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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과 비스켓, 시리얼에 담긴 물리학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물리학자에게는 연구대상이 된다. 우유에 타서 먹는 시리얼로부터 사탕이나 땅콩 같은 간식거리까지도 물리학자의 손에 들어가면 흥미로운 연구주제로 바뀐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과학전문지인 네이처에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들 중 군것질 거리에서 발견한 물리 법칙이 상당수 끼어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여러 종류의 땅콩들을 한데 섞어놓은 땅콩 믹스 캔을 사서 뚜껑을 열어보면 가장 큰 브라질 땅콩이 항상 맨 위에 올라와 있다. 큰 땅콩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게 하려고 회사에서 일부러 그런 것이라 하더라도 운반되는 동안 뒤섞이지 않았다니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해변가 모래사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모래 한 줌을 콜라 병에 집어넣고 흔들어 주면 고운 모래는 아래로 내려가고 굵은 모래나 조개 부스러기들은 위로 올라온다. 콜라 병을 한참 동안 흔들면 모래 알갱이들이 크기순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현상은 절대로 땅콩회사의 속임수가 아니다. 물리학자들은 이 자연 현상을 ‘브라질 땅콩 효과’(Brazil-nut effect)라고 부른다. 흔들수록 알갱이가 크기별로 층을 형성하는 이 현상은 얼핏 보면 시스템은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운동한다는 열역학 제 2법칙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에겐 신기하기만 한 이 ‘브라질 땅콩 효과’는 제약 회사들에겐 오래 전부터 골칫거리들 중 하나였다. 잘 섞어놓은 가루약을 차로 장시간 운반하고 나면 크기별로 층이 생겨 낭패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로 우유에 타먹는 시리얼이나 시멘트 재료를 운반할 때도 마찬가지다.

시카고 대학의 하인리히 재거 교수와 동료들은 MRI 장치를 이용해 ‘브라질 땅콩 효과’가 일어나는 과정을 촬영했다. 실제로 땅콩과 같은 알갱이 더미의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촬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리 콘테이너에 모래를 넣는다 해도 바깥면의 모래들 밖에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MRI 장치를 이용하면 중심에서 운동하는 모래까지도 촬영할 수 있다. 재거 교수팀은 MRI 장치를 이용해 크기가 다른 모래더미가 어떻게 크기별로 층을 형성하는지 관찰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수직으로 흔들리는 모래 알갱이들은 마치 끓는 냄비 속의 물처럼 대류현상을 나타낸다. 흔들리는 컨테이너 속에서 양쪽 벽면에 붙은 모래 알갱이들은 아래쪽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내부의 알갱이들은 위로 떠올라 ‘굽은 아치형의 층’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자리의 알갱이들은 더욱 작은 아치형 층을 형성하며 계속 내려가고 내부의 알갱이들은 대류현상에 의해 계속 떠오른다. 맨 위로 떠오르는 알갱이들도 나중에는 가장자리로 밀려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하지만 일단 위로 올라온 큰 알갱이들은 작은 아치형 층을 형성하기가 어려워 계속 머무르다가 결국은 맨 위층에 남게 되는 것이다.

이 현상은 1831년 마이클 패러데이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으나, 165년이 지난 1996년이 돼서야 그 전과정이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물리학자의 관심거리는 땅콩 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국 브리스톨 대학 물리학과에서 폴리머를 연구하고 있는 렌 피셔 교수는 1998년 ‘비스켓을 커피에 찍어먹는 최적의 방법에 관한 연구’라는 재미있는 논문을 발표했다. 서양 사람들은 비스켓을 먹을 때 커피나 홍차에 살짝 담갔다가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스타벅스 같은 커피숍에서도 커피와 함께 비스켓을 판다. 그런데 왜 비스켓을 커피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는지 밝혀진 적이 없었다.

렌 피셔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평소 폴리머 연구에 사용했던 프로그램을 이용해 비스켓을 뜨거운 액체에 잠깐 담갔다 먹으면 그냥 먹을 때보다 비스켓 자체의 향이 10배 이상 강하게 입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계산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초콜릿이 얇게 덮인 비스켓을 커피에 담갔다가 먹을 때에는 초콜릿이 있는 면을 위쪽으로 하고 최대한 수평으로 눕힌 상태에서 비스켓을 담근 후 먹는 것이 좋다는 사실도 계산으로 알아냈다. 화학자인 렌 피셔 교수의 눈에 비스켓은 그저 ‘설탕이라는 본드에 의해 결합돼 있는 녹말가루 덩어리’에 불과한 모양이다.

입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우유 속에서 수영하고 있는 시리얼의 운동 역시 물리학자들의 진지한 연구대상이다. 영국 노르위치의 음식연구소에서 일하는 조젯 박사와 동료 연구원들은 우유의 성분에 따라 시리얼의 운동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연구해 화제가 됐었다. 사실 시리얼은 신선한 우유에 넣었을 때는 바삭거리기도 하면서 우유의 촉촉함이 배어 들어 색다른 맛이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눅눅해져서 맛이 없어진다. 사실 10분만 지나도 시리얼이 담긴 우유는 토해놓은 죽처럼 걸쭉해져 버린다.

조젯 박사 팀은 우유의 성분에 따라 시리얼이 눅눅해지거나 서로 엉겨붙는 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에 대해 세계적인 시리얼 회사인 켈로그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우리 회사의 콘플레이크는 너무 맛있어서 눅눅해지기 전에 모두 입 속으로 들어가고 없습니다.” 조용한 극장에서 신경을 자극하는 사탕 껍질 벗기는 소리도 물리학자들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사탕껍질을 벗길 때 나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크기는 작지만 굉장히 자극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사탕 껍질이 벗겨지는 -혹은 구겨지는- 패턴이 아주 특별한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은 최근 사탕껍질이 구겨지는 패턴이 지진이 일어날 때 지층이 구부러지거나 갈라지는 패턴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탕껍질에 살고 있는 균들에게는 이 구겨지는 소리가 마치 지진이 난 소리처럼 크게 들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듯 물리학자들은 땅콩 캔 속에서, 커피 잔의 비스켓에서, 시리얼 접시 위에서, 그리고 사탕 껍질이 벗겨지는 소리에서 흥미로운 물리법칙들을 하나씩 찾아낸다. 이 법칙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유익할지는 앞으로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어쨌든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다. “비스켓과 땅콩을 다 먹기는 했나요? 먹다 말고 실험실로 뛰쳐 가진 않았겠죠?”

정재승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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