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회충약 먹은 게 언제야?"
얼마전 신년회에서 한 대학 동기의 질문을 계기로 '구충제'가 때아닌 화두가 됐습니다. 이 친구는 자타공인 '회 마니아'입니다. 9월엔 전어와 고등어, 12월엔 대방어와 숭어 등 제철 수산물을 줄줄이 꿰고 있는 데다 주말마다 맛집을 찾아다닐 정도죠. 심지어 남편은 일주일에 1~2번은 육회를 찾을 정도라, 집에서 가스레인지 불을 켤 일이 거의 없다나요? 그런데 지난주부터 남편이 "항문 주변이 가렵다"며 엉덩이를 긁는 모양새가 영 찝찝해서 구충제를 복용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사연을 들은 동기들 사이에선 "날음식을 그렇게 먹더니 기생충이 생긴 것 아니냐, 당장 구충제를 먹어야 한다"는 의견과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에 무슨 회충이냐, 안 먹어도 된다"는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학교에서 채변을 받아 기생충 검사를 하고 구충제를 나눠주던 시절이 있었죠. 화학비료나 농약 사용이 늘어난 데다 1970년대부터 추진된 기생충 박멸 사업의 효과로 85%에 육박했던 기생충 감염률은 2010년대 들어 2% 대로 떨어졌습니다. 1995년 학생 분변검사가 중단되며 구충제를 챙겨먹던 습관도 자연스럽게 사라졌죠.
그러나 구충제를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하긴 이릅니다. 질병관리청이 5대강 주변 장내 기생충 감염 유행지역 39개 시군구 주민 2만5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장내 기생충 양성률은 4.4%로 일반적인 인식보단 높게 나타났습니다. 장내 기생충은 담관암·간암의 원인이 되는 간흡충을 포함해 회충, 편충, 요충, 폐흡충, 장흡충 등 총 11종으로 4급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특히 60대 남성의 경우 기생충 양성률이 8.9%로 전체 평균보다 2배가량 높았는데요. 대체로 생식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게 질병청의 설명입니다. 실제 유기농 채소나 생선회, 육회 등 날음식 섭취가 늘어나고 반려동물을 통한 감염 등이 우려됨에 따라 일년에 한 두번은 구충제를 챙겨먹어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요충, 회충 등에 감염되도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병원 진료를 받지 않다보니, 실제 기생충 감염률은 보고된 통계치보다 훨씬 더 높을 수 있다는 거죠. 반면 별다른 진단 없이 구충제를 복용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둘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우리 몸 속의 기생충을 제거하고 기생충 감염을 치료하는 약을 통틀어 구충제라고 하는데요. 보통은 ‘알벤다졸’, ‘플루벤다졸’ 등 의사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가리킵니다. 이들 약제는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편충 등의 기생충을 죽일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즉 모든 기생충을 잡는 만능약이 아니라는 거죠. 육회를 즐기거나 유기농 쌈 채소를 충분히 씻지 않고 먹었을 때 감염될 수 있는 회충, 요충, 편충은 알벤다졸로도 충분히 관리됩니다. 그러나 강에서 나는 민물고기 회를 즐겨먹는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흔히 간디스토마라고 불리는 간흡충은 알벤다졸이나 플루벤다졸을 먹어선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죠. 이러한 일반약 구충제는 기생충이 포도당을 흡수하지 못하게 만들어 사멸시키는데, 입 주위에 흡착판이 달린 식품매개 기생충에는 효과가 현격히 떨어집니다. 흡충을 제거하려면 프라지콴텔과 같이 약효가 강한 구충제를 복용해야 하죠. 다만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반드시 의사의 처방과 진단이 필요합니다. 드물게 바다 생선으로 감염될 수 있는 고래회충(아니사키스)의 경우 알벤다졸은 물론 프라지콴텔도 듣지 않아, 내시경으로 직접 기생충을 뽑아내야 하죠.
예방 목적으로 알벤다졸 같은 구충제를 복용하는 데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뉩니다. 대부분의 구충제는 체내에서 물질이 절반 이상 빠져나가는 반감기가 8~12시간에 불과하거든요. 일년에 한 두번 구충제를 챙겨먹는 정도로 우려할 만한 부작용이 있진 않으니 먹어서 안될 것은 없으나, 예방 효과가 크진 않을 거란 이유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최근 생선회를 자주 먹었던 터라 오랜만에 알벤다졸을 구입해서 먹었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만약 구충제를 복용할 계획이 있다면 온 가족이 한꺼번에 복용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기생충의 종류에 따라 음식을 매개로 전파되기도 하고 신체접촉이나 반려동물, 일상용품 등을 통해 감염되기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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