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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범죄에 적용되는 과학수사

법의학 병리학자 리차드 스트라우드는 총상의 경우 내부에서부터 조사해 보곤 한다. 타박상, 조직 손상, 총알이 들어간 부분과 나온 부분의 상처 등, 피부 속을 살펴보면 모든 게 좀 더 확실해진다. 때문에 스트라우드는 부검 시에 피부를 벗겨내는 습관을 길렀다.
“물론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부검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피해자 가족들에 대해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라고 스트라우드는 말한다.

불쌍한 오늘의 희생자는 재육성 프로그램에 따라 아리조나주와 뉴멕시코주 서부 관목림에 방사된 멕시코 늑대이다. 털과 피부 건강 상태로 봤을 때, 최근 스트라우드가 봐왔던 다른 피해 동물들과는 달리 야생에 잘 적응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불쌍하게도 미국 희귀동물보호법에서 이 늑대를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개의치 않는 누군가와 맞닥뜨린 것이다.

체내에 남지않은 총알파편
우선 일차 조사를 통해 총알은 아기의 새끼손가락만한 상처를 남기며 옆구리 뒤쪽으로 들어가 어른의 엄지손가락만한 상처를 남기며 오른쪽 어깨를 관통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머리부터 대퇴부에 이르기까지 전신 X선 사진을 촬영했지만, 사냥용 총알이 몸을 관통할 때 체내에 남게 되는 총알 파편은 찾을 수 없었다.

탄도 보고서를 작성할 총알이나 총알 파편이 발견되지 않자, 스트라우드는 사체 내부 조사를 통해 현장 조사자들이 총알 종류를 알아내고 사체가 발견된 현장에서 탄피를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만한 실마리를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지난 금요일 야생동물 보호관이 사체를 보내오자 스트라우드는 검시를 시작하기 위해 사무실로 달려갔다. 사체는 가로 4피트, 세로 1피트 크기의 아이스박스 안에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스트라우드는 “걱정마시오. 지금 당신 강아지를 부검하러 가는 길이니까.”라며 몇 시간 내에 쓸만한 정보를 찾아낼 것임을 암시하며 보호관을 안심시켰다. 사실, 스트라우드는 야생동물 의학 조사관이다. 그의 검시실은 미국 야생동물 보호국의 법의학 연구소(오레곤주 애쉬랜드) 한켠에 있는 차고를 개조한 것이다.

세계 유일의 동물범죄 연구소
이 연구소는 세계 유일의 동물 범죄 연구소로서 멸종 위기의 희귀 야생동물 밀렵에 관한 수사를 도울 뿐만 아니라 야생동물로 인한 모든 문제를 분석 및 식별하는 능력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 스트라우드는 오늘 있는 늑대 검시를 위해 즐겨 입는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 위에 푸른색 가운을 걸치고 장갑을 꼈다. 얼굴과 마찬가지로 기미가 가득한 그의 손과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현장에서 보낸 50년을 대변하고 있었다.

완벽한 시설의 법의학 연구소
소년기부터 열렬한 사냥광에 낚시광이었던 그는 현장에서 사슴을 치료했던 경력이 1960년대 후반 야생동물학자로서 북극의 바다 포유동물의 위장 내용물 연구를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스트라우드는 전통적인 야생동물 관리에 대해 공부했다. 즉, 야생동물을 보호해야할 사랑스러운 친구로서가 아니라 관리해야할 자원으로 보는 공부를 했던 것이다. “예전 방식으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부정했던 시절, 과학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사냥꾼과 마찬가지로 물개를 죽였던 때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1970년대 초, 스트라우드는 병리학 학위와 함께 수의학부를 졸업했고, 그가 배운 지식을 샌디에고 동물원의 야생동물에 적용했다. 25년 전, 그는 미국 야생동물 보호국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며 주요 임무는 이주된 물새를 괴롭히는 질병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검시실·범죄연구소 병합
1989년, 4천500만 달러를 들여 새로 문을 연 야생동물 협회의 법의학 연구소 소장, 켄 고다드는 스트라우드를 초청해 연구소를 둘러보도록 했다. 전 경찰 범죄 연구소장이었던 고다드는 연구소에 독물학과 DNA에서부터 탄도학과 열추적 증거에 이르기까지 범죄학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최신 설비와 리소스를 갖추었다 스트라우드는 그때 그에게 “모든 면에서 뛰어나군요. 하지만 동물 사체를 검시할 시설은 보이지 않는군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5년 후, 고다드는 다음과 같이 시인했다. “전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습니다.” 경찰의 최신 범죄 연구소에서도 검시는 인근 병원의 검시관에게 맡기는 실정이므로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법의학 수의 병리학자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야생동물 조사관들이 동물 사체에서 총알을 뽑아내 보내주면 탄도를 분석하는 게 전부였죠.” 고다드의 말이다.

수개월 후, 스트라우드가 그의 이력에 워싱턴 D.C.의 미 육군 병리학 연구소에서 검시관으로서 경력을 꾸며 넣어 이곳으로 부서를 옮기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고다드의 말에 따르면, 공기 정화기를 더 설치하자는 자신의 주장을 스트라우드가 거절한 것 외에는 범죄 연구소와 검시실을 병합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경찰 조사관으로서 전 부유 사체를 많이 봐왔습니다.” 고다드는 가장 지독한 사체(부분적으로 물 속에 가라앉아 부패가 진행된 사체)에 대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야생동물의 사체는 이보다 훨씬 더 지독하다. “우리는 고약한 냄새를 참아내는 그의 인내력에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고다드는 스트라우드의 놀라운 참을성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총상 입은후 한동안 배회
스트라우드가 맡는 많은 사건들은 사체의 신선도가 중요한 경우가 많다. 현장 조사관으로서의 경험 덕분에 그는 운반 전에 사체를 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스트라우드는 그러한 사체를 “저녁 식사용 고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오늘 그의 검시대에는 신선하게 냉동되었다가 월요일에 있을 검시를 위해 주말 동안 해동시킨 늑대의 사체가 놓여있다. DNA를 분석해 늑대의 마지막 식사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털가죽과 뼈를 절단하기 전까지는 악취가 없었다.

정확한 조사를 위해 스트라우드는 장기를 만져 늑대의 척추가 총상을 견뎠는지 여부를 알아보았다. 척추는 충격을 견디지 못했다. 이는 늑대가 총상을 입은 후 한동안 도망 다녔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현장 조사관들로서는 나쁜 소식이었다. 늑대가 총상을 입고 바로 쓰러진 경우보다 탄피나 다른 증거를 찾기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트라우드는 곧 정반대의 증거를 찾았다. 나무못을 사용하여 총알이 들어간 자리의 상처를 살피면서 배에서부터 가슴에 이르기까지 총알이 지나간 경로를 조사했다.



정당방위에 대한 반박증거
“총알은 후동맥을 관통했습니다.” 그는 간에서 심장에 이르는 굵은 혈관을 가리켰다. 따라서 늑대는 얼마 못 가서 막대한 출혈로 사망했을 것이다. 스트라우드는 조사관들에게 늑대는 사체가 발견된 곳으로부터 반경 100야드 이내에서 총에 맞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스트라우드는 식칼로 행해진 늑대 해부를 마치고 바닥에 깔린 방수 시트 위에 손상되지 않은 가죽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다시 왼쪽 옆구리의 총알이 들어간 자리에서부터 오른쪽 어깨의 관통한 자리까지 긴 나무못을 찔러 넣었다.

그의 조수인 셜리 오코넬은 위쪽에서 사진을 찍었다. 스트라우드는 이 사진이 늑대가 총에 맞던 순간 달아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배심원들에게 확실히 보여 줄 거라고 말한다. 정당방위로 늑대를 쐈다는 주장을 반박할 결정적 증거가 되는 것이다. 또한 관통한 위치의 크고 처참한 총상은 일반적인 사냥용 총탄이 아닌 라이플과 같은 고화력 무기가 사용되었음을 말해 준다. 스트라우드는 군사용 무기가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실제 총알 파편이나 탄피에 대한 탄두 보고서가 있어야 이러한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 절단된 늑대 사체는 일단 다시 냉동 및 압축 시켜 증거 테이프로 봉인하고 보관용 꼬리표를 붙이게 된다. 얼마간의 운과 기술이 따라서 현장 조사관들이 결정적 증거를 찾기 전까지는 어떠한 범죄 사건도 해결되지 않는 법이다. 결국 늑대의 가죽은 학교나 자연 박물관으로 가게 될 것이다. 조사에 사용된 두개골은 범죄 생태학자가 큰 상자에 키우고 있는 육식 딱정벌레가 깨끗하게 청소한다.

1년간 사체 500-600구 검시
스트라우드는 1년에 평균 500-600구의 사체를 검시한다. 작년 한 해에만 늑대 24마리와 독수리 150여 마리를 포함하여, 미국 희귀동물보호법과 기타 법률의 보호를 받는 여러 동물을 검시했다. 그 외에도 활만 사용하도록 허락된 사슴 사냥 기간 동안 소형화기를 이용하여 사냥을 일삼는 사냥꾼 사건(총구에 화살을 끼워 넣어 합법적인 사냥인 것처럼 꾸미기도 한다), 바늘과 줄을 이용한 스포츠 낚시만 허용된 하천에서 그물을 이용한 낚시, 비행기에서 동물을 사냥하는 행위(스트라우드가 총상의 각도로 밝혀낸 위법 행위) 등 여러 가지 불법 행위들이 있다.

스트라우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단순히 사인을 밝히는 차원(수의학 병리학자의 전통적 역할)을 넘어선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는 “일반 수의사들에게 있어 총상은 그저 총상일 뿐이지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없죠.”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검시관은 범죄 조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죽음을 재구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독극물 중독의 경우, 스트라우드는 독극물 분석에 필요한 조직 샘플을 찾는 것은 물론, 야생동물의 죽음이 고의적이었는지의 여부도 밝혀내야 한다.

사향쥐 내장에 독약 인위적 주입
최근 위스콘신 주에서 발생한 대머리 독수리 떼의 대규모 중독 사건에서 그는 이 새들이 사향쥐와 함께 독성이 강한 살충용 카보푸란 알약을 다량 섭취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농가에서 알약을 섭취한 사향쥐들이 경련을 일으켜 독수리들에게 쉬운 먹잇감이 된 것일까?

최소한 외상 검사의 결과는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스트라우드는 독수리의 식도 부위에 털이 없다는 점을 수상히 여겼고 소화되지 않은 사향쥐 덩어리에서 칼자국을 발견했다. 사향쥐의 가죽이 누군가에 의해 벗겨졌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조사관들은 죽은 독수리가 발견된 지역의 토지주인들에게 사양쥐 고기를 팔아온 사향쥐 사냥군의 존재를 밝혀냈다. 그들은 사향쥐의 가죽을 벗겨 내고 내장을 꺼내 카보푸란 알약을 인위적으로 집어넣은 다음 독수리가 먹도록 한 것이다.

“땅주인들이 개발하고자 했던 사유지 내에 독수리가 서식하고 있었던 겁니다.” 스트라우드의 말이다. “하지만 희귀동물보호법에서 멸종 위기에 놓은 동물뿐 아니라 그들의 서식지까지 보호하고 있어 개발에 장애가 되었던 겁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또 있다. 미네소타주에 거주하는 한 남자가 1990년대 중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늑대를 독살해온 혐의를 받았다. 스트라우드는 마지막으로 희생된 늑대를 검시하면서 뇌와 간, 그리고 신장 샘플을 보내 독극물 분석을 의뢰했다.

용의자 냉장고서 사슴고기 발견
또한 늑대의 위장에서 나온 사슴 고기 덩어리로 DNA 분석을 의뢰했다. 그리고 독극물 검사 보고서는 늑대가 대규모로 청산가리에 중독되었다는 그의 의혹을 확인시켜 주었다(사체 검시 중에 붉은 조직 발견되어 의혹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DNA 분석 결과 늑대의 몸속에 있던 사슴 고기는 용의자의 냉장고에서 발견된 사슴 고기와 일치했다.

스트라우드에 따르면 위의 두 사건은 모두 유죄로 판결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약 25차례나 증인석에 섰다. 하지만 수백 차례의 사체 검시를 실시한 것에 비하면 이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쨌든 이런 결과 덕분에 야생동물 보호국에서 3년 내에 애쉬랜드 연구소에 새로운 법의학 병리 시설을 설치하라며 1천2백만 달러라는 예산을 할당해 주었다. 고다드는 “최신 의학 실험실과 같은 시설이 탄생할 겁니다.”라고 말한다. 아주 정확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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