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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정보로 잊혀진 조상찾기

대부분의 탐색과 마찬가지로 모든게 인터넷에서 시작되었다.
보통 웹사이트에 있는 링크였을 뿐인데 뭔가에 끌려 그것을 클릭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온라인 족보 홍등가 같은 것을 뒤지며 환상이 실현될 거라는 유혹과 약속에 감각이 예민해져 있었다. “DNA를 이용해 과거를 투영해 보고 옛 선조들을 되살려 보세요” ... 클릭 ... “여러분의 출생 배경을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은 DNA 판독입니다” ... 클릭 ... “입양되어서 친부모가 누구인지 궁금한가요?

최근 유전자 해독 기술이 발달해 이같은 문제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 클릭 ... “먼 친척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 클릭 ... “가깝거나 먼 조상을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분석의 정확도에 따라 219달러에서 1천200달러를 내면 옥스퍼드 앤시스터스와 제네렉스 같은 회사들이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간 가계보를 제공하고 북미계나 유태계, 바이킹족과 같이 어떤 인종과 집단에 속하는지 알려 주었다. 한 회사에서는 추가 비용없이 나의 DNA를 이용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유전학적 친척들”과 연결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유혹들이 그럴듯하기도 했지만 나름대로의 이유 때문에 나는 링크들을 계속해 클릭해 나갔다. 뭐랄까 필자 역시 다른 미국인들처럼 우리 가계도의 빈 부분을 메울 수 있을 정보에 목말라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흥미로운 개인적 가계보의 실마리를 찾게 되면서 탐색을 계속해 나갔다.

링크들을 따라 간 끝에 인구 유전학자들과 분자 인류학자들과 같이 최고 대학의 권위자들로 구성된 자문단을 갖춘 회사들을 발견했다.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이 회사들은 <네이처>나 <사이언스>지 같은 명성있는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 결과와 <뉴욕타임스>나 <노바>같은 매체의 보도 기사를 링크시켜 놓았다. 그래서 나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얘기이겠다고 생각하고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엄마, 엄마 DNA 좀 보내줄래요?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는 가계도를 작성하거나 가계도의 빈 부분을 메우려는 경우, 또는 조상에 관한 단 한 가지 의문을 해결하려는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나의 먼 친척인 레스 힉켄버텀의 방식을 따랐다.

그는 은퇴 후 대부분의 시간을 족보 관련 모임에 참석하거나 전국의 여러 법정과 시청들을 돌아다니며 출생과 결혼, 사망 진단서, 유언장, 토지 증서, 법정 기록들을 뒤져 가족과 관계있는 정보들을 수집했다. 이 방식은 서류 조회 족보작성법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인터넷 덕분에 디지털 형태의 자료 추적이 훨씬 수월해졌다.
미국립문서기록청은 2003년 4월까지 5천만 건의 기록을 전산화해 엘리스 아일랜드가 2001년 4월 이민 파일을 웹에 올렸을 때 이 사이트에 첫 6시간 동안 8백만 건의 접속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디지털화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조만간 대부분의 족보 수집가들은 역사적 기록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틈에 직면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서부터 서류 조회 작업이 불가능해진다. 성이 바뀌고, 사람들은 이사를 하고, 입양되고 사라진다. 갑자기 더 이상 추적할 기록들이 없어지면서 과거 기록 추적이 멈춰버린다. 족보학자들은 이를 서류 조회 과정에서의 벽돌벽이라고 말한다.
나의 벽돌벽은 3년 전 87세의 외할아버지 로버트 리가 가족사에 관한 애기를 할 때가 되었다고 결심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1942년 어느날 밤 이후 할아버지가 혼자만 간직해 둔 것이었다. 그날 밤 할아버지는 저녁을 먹은 후 고모들과 함께 흔들의자에 앉아 가족사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고모가 할머니 엘레노아 힉켄버텀이 흑인이었다고 속삭였다. 1940년대 남부 일리노이주에서는 흑백혼혈에 관한 얘기를 할 경우 드러내 놓지 못하고 속삭이곤 했다.
엘레노어 할아버지는 조사에 나서 교회 뒤 숲속에 감춰진 엘레노어 할머니의 작은 돌무덤을 찾아낸 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그곳을 찾았지만 거의 60년 동안 그녀의 존재에 관해 단 한 마디도 내비치지 않았다.

“오랫동안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단다”라고 할아버지는 엄마와 삼촌들에게 말했다. “로널드 형과 나만이 사실을 인정했었지. 이제 형이 죽었으니 너희들 맘이 상하더라도 얘기를 해야겠구나.”
물론 할아버지 말에 마음이 상하기는 커녕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가 정말 아프리카 아메리카계 여인의 자손일까? 할머니는 어디 태생이였을까? 노예셨을까? 불행히도 이 경우 엘레노어 할머니의 처녀적 성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서류 추적은 불가능했다. 과거 기록마다 할머니의 이름만 나와 있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정황적 증거로서 사라진 할머니의 성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일리노이주에 정착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아메리카계인들이 남부에서 출생 증명 없이 태어나 자유를 찾아 북쪽으로 도망친 뒤 기록없이 평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정황적 증거만으로는 입증이 곤란하지만 증거가 다른 곳, 즉 우리 가족의 세포 속에 남아있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두 회사를 골라 테스트를 받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 회사인 플로리다 소재 DNA 프린트 제노믹스사를 선택한 이유는 이곳에서 개인의 DNA를 분석해 인종적 계보의 증거를 찾아내는 테스트를 개발해 보급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에서는 나의 DNA에 순수 미국계와 인도유럽계, 혹은 아프리카계가 각각 몇 퍼센트씩 포함되어 있는지 알려 준다.

두 번째 회사인 패밀리 트리 DNA는 최대 규모의 테스트를 제공할 뿐 아니라 타사보다 더 많은 유전지표를 시험함으로써 정확도가 훨씬 더 높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 패밀리 트리 DNA는 원래 내가 의도하던 바는 아니였지만 호기심이 생기는 실제 “먼 조상”을 찾아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회사들과 다른 경쟁사들이 제시하는 테스트를 이해하려면 우선 기초부터 다질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테스트들은 상이한 종류의 DNA를 이용한다.
보통 사람들이 DNA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핵 DNA는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전이되며 눈 색깔부터 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핵 DNA의 한 가닥은 A, T, G와 C 네 글자의 조합에 의한 32억개의 문자열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배열의 99.9퍼센트는 모든 사람에게서 똑같지만 0.1퍼센트는 게놈의 특정 위치에서 서로 달라 T가 C로 바뀌거나 G가 C로 바뀐다. 이러한 차이가 인간의 다양성을 반영한다.

이런 돌연변이는 대부분 단일 뉴클레오티드 다형 또는 SNPs(“snips”)라고 하는데 대개 무해한 변종으로 자발적으로 발생해 세대를 거쳐 유전된다.
일부 인종, 특히 아프리카인들은 고립된 채 진화해서 독특한 스닙을 각 세대마다 전달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것은 과학자들이 “조상 정보 지표”라고 부르는 특별한 SNPs를 형성했는데, 이에 따르면 서부 아프리카계에는 C가, 유럽계에는 T가 포함될 확률이 높다.

이러한 조상 정보 지표들을 이용해 DNA 프린트 제노믹스사는 네 개의 인종 그룹중 고객이 어느 종의 후손인지를 결정한다.
또 한 가지 DNA는 남자에게서만 발견되는 작은 성염색체인 Y염색체에 존재한다. 인체내 23쌍의 염색체 중에서 Y염색체가 가장 안정적이다. 다른 염색체들은 규칙적으로 DNA를 교환하지만 Y염색체는 봉합된 타임 캡슐처럼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고스란히 전이된다.
이 때문에 이 염색체는 부계 유전의 창으로 한 남자의 Y염색체를 분석하면 수 세대에 걸친 부계 유전을 파악할 수 있다. 즉 10만 년 전에 살았던 조상을 들여다 보고 있는 셈이다.
SNPs와 마찬가지로 어떤 Y DNA 배열은 고립된 인종내에서 진화되면서 특정한 돌연변이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이시키다가 미국인 원주민과 바이킹의 Y 염색체 같은 것으로 발현되면서 널리 퍼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Y염색체의 여성 조상에 해당하는 미토콘드리아 DNA가 있다. 모든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모친으로부터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질을 통해 미토콘드리아 DNA(mtDNA)를 물려받는다. 이것은 DNA 조각으로 Y염색체처럼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사람의 mtDNA를 통해 모계 조상을 빙하시대까지 거슬러 추적할 수 있다.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모든 mtDNA 배열은 하플로그룹이라는 36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옥스퍼드 대학 진화유전학자인 브라이언 사이크스는 이 배열들을 추적해 전세계 다른 지역들로부터 진화해 온 36종의 가상적 “모친들”을 찾아냈다.

그는 이 DNA 연구를 기반으로 베스트셀러 이브의 일곱 딸들을 집필했다. 고객의 mtDNA 배열에 따라 이 테스트를 실시하는 회사들은 4만5천년 전 그리스에 살았던 우르슐라와 2만년 전 피레네 산맥 북동부에 살던 헬레나, 혹은 전세계에 흩어져 살던 다른 34명의 조상들 중 고객이 누구의 자손인지 확인해준다.
이렇게 일단 패밀리 트리 DNA가 고객의 mtDNA 배열을 밝혀내면 3천명이 넘는 사람들의 유전자 배열 자료가 가득한 데이터 베이스에 고객의 정보를 넣어 유전학적 친척들과 연락이 되도록 해 준다.

유전학적 친척은 이 회사에서 만들어내 상표 등록을 한 것으로 유사한 Y염색체나 mtDNA를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다양한 테스트에 관해 이 정도까지 이해를 하자 세 가지 테스트 중 Y염색체와 mtDNA 테스트 두 가지의 결과가 몇몇 가까운 조상들을 바탕으로 작성한 고전적인 족보보다는 수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유전학적 사진에 해당하는 유전 인류학에 훨씬 더 걸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국 허더스필드 대학 진화유전학자인 마틴 리차드는 미토콘드리아 연구를 통해 mtDNA 테스트를 발명한 후 아프리카계 조상이 테스트하기 가장 쉽다고 말했다. “아프리카계와 비아프리카계 사이에는 특정한 유전적 차이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아프리카계 조상일 경우 쉽게 밝혀집니다”라고 그가 내게 말했다.

유사한 차이가 대부분의 인종 그룹에 존재한다. 다만 아프리카계 인종이 진화된 장소가 보다 더 고립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아프리카계 사람들 사이에 보다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내가 인터뷰한 대부분의 과학자들처럼 리차드도 이러한 차이가 우월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재빨리 지적했다.

나는 DNA 프린트 제노믹스사의 직원들에게 나의 DNA를 보고 3대조 할머니가 흑인이었는지 알려줄 수 있는가 물었다. 나의 DNA로는 어렵지만 할아버지의 DNA가 있으면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패밀리 트리 DNA 설립자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자 그는 주저없이 “물론 할 수 있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외조부의 부모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 패밀리 트리 DNA에 외조부의 미토콘드리아와 Y염색체 테스트를 요청하고 유전학적 친척들을 찾기 위한 주사를 맞았다. 아버지도 나의 친가와 외가쪽 유전적 계보를 확실하게 알기 위해 같은 테스트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패밀리 트리 DNA로부터 나와 오빠, 아버지와 어머니, 조부모들 모두가 선조가 어떤 인종이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핵 DNA 테스트를 받았다.

회사들이 DNA 채집 장치를 전국에 퍼져 있는 나의 가족들에게 빠른 우편으로 발송했다. 다음날 아침 나의 가족 6명은 치솔처럼 생긴 도구로 볼 안쪽을 문질렀다. 이렇게 30초간 문지르면 이 도구에 수많은 세포들이 채워진다고 지시사항에 적혀 있었다. 그런 다음 채취된 세포를 조심스럽게 봉투에 밀봉해 페덱스 상자에 넣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보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걸려 온 전화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레베카? 저는 DNA 프린트 제노믹스사의 필 브룩스입니다. 본인이 미국계인 줄 아셨나요?” 아뇨. “당신은 북미 원주민계 10퍼센트에 유럽계가 90퍼센트입니다.”

10분 후. “DNA 프린트 제노믹스사의 필 브룩스입니다. 당신 오빠에 관해 할 얘기가 있는데요.” 그가 전화기를 내려 놓고 누군가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한테 얘기하라고? 꼭 그래야 하나?” 그리고는 잠시 요란스럽더니 한 남자가 말했다.
“아니, 우리가 알아낸 것만 얘기해 줘.” 실험실 책임자인 맷 토마스가 갑자기 전화기에 대고 유전학 기초에 관해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두 명의 특별한 사람들로부터 유전자 쌍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불현듯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나와 나의 오빠의 아버지가 다르다는 사실을 얘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을 속이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다. 오빠는 내가 태어났을 때 네 살이었다. 그는 늘 내 오빠였다.



“제 오빠가 오빠가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 거세요?” 내가 몇 분간 그의 말을 듣다가 물었다. 토마스가 갑자기 숨을 들이쉬었다. “음, 저라면... 그게 사실일까요?” 내가 모든 걸 설명해주자 그는 다시 한 번 수화기를 놓더니 소리쳤다 : “아버지가 다르다는데!” 방안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저희들이 내기를 했었거든요. 제가 졌어요”라고 그가 조용하게 말했다.
그쪽 직원들이 환호성을 올리는 사이 패밀리 트리 DNA로부터 발송된 이메일이 자동으로 내 화면에 떴다.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유전학적 친척들과 연락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가리켰다. 곧 또 다른 이메일이 왔는데 이번에는 나와 똑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받은 패트리샤 베이커라는 여자가 보낸 것이었다.

그녀는 나를 가족으로 환영한다고 했다. 패트리샤는 패밀리 트리 DNA의 최초 고객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본 적도 없고 이젠 죽고 없는 어머니가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했던 아버지를 찾으려는 생각에 테스트에 임했었다.
패트리샤는 패밀리 트리 DNA로부터 새로운 메일이 올 때마다 누군가 자기 아버지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사람이 나타난 줄 알고 흥분했다고 한다.

그녀가 받은 미토콘드리아 테스트는 모계 조상들에 관한 정보만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이 회사가 분명하게 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패트리샤는 아버지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Y염색체 테스트를 받을 수 없다. 그녀에게는 Y염색체가 없고 남자 친척도 없기 때문이다.

다음에 받은 메일은 패밀리 트리 DNA의 설립자이자 회장인 베넷 그린스팬이 보낸 것이었다. “제가 당신의 친척들 중 정확히 누가 유태계이고 선조가 어떤 인종인지 알려드리려고 하는데, 기밀사항으로 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적혀 있었다.
난 이전에 한 번도 내가 유태계 후손임을 밝힌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메일에 감명을 받았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가 전화를 했다. “멋진 DNA를 갖고 계시군요” 그가 전화기에다 속삭였다. “이 결과들은 감당하기 힘드실 것 같네요.” 그의 말에 따르면 내 아버지의 조상은 동유럽계이고 어머니의 조부쪽 미토콘드리아 DNA는 가장 흔한 유럽인의 DNA였고, 내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같은 Y염색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다는 얘기였다.

곧 이어 나온 DNA 프린트사의 분석 결과를 보면 내 가족은 유럽계와 미국계, 동아시아계가 섞였지만 아프리카계는 목록에 없었다. 내 조부는 100퍼센트 유럽계로 엘레노어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내 할머니와 어머니의 유전학적 비율이 똑같다고 했다. 즉, 87퍼센트 유럽계와 13퍼센트 미국계였다.
이쯤 되자 이런 생각이 든다 : “만약 이 테스트들이 맞다면 내 어머니는 할머니의 복사본이고, 난 몇 군데서 장학금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미국계이며, 아프리카계 조상의 흔적은 없고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같은 Y염색체를 갖고 있으므로 다소 이상한 종류의 근친 교배의 결과물인 셈이 된다. 이보다 더 기이한 일이 있을까”

친척 얘기를 다시 해 보자. 패트리샤에게 얘기를 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난 전혀 모르는 81명의 낯선 사람들과 함께 이메일 목록에 내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패밀리 트리측에서는 이 사람들이 나와 유전학적 친척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들은 전세계 여러 지역 출신으로 한 번도 같은 성을 쓴 적이 없었지만 이 들뜬 친척들은 내 메일함을 가계도와 개인사, 유전적 역사와 우리의 가족 관계를 찾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로 가득 채웠다.
이 친척들은 독일인과 아일랜드인, 영국인, 네덜란드인, 오스트리아인, 프랑스인, 북미 원주민, 그리스인, 우크라이나인 등 거의 전 유럽인들이었는데 이들의 메시지는 다양했지만 결국 한 가지 주제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양자였어요” ... “우리는 어머니쪽으로 친척인 것 같네요” ... “전 제 가족의 정체를 알아보려고 이 테스트를 해봤습니다.” 한 남자는 “당신의 확실한 친척”이라고 사인까지 했다.
유전적 친척들끼리 만남을 갖는 경우도 가끔 있다. 이들은 만나면 와, 당신 정말 우리 이모 누구누구랑 꼭 닮았네요 식으로 말하곤 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패밀리 트리측에서는 이들의 DNA가 서로 관련있을 확률이 99.9퍼센트라고 말한다.

“정말 웃기는군!” 패밀리 트리에서 내게 유전학적 친척들을 소개하는 메일을 보내온 걸 읽어 주자 마틴 리차드가 소리쳤다. “당신이 미국에 사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 사람들과 더 관계가 깊다고 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빙하시대 이후부터 조상이 같았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세계를 뒤지다 보면 친척들을 더 많이 찾게 될 걸요.”

그렇다고 내가 유전적 친척들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99.9퍼센트라는 이 회사의 말이 거짓은 아니지만 이 회사의 잠재 고객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관계있다”는 말의 범위를 이 회사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긴 하다. 각 세대마다 한 사람의 조상 수는 각 세대의 제곱씩만큼 증가한다.
다섯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 각 세대를 합치면 자손들이나 사촌, 이모와 고모나 삼촌들을 빼고도 62명의 직접적인 조상이 생긴다.

패밀리 트리 DNA에서는 최상의 시나리오일 경우 한 고객과 그의 유전적 친척들이 254명의 친척들로 구성되는 7대 이내에서 조상이 같을 확률을 50퍼센트로 보고 23세대 내에서 친척일 확률은 90퍼센트로 1천677만7천214명의 조상이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현재 플로리다 주의 인구만큼 사람을 모으고 77만8천명만 추가하면 유전적 친척과 나 사이에 공통의 먼 친척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만약 임의로 두 사람을 뽑아 DNA를 조사할 경우 꽤 최근에 같은 조상으로부터 비롯된 게놈 부분들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라고 런던 대학 유전학자인 데이빗 골드스타인은 말한다. 하지만 “꽤 최근에”라는 그의 말은 23세대를 말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1만5천년에서 2만년 된 DNA를 공유하고 있다고 해서 유사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테스트들의 판매와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과학간의 격차에 대해 골드스타인은 예전에도 지적한 바 있다.

2000년에 그는 한 작은 섬의 주민들 중 바이킹의 후손들에게서 다른 사람들보다 특정 유전자 배열이 더 자주 발견되는 것을 알아냈다
현재 한 회사가 이 배열을 테스트하면서 이 배열을 가진 사람들이 바이킹의 후손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골드스타인은 말한다. “사람들이 가끔 자기가 바이킹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편지를 써 보냅니다.
전 전혀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죠. 그 작은 섬 밖에서는 그 배열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거든요.”

진짜 중요한 신기술이나 과학적 원리가 선을 보일 때 시장에 넘쳐나는 허위 진술이나 과장된 주장들을 그냥 무해한 과대 선전 정도로 생각하고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골드스타인은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역효과가 날까 우려가 됩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가까운 미래에 유전학과 의료계간에 진지한 공조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골드스타인은 가까운 미래에 의사들이 환자들의 유전적 특징에 따라 약을 처방할 경우를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유전학을 개별화된 의약 처방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이 유전적 정보가 사용되는 방법에 대해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유전학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유전적 특징에 관해 과장된 선전과 판매를 할 경우 나중에 약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얘기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기자회견시 그린스팬은 미토콘드리아 DNA가 기존의 족보학에는 별로 쓸모가 없다고 인정했다. “그 기법은 2~3만년 전에 생긴 그룹에 대한 연구입니다”라고 그가 내게 말했다. “그건 오히려 인류학적 테스트에 가깝죠.”

족보학 연구의 경우를 보자 : 두 명의 여자가 찾아 와서 둘이 친척 관계냐고 물으면 기존의 DNA 지도작성 기술을 이용해 답변을 해준다. “그렇지 않고 여성 DNA 테스트를 통해 가족을 찾으려고 한다면 차라리 제비뽑기를 하는 게 낫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우리 가족의 테스트 결과에 대해 얘기하면서 혹시라도 할아버지가 아프리카계 흔적이 없어서 실망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아니란다.”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조용히 앉아 있다가 말했다. “특별한 감정 같은 건 없단다. 다만 그 테스트가 뭔가 잘못된 거 같구나.”
그랬을까? 내가 가족사에 비추어 봤을 때 이 테스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묻자 “할머님이 테스트로 측정할 수 없는 범위에 속했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DNA 프린트사 컨설턴트이자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인류학 부교수인 마크 쉬리버가 말했다. “할머니께서 밝은 피부색의 아프리카계가 아니었다면 말이죠.

만약 그분이 100퍼센트 아프리카계였으면 당신의 조부는 6.25퍼센트 아프리카계가 되는 겁니다. 그분이 밝은 색 피부였다면 이 수치가 더 줄어들겠지만 어쨌든 아프리카계인 셈이죠.
우연의 일치로 조부께서 그분의 아프리카계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분이 감지 범위를 벗어나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DNA 프린트사의 데이터 베이스상의 한계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상염색체 핵 DNA 테스트를 하지 않고도 특정인의 조상에 관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라고 남캘리포니아 대학 유전 인류학자인 노아 로젠버그는 말한다.

“하지만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회사측에서 고객에게 90퍼센트는 유럽계고 10퍼센트는 미국계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은 이 회사가 유럽인과 미국인을 대표한다고 판단한 사람들로부터 수집한 샘플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이 실제 어떤 인종의 후손인가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 회사의 데이터 베이스에 있는 사람들과 얼마나 유사한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데이터 베이스가 바뀌면 결과도 바뀐다.

DNA 프린트사는 3천개의 표본으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했다. 순수성을 보장하기 위해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배제하고 아프리카 원주민을 표본으로 했다. 하지만 마크 쉬리버의 말대로 누가 순수한 아프리카인이나 유럽인, 기타 인종인지 확언하기 어렵다. “가능한 한 최상의 표본을 구할 뿐이죠”라고 그가 말한다.

“우리가 DNA에 관한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걸 측정하는 게 아니라 단지 좀 더 잘 알고 있는 표본과 비교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대화를 나눈 대부분의 유전학자들은 전세계 DNA 데이터 베이스의 규모와 다양성이 커져 서로 다른 인종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고 있다. 그런 데이터 베이스를 갖추면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이들은 말한다. 현재로서는 공개 데이터 베이스나 사설 데이터 베이스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dbSNP라는 최대 규모의 NIH 데이터 베이스에는 4백만 개의 SNPs가 들어 있다. 이들중 일부 빈도는 동아시아계와 아프리카-미국계를 포함한 인구로 측정된다.
하지만 이 분야의 과학자들은 이 데이터 베이스가 개인의 가계보 테스트용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의학 연구용으로 데이터를 수집중입니다”라고 하바드 대학 유전학자인 데이빗 알슐러는 말한다.

“이 회사들이 하고 있는 일은 의학 연구의 불행한 결과들입니다.” NIH의 dbSNP가 언젠가는 지구 차원의 인구 이동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원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개인에게 적용하기에 필요한 규모를 갖추려면 아직 멀었다. “이 회사들의 제품이 가짜라고 말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라고 신시내티 대학 인구 유전학자인 래너짓 차크래보티는 말한다.
“나름대로 과학적 근거가 있거든요.” 만약 어떤 사람에게 아프리카계에 공통적인 조상 정보 지표들이 많으면 그 사람이 아프리카계 후손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한 그룹에 확실히 인종학상 특별한 변종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돌연변이가 다른 인종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라고 차크래보티는 말한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기 어려운 겁니다. 제가 만약 누군가의 DNA를 채취해 유형을 분류한 뒤 그 사람이 100퍼센트 유럽계라고 말하더라도 그 사람의 게놈 어디엔가에 아프리카계 유전자가 있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결국 조상 DNA 테스트 회사의 직원을 포함해 내가 대화를 해 본 전문가들은 누구나 어떤 DNA 테스트도 조상에 관해 확실한 설명을 해 줄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핵 DNA 테스트를 통해서는 내가 미국계 유전자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정보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몇백 달러의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단절된 벽돌벽의 틈을 잴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 때문에 기존의 족보학 연구가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라고 DNA 프린트사 설립자인 토니 프루데키스가 말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 현재까지 어떤 조상 테스트도 개인사를 무시하지 못한다.
이를 감지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노아 로젠버그에게 내 DNA 테스트에서 엘레노어 힉켄버텀에 관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말하자 그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이렇게 보자구요,” 그가 말했다. “아직 당신 가족사 부분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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