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스테판 론트리
감수·한국항공대학교 장영근 교수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의 밸리 생명과학연구소 건물 지하실에서 생물학자인 마이클 딕킨슨은 콘크리트 블록으로 된 복도를 따라 알려지지 않은 강철 문으로 다가간다. 철문 안쪽에 있는 작고 창이 없는 방에는 고속 비디오 카메라들과 레이저 장비, 컴퓨터 케이블들이 거미줄처럼 빡빡하게 차있다. 방 한가운데에는 자판기가 들어갈 정도로 큰 유리 탱크가 놓여 있다. 이것이 바로 로보 플라이(Robofiy ; 로봇파리)이다. 기계 팔에 매달려 있는 곤충 날개 모양의 플라스틱 조각을 빼면 이 탱크는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딕킨슨이 필터를 켜자 탱크에서 크림같이 뿌연 거품들이 뿜어져 나온다. 알고 봤더니 이 탱크에는 미네랄 오일 2t이 채워져 있다. 딕킨슨이 키보드를 두드리자 서서히 날개가 오일을 헤치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날개가 앞뒤로 흔들리자 뒤엉킨 구름 모양의 거품들이 느린 소용돌이로 변하면서 다이아몬드형 커튼처럼 흘러내린다.
딕킨슨은 로보플라이(Robofly) 앞에 선 채 연속해 생성되는 소용돌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분명 다른 실험 중에 빠져나온 것으로 보이는 진짜 초파리 한 마리가 초당 200번 이상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 지나가면서 미세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하지만 딕킨슨은 이를 무시한다. 로보플라이는 그가 독일에서 최초로 원형을 만든 후 10년이 넘도록 연구에 몰두해 온 대상. 그 당시 그는 탱크에 넣은 시럽을 이용했다. “실험실 여기저기에 온통 설탕이 묻어 있었죠. 하지만 청소부들이 파업을 일으키고 지도교사가 (나에게) 뭐라고 하기 전까지 실험실 청소를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끈끈함은 딕킨슨의 과학에 대한 접근 방법을 잘 요약해 주는 말이다. 그는 일단 연구에 몰두하면 해결하기 전에는 절대로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연구 생활을 시작한 이후, 그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단 한 가지, 즉 파리들은 어떻게 날고 있는가에 대해 집요하게 연구했다.
비록 엔지니어들이 수십 년 전 바다를 횡단하는 비행기 제작법을 알아냈지만 곤충들의 비행법은 여전히 꾸준한 연구대상이다. 비행기가 양력을 발생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즉, 비행기 날개 위쪽으로 지나가는 공기의 압력이 날개 아래쪽 공기 압력보다 낮아서 발생하는 불균형 때문에 날개가 높이 떠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곤충들은 비행기보다 훨씬 복잡하게 움직인다. 이들은 어떤 전투기보다도 빠르게 방향을 바꾸고 천장에 거꾸로 앉기도 한다. 딕킨슨은 “곤충들은 옆으로만 움직이거나 뒤 또는 앞쪽으로 움직일 수도 있고 제자리에서 회전을 하기도 한다”며 “실험을 할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참깨 씨앗 만한 신경계가 이런 동작을 만들어내는지 신기하다”며 감탄한다.
딕킨슨은 그래서 초파리보다 1,00배나 크고 1,000배가 느린 로보플라이를 비롯, 많은 종류의 특이하고 멋진 기계들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들 중에는 로보플라이의 신부, 플라이 오라마와 락앤롤 플라이 어레나라는 이름의 기계들도 있다. 이들은 모두 곤충의 비행에 관한 비밀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고자 설계되었다. 자신의 이메일 명이 “플라이맨”인 딕킨슨이 이런 장치들로부터 얻어낸 결과는 쌀 한 톨 만한 곤충 로봇이 다른 행성 탐사나 불타는 건물에 진입해 희생자 수색, 혹은 첩보 활동에 이용되는데 도움이 될 지 모른다. 딕킨슨과 함께 로봇 비행장치를 개발해온 버클리의 전기공학자인 로널드 페어링은 딕킨슨이 생물학자지만 근본은 실력 있는 엔지니어라고 평가한다.
딕킨슨은 작년의 연구 결과로 맥아더 지니어스 펠로우십 연구비 50만 달러를 아무 조건 없이 5년간 지원 받게 되었다. 맥아더 특별연구원으로 선정되려면 탁월한 독창성과 전문분야에서 미래에 중요한 진보를 가져올 연구 업적이 있어야 한다.
39세의 딕킨슨은 자그마한 체구에 안경을 쓰고 가끔씩 덥수룩하게 턱수염을 길러 산악인으로 오인 받기도 한다. 그가 처음 초파리 연구에 눈을 뜬 것은 1980년대 중반 워싱턴 대학에서 신경생물학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였다. 사람의 뇌에는 1천억 개의 뉴런이 있는 반면, 초파리는 뉴런이 50만 개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초파리는 이 분야에 주요 실험 대상으로 이용된다. 파리는 이 뉴런들을 이용해 눈으로 빛을 감지하거나 미각 촉수로 냄새를 맡기도 하고 날개 뒤쪽에 달린 클럽 모양의 회전의(回轉儀)로 균형을 잡기도 한다. 이런 신호들은 신경계를 통과한 후 날개에 지시를 보낸다. 이 지시는 단순하지만 매우 정확해야 한다. 날개 짓의 간격이 수천 분의 1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학원생이었던 딕킨슨은 파리의 날개에 달려 있는 이 자연산 변형률 게이지를 연구했다. 이 게이지는 날개가 얼마나 구부러져 있는지 파리가 감지하도록 도와준다. 연구 도중 그는 “날개에 어떤 힘들이 작용하는지도 모르면서 파리 날개의 센서들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는 점이 궁금해졌다.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은 풍동(風洞)에서의 곤충 날개 모형 시험을 통해 이런 의문을 해결하려 했다. 그런데 1984년 캠브리지 대학의 생물학자인 찰스 앨링톤이 그동안 축적되어 온 측정치들을 조사해보고는 수치 계산이 맞지 않음을 알아냈다. 곤충들이 실제로 발생시키는 양력에 대해 절반 정도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이후 과학자들은 곤충들이 비행중 양력을 증가시키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런 이론들은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평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딕킨슨은 “지구상의 어떤 컴퓨터도 이 힘들의 실체를 밝힐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결국 그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기로 했다. 딕킨슨은 살아있는 곤충이 비행 중에 받는 힘을 측정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인공 센서도 파리의 날개에 부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기계식 비행 실험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파리에게 작용하는 것과 똑같은 힘이 이 장치에도 작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커다란 동물과 작은 곤충은 주변에 작용하는 공기의 움직임이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인식하기가 어렵지만 초파리 정도 크기의 곤충들에게는 공기가 걸쭉하면서 끈적끈적하다.
독일 막스 플랑크 생체공학연구소에서 칼 괴츠와의 공동 연구로 딕킨슨은 로봇 날개를 최초로 만들어냈다. 그는 폭 5cm의 날개를 설탕 시럽에서 움직일 경우 이보다 훨씬 작은 초파리가 공기 중에서 받는 힘과 똑같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딕킨슨과 괴츠는 날개를 만든 다음 이것이 앞뒤로 날개 짓을 할 수 있게 컴퓨터로 구동하는 모터를 설계했다. 센서가 부착된 날개가 시럽 속을 지나는 동안 이들은 탱크에 알루미늄 분말들을 채운 다음, 소용돌이치는 분말들을 촬영한 비디오필름을 보며 이를 센서가 기록한 힘과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딕킨슨은 파리가 양력을 얻기 위해 다양한 기교을 사용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비행기가 급상승할수록 비행기 날개 위쪽으로 흐르는 기류는 날개 끝쪽에 머무르기가 더 어려워진다. 기류가 완전히 빠져나가면 비행기는 양력을 잃고 속도가 급감한다. 하지만 파리들은 비행기보다 우수하다. 파리는 날개를 한 위치에 고정해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파리는 매우 빠르게 앞뒤로 날개 짓을 하기 때문에 날개 앞쪽의 소용돌이 기류가 사라지기도 전에 다음번 날개 짓을 하게 된다. 날개 짓을 한 차례 끝낼 때마다 파리는 날개 짓을 계속 하기 위해 날개를 반대방향으로 회전시킨다. 이렇게 해서 소용돌이 기류가 새로 발생하고 이전 기류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에 속도는 급속히 줄어들지 않는다.
그 이후 날개폭이 63.5cm가 되는 로보플라이로 실험해 본 결과, 파리가 연이어 날개 짓을 하기 위해 날개를 돌리는 과정에서 양력을 발생시키는 또 하나의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역회전을 받은 테니스 공처럼 회전하는 물체는 위쪽 표면으로 공기를 끌어당기는데, 이로 인해 물체 위쪽의 공기압을 감소시키면서 반대편 아래쪽으로 공기를 밀어내 이 부위에서의 공기 압력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파리가 날개 짓을 할 때 발생되기도 하는 이 회전력은 파리가 발생시키는 전체 양력 중 3분의 1까지 차지하기도 한다. 파리는 비행중 날개 뒤쪽에 형성되는 후류(wake)로부터 양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파리가 날개 짓을 하면 소용돌이 기류가 발생해 회전력을 유지하며 천천히 뒤쪽으로 사라진다. 딕킨슨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파리가 다시 날개 짓을 위해 날개를 뒤로 돌리면서 이 후류가 날개를 밀어내어 양력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최근 딕킨슨은 버클리대 동료인 피어링의 소형 비행 곤충 제작을 도왔는데, 길이 2.5cm 가량의 이 검정파리 같은 로봇 곤충은 미 해군연구소와 미 국방성 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자금 지원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 로봇 검정파리는 아직까지 끈에 매달려 한쪽 날개로 날았을 뿐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배터리. 크기가 너무 크고 실제 비행을 하기에는 전력이 너무 약하다고 딕킨슨은 지적한다. 딕킨슨은 생물학자로서 로봇공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라이트 형제처럼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동물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한 자신의 생각들을 시험해 보려 비행체들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에서는 기계를 이용해 기계로 시험을 하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딕킨슨은 최근 연구실을 파사데나에 있는 캘리포니아 기술연구소로 옮겼는데 이곳에서 그는 학생들과 함께 초파리용 비행 시뮬레이터인 락앤롤 플라이 어레나와 같은 곤충 비행 연구장치들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어레나 실험장치는 지름 15㎝의 중심부가 빈 원통형이다.
1만 2천개의 발광 다이오드들이 안쪽 벽에 줄지어 있다. 딕킨슨의 연구팀은 파리를 실험실 가운데에 있는 강철 막대 끝에 붙인 다음, 날개는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해 두었다. 파리를 둘러싼 벽은 막대와 상자 모양으로 계속 바뀌며 빛을 발해 파리는 자유롭게 실험실 안을 날아다니고 있다고 믿게 된다.
파리가 방향을 바꾸려고 할 때 카메라는 날개 움직임의 변화를 포착해 이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컴퓨터는 재빨리 벽의 빛을 변화시킨다. 파리는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실제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실험장치의 이름이 락앤롤이 된 것은 시뮬레이터가 전후좌우로 요동을 치면서 딕킨슨과 그의 학생들이 파리가 평형장치를 이용해 비행하는 방법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이 실험장치 덕분에 딕킨슨의 팀은 파리의 움직임을 조종하는 규칙들을 개발할 수 있었다. 파리가 어떤 물체를 향해서 날아가면 그 물체는 파리 눈에 점점 더 커 보이게 된다.
한쪽 눈에 물체가 더 크게 보이면 이를 피하기 위해 파리는 방향을 바꾼다. 물체가 정면에서 점점 커져오면 파리는 내려앉으려고 다리를 뻗는다. 이 이론을 실험해 보기 위해 딕킨슨과 학생들은 눈알과 비슷한 플라이볼(Flyball)이라는 기계를 만들었다. 플라이볼은 잘 설계된 트랙들에 카메라가 한 대 장착된 형태다. 이 장치는 흑백 사각형들이 질서 없이 배열되어 있는 실험장치 안을 돌며 보이는 대로 컴퓨터에 전송한다. 컴퓨터는 딕킨슨의 규칙을 이용해 다음에 어디로 옮겨가야 할지 선택한다. 딕킨슨은 이 카메라가 파리와 같은 방식으로 방향 전환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만약 그가 옳다면 이 카메라는 실제 파리와 같은 비행 궤적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카메라가 벽에 부딪힐 것이다.
결국 딕킨슨은 파리의 비행법에 관해 발견한 내용들을 보다 더 큰 질문, 즉 곤충의 비행법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를 알아내는 데 적용할 생각이다. 곤충의 날개는 아마도 3억년 전부터 몸의 비늘로부터 발달되어 왔을 것이다. 날개야말로 이들이 살아남은 비결이었던 것이다. 날벌레들이 지구상에 알려져 있는 동물 종류 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봐도 이 점을 알 수 있다. 처음으로 날기 시작한 이후, 곤충들은 다양한 비행 방식에 알맞게 몸의 구조가 진화되어 잠자리의 넓은 날개나 말벌의 맹렬한 공격형 비행이 가능해졌다.
딕킨슨은 “행동의 진화 방식을 이해하기 전에 몸의 구조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곤충의 비행에 관해 연구를 할수록 점점 모르는 것이 많아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동료인 마크 프라이가 초파리를 모방할 컴퓨터 프로그램을 가상로봇에 심어준 후에도 딕킨슨이 통합한 초파리의 비행궤적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신경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간단한 회로 몇 개에 불과한 단순해 보이는 이 작은 생물이 여전히 딕킨슨과 동료들을 매번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하지만 딕킨슨은 파리가 대단한 곤충이라고 말한다. “아마 지구상에 사는 누구나 매일 파리 한 마리 정도는 볼 겁니다. 하지만 특별히 눈여겨보지를 않죠. 바로 우리 코밑에 이 엄청난 꼬마 기계들이 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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