 흥망’에서 내린 결론은 다르다. 150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합스부르크왕가·대영제국·프랑스제국·러시아제국·미국 등 여러 강대국의 정치·경제적 흥성과 패망을 분석한 이 책에서 그는 국가 흥망의 가장 핵심적 요소로 ‘경제력’을 꼽았다. 병오년 새해 우리가 적토마처럼 경제성장에 매진한다면 ‘한국이 가장 빨리 무너질 나라’라는 투의 불쾌한 험담은 두번 다시 듣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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