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자동차 트렁크에서 사람 머리가 발견되면 배신에 의한 살해 사건일 가능성이 높아요 ”라며 디바인이 무표정하게 말을 한다.
“나라도 그렇게 추측할 걸요”라며 둘이 웃음을 터뜨리지면서도 속으론 “농담인데!”라고 생각한다.
“막연하게 얘기하는 건 싫어요”라며 그녀가 설명한다.
이것 역시 뛰어난 범죄 현장 조사관인 그녀의 자질들 중 하나일 거라는 확신이 든다.
“이 머리는 망치 자루 끝으로 가격이 가해진 다음 도끼로 절단된 것입니다.” 그녀는 실제 사건처럼 얘기를 이어 간다. “우리는 지금 뼈에 난 범행 도구 자국들을 비교 중인데, 실제 조사시에는 살을 벗겨낸 후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와 뼈에 난 자국을 비교해 봅니다.”디바인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내가 직접 부검 중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두 가상드라마일 뿐이다.
15년간 로스앤젤레스군 사법부에서 범죄학자로 근무한 디바인은 현재 인기리에 방영중인 TV시리즈 “CSI: Crime Scene Investigation(범죄 현장 조사)”의 전문 자문역을 맡고 있는데, 이 시리즈는 올가을 CBS에서 추계 방송을 시작한다. 이 쇼는 라스베가스에서 활약하는 5인조 CSI팀이 맡는 법의학 관련 사건들을 날짜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나는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아보려고 무대 위에 올라와 있다. 로스앤젤레스 북쪽의 캘리포니아 발렌치아에 있는 한 스튜디오 안의 녹화실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디바인은 실제처럼 생각한다. 차 트렁크 안의 머리에 대한 얘기가 계속된다.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연장들도 소형 화기와 마찬가지로 고유한 자국이 있습니다. 총신을 조사할 수 있듯이 뼈 역시 조사가 가능합니다. 무기를 뼈 속에 직접 박아 넣을 수는 없으니까요”라면서 그녀는 증거 처리 절차의 예를 들어 말한다. “자국을 한 개 더 만들어서 두 자국을 직접 비교해 봐야 합니다.” 그런 자국을 구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머리를 그런 비교 대상으로 내놓으라고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비교 결과는 디지털 이미지로 제시되는데 아주 근사하죠”라며 그녀는 설명을 끝마친다.
CSI의 시청률이 높은 걸 보면 대다수 TV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쇼가 인기를 끄는 데는 프로그램 전반에 스며있는 사실성이 한 몫을 하고 있다. 디바인의 역활은 과학적 측면과 법 집행 측면에서 이 쇼가 사실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디바인이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범죄 조사실을 안내해 보여 준다. 이 방 저 방을 옮겨 다니는 가운데 대부분의 장비들이 단순한 모형이 아니라 진짜임을 알게 된다. 여러 종의 현미경들 모두가 실제로 작동하고 화기 시험실의 벽에는 진짜 총들이 걸려 있다. 이 장소는 유사시에 실제 범죄 조사실로도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디바인이 옆에 있으면 녹화실에 있다는 사실을 금새 잊어버리게 된다. 마치 인기 드라마 캅 랜드(Cop Land)의 감춰진 부분을 찾아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그녀의 강의를 놓치고 만다. “실제 범죄수사학에서는 기록 조사와 증거들, 현장 통제를 다룹니다”라고 디바인이 말하고 있다. 이제는 이야기가 마치 취업 인터뷰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적절한 과학 분야 학위가 있을 경우 자격 요건은 피를 좋아하는지 여부일 듯 싶다.
“법과학자가 되기 위해선 열정이 필요하다”라고 디바인은 말한다. “한밤중에 깨어나 시체를 보러 갈 때면 흰 머리가 날 지경이예요.”
디바인의 다음 말은 경찰이 쓰는 상투어 같지만 그녀의 감정이 풍부하게 실리면서 그런 느낌은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매일 생애 최악의 날을 맞은 사람들을 봅니다. 이들은 모두 죽었거나 상처를 입고 있어요. 바로 그런 날 이 사람들을 보게 되기 때문이죠.” 분명히 디바인은 자신의 전문적인 태도를 출연진들에게 주입시켰다. 출연진들의 열정은 퍼즐이나 미스테리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잠정적인 해결책들이 하나씩 차례로 기각되다가 결국 증거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는 걸 지켜보는 가운데 스릴을 느낀다. 디바인도 역시 이런 스릴을 느낀다.
“단서가 될 만한 증거를 찾는 일은 정말 짜릿한데 아직까진 이를 대신할 만한 걸 찾지 못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런 짜릿함을 느끼고 있는 또 한 사람은 이 쇼의 기획자이자 선임 프로듀서인 앤소니 쥐커이다. 그의 말에 의하자면 “과학은 모든 것이죠.” TV 프로듀서가 으례 그렇듯이 일단 말을 하면 아주 짧던가 아니면 길게 쏟아져 나온다. “법과학은 미지의 바다입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흥미있는 과학을 오락적 방식으로 보여줄 때면 항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하곤 하죠. ‘와, 난 그게 가능할 줄 몰랐는데. 방에 실들을 묶어 핏자국 튄 조사를 할 수 있는지 정말 몰랐어.’”
그의 말이 맞다. 나 역시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있다. 한 여자가 둔탁한 물체로 남자를 살해하고는 성추행을 막기 위한 정당방어였다고 한 사건이었다. CSI팀이 끈을 사용해 튄 핏자국의 패턴을 조사해 분석해 본 결과 제3자가 개입되어 있었고, 살인이 사전모의된 것임을 밝혀냈다. 난 그게 가능한 지 몰랐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동차 트렁크의 그 머리가 생각난다. CSI 차고에서는 닉 스톡스와 사라 시들 역의 조지 에즈와 조르자 폭스가 단서를 찾으려고 그 BMW 자동차를 조사 중이다. 바로 밖의 홀에서는 감독과 촬영 스탭들이 조그만 흑백 모니터를 통해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친절하게도 쥐커가 내게 자기 자리를 내어준다. 흔히 볼 수 있는 국장용 의자인데 주인의 이름이 붙어 있다. 의자 주인인 윌리엄 피터슨은 이 쇼의 주역으로 도청을 좋아하는 CSI 국장 거스 그리섬 역을 맡고 있는데 어디 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도박 문제가 있는 팀원 워릭 브라운 역의 게리 더던과 전직 스트리퍼 캐서린 브라운 역의 마그 헬젠버그도 자리를 비우고 없다. 드라마 중간에“전에 춤추는 걸 제가 본 적이 있었나요?”라고 한 기술자가 묻자 “본 적이 있다면 기억이 날텐데요”라며 마그가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카메라 준비!” 보이지 않는 어디에선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 온다. “시작!” 켄 핑크 감독이 소리친다. 차고 안에서는 닉과 사라가 차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감독의 신호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두 사람은 고성능 손전등을 사용해 자동차를 조사하고 있다. 몇 차례에 걸쳐 이 장면을 재촬영한 뒤 잠시 쉬는 동안 디바인은 범죄학자에게 손전등은 어둠속에서 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고 내게 설명해 준다. 한낮은 물론 불이 환하게 켜진 경우에도 범죄학자들은 손전등을 이용해 단서가 될 만한 작은 머리카락이나 천조각들을 찾아낸다.
“사라,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닉이 말한다. “뭔데 그래?” 사라가 묻는다. “흔적이 있어. 여기 페달에 말야.” 닉이 손전등을 비추자 반항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깎인 살점과 특이한 천조각이 드러난다. 또다른 증거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쇼에 나오는 기술적, 과학적인 내용들은 어느 정도까지 정확한 것일까? 디바인은 어느 정도는 실제와 다르다고 인정한다. 드라마에선 DNA가 실제보다 훨씬 빠르게 분석되기 때문에 몇 주가 아니라 몇 분 내에 끝난다. TV에 나오는 분석실 요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데,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배경에는 여러 색상의 병들을 놓아두는데, 특별한 용도는 없고 그냥 TV화면에서 약물 색깔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한 번은 칼자국의 본을 뜬 일이 있었는데, 이는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시청자들은 즐겁게 봅니다”라며 디바인이 말한다.
그녀는 “평론가들은 이 쇼가 실제와 똑같기를 원하지만 한 가지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 주어진 시간은 44분 뿐이죠”라면서 조작된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고 사전에 오랫동안 논의를 한 다음 결정한다고 덧붙인다. “내가 하는 일은 이 쇼에 나오는 과학 관련 내용을 바르게 잡아주는 거예요.”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세부적인 장면들은 상당히 사실적이다. 디바인은 연기자들에게 범죄 현장을 조심스럽게 걸어 지나가는 방법을 가르쳐 왔다. 연기자들은 직업상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 사용법도 알고 있다.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연기자들이 이젠 기본적인 것들을 모두 알고 있어요”라고 디바인이 말한다.
닉 스톡스 역을 끝마친 조지 예드가 잠깐 멈추어 서서는 다음 촬영 장소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다음 장소는 사막 한가운데인데, 대본에 따르면 CSI팀이 머리가 없는 몸통을 발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마치 자동차 트렁크에서 발견된 머리와 몸통이 만날 것 같이 들린다.
연기를 끝낸 예드의 목소리엔 디바인이 좋아하는 부드러운 텍사스 억양이 묻어난다. 나는 예드에게 “쇼의 어느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듭니까?”라고 물어본다.
“전기 집진기와 핏자국을 찾아내는 페놀프탈레인 같은 기술이죠”라며 그는 주저없이 대답한다.
“아, 그 친구 대단해요”라며 디바인이 극찬한다. 출연자 대본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카드들을 뒤져봤지만 그에게 해당하는 것은 전혀 없다. 그가 이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예드가 사람들과 얘기를 좀 더 하고 자리를 뜨자 다시 생각에 잠긴 채 여전히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찾고 있다.
“법과학을 TV를 통해 전달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뭔가요?” CSI 2회분을 쓴 디바인에게 내가 물어 본다.
“내가 전달하기 어려운 건 일들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하는 것이죠”라고 그녀가 대답한다. “방송에서는 한 이야기를 짧은 시간 구조에서 풀어나가게 되거든요. 하지만 실제로는 8년 전에 발생한 사건을 기소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조사하는 데만 3년이나 걸린 사건들도 있었죠. 아주 꼼꼼해야 하고 서류 작업에 빠지기 일쑤인 게 법과학의 현실이예요.”
디바인이 CSI 제작에 합류한 것은 과중한 실제 업무로 부담을 느꼈을 때였다. “법과학과 관련해 한 가지 분명한 건 다룰 사건은 너무 많은 데 반해 인력은 거의 없다는 거죠.”
그녀가 과중한 업무 시간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분명 그녀가 과학을 좋아하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장 업무는 또 다른 문제일 수도 있다. 증거를 확보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과학 관련 내용중 TV로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있습니까?” 디바인은 날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한다. “그럼요.” 그녀는 다소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한다. “폭력적인 장면들 같은 경우죠.”
CSI가 다루는 내용이 모두 살인과 상해에 관한 것들임이 떠오르자 그녀의 멘트가 다소 의아하게 들렸다. “제가 본 것들과 비슷한 장면조차 다룰 수 없어요”라며 그녀는 말을 잇는다. “범죄 현장을 실제와 똑같이 보여 주면 시청자들이 기겁을 할 거예요.”
나는 잠자코 듣고 있는다. 이제서야 실제와 허구 사이의 틈이 보이는 것 같다.
“이 쇼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려는 게 아니예요”라며 잠시 끊겼던 말을 이으며 계속한다. “그러니까 실제로 보게 되는 무서운 광경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죠. 온갖 사건들을 다루지만 실제 모습 그대로를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다시 TV 얘기로 돌아가 사막에서 발견된 몸통은 용맹을 겨루는 대회에서 포획된 고릴라로 자동차 트렁크의 머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 머리는 동료들과 다툰 마약 딜러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정확히 44분만에 미스테리는 해결된다.
csi 조사 기법
상황 : 살해된 한 남자가 바닥에 누워 있고, 벽에 묻은 피를 보면 격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차 용의자는 정당방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조사원들은 피가 튄 모양을 살펴본다.
과정 : 혈흔의 패턴 분석을 위해 조사원들은 실을 사용해 큰 핏자국들을 몇 개의 직선군으로 모았다. 동일한 모양의 핏자국들은 같은 방향에서 튄 것들이다. 이런 방식으로 어느 정도 실을 잡아당겨 보면 피가 어디서 튄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특별히 한 쪽 벽에만 혈흔이 적게 발견되어 제3이 인물이 개입되어 사전모의된 살인임이 드러났다.
csi 조사 기법
과정 : 희생자의 사망 시간을 모르면 살인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 다음은 사체 부검실에서 사망 시간을 알아내는 다섯 가지 방법들이다.
청흑반 : 시체에 적색이나 자주색, 청색 반점들이 있을 경우 사망후 30분이 경과되지 않은 것이다.
사후경직 : 인체는 사후 2시간 이내에 굳어지기 시작해 6~12시간 후에는 완전히 굳어졌다가 기후에 따라 26~48시간 이내에 약간 풀어지기도 한다.
위장내 음식물 : 소화율은 계산하기가 까다롭지만 위장내 잔류물은 희생자가 마지막 식사로 뭘 먹었는지 알아내는 데 훌륭한 단서가 된다.
두부 표면 경화 : 뇌피는 사망후 경화되기 시작한다.
곤충 탐지 : 시체 표면 혹은 내부에 곤충들이 있으면 사망 시각을 알아낼 수 있다. 각 곤충마다 나름대로의 성장률이 있기 때문에 조사원들은 곤충들의 형태가 알, 유충, 번데기, 성충 중 어느 상태인지 유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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