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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인용 로켓은 어디에? - 이륙준비 완료

만약 그에게 행운이 따른다면 그가 조절판을 돌렸을 때 90퍼센트의 과산화수소는 자기 현재 크기의 5,000 배로 팽창하게 되고 그 열기가 약 화씨 1,300도가 되는 증기로 변환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약 6미터 높이의 안전 기둥에 묶여 있는 내내 그는 약 9 미터 이상 솟구쳐 올라 약 30초가량 하늘을 날게 될 것이다.

만약 그에게 행운이 따른다면 독학으로 로켓 과학자가 된 맥시코인 후안 마뉴엘 로자노는 언젠가 로켓 벨트를 차고 안전 기둥에 묶이지 않은 채 비행을 하게 된 몇 명 안 되는 역사적 인물 중의 한사람이 될 것이다.

만약 정말 그에게 행운이 따른다면 다치지 않고 비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로켓벨트 비행의 길은 멀기만 하다. 현재 51세인 로자노는 처음 로켓벨트가 이륙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이래로 12번째의 비행을 시도하려 한다. 그가 처음 로켓벨트를 제작한 이후 2005년 9월까지 8년의 시간과 50만 달러 이상의 돈을 바쳤다.

오늘을 포함하여 이틀에 한 번씩 로자노는 중산층들이 사는 맥시코시에서 남쪽으로 50마일 떨어져 있는 근교인 큐나바카에 있는 그의 집 뒤 뜰에서 17개의 체크리스트를 검토하며 시험 비행을 해 오고 있다.

그는 항상 연료를 가장 먼저 체크한다. 과산화수소는 90% 농도로 농축되었는가? 만약 농도가 묽다면 그는 오래 비행하지 않는다.

로자노는 연료 탱크를 채우고 체크가 끝나면 질소조정자를 재조정하고 스로틀 밸브가 자유롭고 부드러운지 확인한다. 그리고 나면 체크할 것이 타이머이다.

타이머는 약 10,000 달러어치의 부품들 중 로켓벨트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부품이다. 로자노가 그의 목적을 위해 잘게 자른 이 보잘것없는 부품이 가장 중요한 부품이다. 이 타이머는 작동할 것인가? 로자노는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연료가 오직 30초간 비행할 수 있을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로자노는 10초가 남았을 때 하강하여야 한다.

비행 장치는 매우 뜨겁기 때문에 로자노는 비행 안전 복장을 착용하기 위해 가능한 한 오래 기다린다. 복장을 착용한 후 버클을 채우면 로켓벨트 이륙 준비가 끝난다.

로자노는 가죽 끈을 꽉 죄어 장비가 그의 가슴과 다리에 꼭 맞도록 한다. 그리고 나서 그가 좌우로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제어 바와 제토베이터를 점검한다.

마지막으로 귀마개를 꽂고 질소 밸브를 열고 그의 비행경로에 전선이나 물체나 동물들이 없는지 최종적으로 점검한다.

그리고 나면 로자노는 30년간 그의 아내인 이사벨을 향해 미소를 지어주고 짧은 기도를 한 후 솟아오른다.

세 가지 중요한 사실
1
오직 12명만이 안전보호 기둥에 몸을 묶지 않고 비행하였다.
2 이륙시 로켓벨트와 과산화수소 연료의 무게는 150 파운드(약 68kg)이다.
3 30초 이상 비행한 로켓벨트는 아직 없다.


꿈의 들판

“나는 자이로콥터, 헬리콥터, 곡예비행 등 하늘을 나는 것이면 뭐든지 합니다.” “그 중 로켓벨트가 가장 힘들지만 어떤 비행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단지 시간이 걸릴 뿐 로켓벨트도 배울 수 있습니다”라고 로자노는 말한다.

그의 경우 44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의 로켓벨트에 대한 꿈은 그가 7살 때부터 시작되었다. 워크숍 도중 그가 직접 만든 로켓벨트의 동력인 과산화수소를 농축하면서 “나는 지난주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처음 로켓벨트를 봤을 때를 절대 잊지 못한다.”고 로자노가 내게 말했다.

그가 처음 로켓벨트를 본 것은 1963년 NASA가 멕시코 시의 캄보 마테 폴로 그라운드에서 연 우주 엑스포였다.

거기에는 수은 캡슐과 우주선 조종사 복장, 달에서 시험한 음식들이 있었지만 개인용 분사 추진기라고 불리기도 하는 벨 로켓벨트(로켓으로 추진되는 장치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로켓벨트라고 부르기를 더 선호한다)가 단연 으뜸이었다.

21초간의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로켓벨트와 안전보호기둥에 몸이 묶인 채 하늘을 나는 무모한 비행사들은 공상과학의 신봉자의 나이에 상관없이 그들을 판타지로 가득 채운다.

후안은 우주 엑스포 이전에는 이런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지만 계속해서 보기를 원했다. 후안은 그 다음 날 엄마에게 또 전시회에 가자고 조른 것을 기억한다. 엄마와 샌드위치를 싸들고 가 오후 내내 장소를 바꿔가며 비행사들의 이륙과 착륙을 지켜봤다.

그 소년은 좀 더 가까이서 지켜보기를 원했고 비행 사이에 로켓벨트가 놓여 있는 곳으로 가서 이 신기한 고안품에 흠뻑 빠져 밸브에 윤활유가 발라지는 것과 지금은 그도 O-ring이라고 불린다고 알고 있는 봉인이 교체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세월은 흘러가는 사이 특히 멕시코 시의 18백만 시민들이 운전하며 복잡한 교통과 싸울 때마다 몇 명의 이 구경꾼 들은 분명히 그 때 그 날을 생각하며 내 개인 분사추진기는 어디 있을지 떠올렸을 것이다. NASA 엑스포의 62만 명의 관람자들 중 일부는 2월 그 날에 그들이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을 또 다시 보았을 것이다.

60년대의 난관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로켓벨트의 짧은 역사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달을 밟는 동안 겨우 12명만이 비행을 하였다. 하지만 후안 마뉴엘 로자노는 달보다는 로켓벨트를 선택하였다.








how it works
슈퍼파워 팩
고농축 과산화수소는 성공적인 비행의 비결이다.


1 수동 조절판은 연료 밸브를 열고 압축질소가스를 배출시킨다.
2 질소는 7갤런의 90퍼센트 과산화수소 연료로 채워진 2개의 바깥쪽 탱크를 통과한다.
3 질소는 과산화수소를 팽창시켜 로켓벨트의 맨 위에 있는 촉매장치 속으로 밀어낸다.
4 촉매는 과산화수소를 고압, 고열의 증기로 변환시킨다.
5 증기는 비행사를 공중으로 밀어낸다.


꿈의비행

로켓벨트의 역사는 공상과학을 실현하려는 과학의 역사이다. 벨 에로우시스템사의 웬델 무어가 1950년대에 벨 로켓벨트를 제작하였을 때에는 1920년대 만화책의 슈퍼영웅인 벅 로저스의 우주여행을 위한 도구처럼 보였다.

무어는 1960년대 초기까지 로켓벨트가 보병의 능력을 더욱 향상시키리라 기대한 미군의 격려와 지원 속에 20초간의 짧은 비행이라는 그리 나쁘지 않은 성과인 과산화수소 동력 로켓벨트를 개발하였다.

하지만 무어가 1969년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을 때 그의 개선된 로켓벨트 개발 계획도 중지되었다. 투자는 급격히 줄어들어 차세대 1인 비행장치의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기획단계로 남게 되었다.

그 때 이후로 로켓벨트는 30초간의 비행 실적을 만들어 내었지만 누구도 큰 성과를 보진 못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초기의 디자인에서 거의 개선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1961년 4월 20일의 안전보호 기둥에 묶지 않은 첫 자유비행 이후 만들어진 모든 기능성 개인용 분사 추진기는 로켓 추진 시의 무게 대비 가장 우수한 추진률을 자랑하긴 하지만 여전히 무거운 두 개의 과산화수소 연료통에 의지해 비행한다.

질산염이 코팅된 여러 개의 은막이 단단하게 채워져 이루어진 촉매제는 연료를 고온의 증기로 변환시켜 비행사를 공기 중으로 밀어낸다.

무어의 초기 비행사들 중의 한 명인 빌 수터는 초기 로켓벨트로 미국의 대통령앞, 슈퍼볼(미국 미식축구) 개막식, 1984년 올림픽 등을 포함하여 1,000번 넘게 비행 하였다.

다른 누구보다도 로켓벨트에 빠져 있는 수터는 로켓티어가 되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장면을 선사하였다.

로켓벨트중의 하나는 은퇴한 스턴트맨인 키니 깁슨이 소유하고 있는데 그는 마이클 잭슨의 “데인저러스” 공연 투어시 매 공연의 마지막 장면으로 무대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로켓벨트 비행을 선 보였다.

연구개발, 디자인, 신제품 안전테스트를
위한 1인으로 구성된 팀


달라스에 있는 깁슨의 회사는 주립 행사나 백화점 오픈 등의 기념행사시에 30초간 비행을 선보이는 대가로 2만 달러를 요구한다. 이렇게 가격이 높은 것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우선 비행을 위해 엄청난 양의 준비가 필요하고 또한 비행 자체에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파워하우스에서 비행을 하는 은퇴한 스턴트맨 돈 스클런드는 로켓벨트 비행을 하늘에서 외바퀴 자전거를 타는 것에 비유한다.

수터는 이를 수영장에서 큰 비치볼 위에 서 있는 것에 비유한다. 자신이 직접 로켓벨트를 개발하고 12차례에 걸쳐 비행한 영국인 비행사 스튜어트 로스는 자신이 작동해 본 모든 기계 중에서 로켓벨트의 조절판이 가장 정확하다고 말한다.



로켓벨트를 만드는 데엔 몇 가지의 엔지니어 기술과 인내, 용기, 그리고 많은 규모의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로켓벨트를 제작하는 데 컨설팅을 해 온 기계공학자이며 우주항공학자인 딕멘은 말한다.

자신의 로켓벨트도 개발하고 있는 그는 또한 본인 스스로 로켓 과학자가 됐을 때라야 로켓벨트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웃집의 로켓 아저씨

로자노는 로켓 과학자도 스턴트맨도 아니다. 그는 종종 피 보는 것을 무서워하는 활기찬 할아버지일 뿐이다. 로자노는 로켓벨트 복장을 모두 차려입었을 때 007영화의 제임스 본드이기 보다는 스턴트로 유명한 앤디 카프만 같아 보인다.

그는 고등학교만 졸업했을 뿐이지만 멕시코시에서 비행사 훈련 과정을 이수했고 휴스톤에서 곡예비행과정을 배웠기 때문에 그가 디자인한 비행기를 비행할 수 있었다.

지난 40년간 로자노는 로켓벨트 애호가이자 지속적인 실험가였으며 그의 집념의 흔적은 집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는 로켓 프로펠러가 달린 5초 만에 250마일까지 속도가 나올 것으로 보이는 오토바이를 내게 보여주었다.

그의 집 뒤쪽은 22,000마력을 낼 수 있고 현재 최고 속도를 경신할 수 있다고 로자노가 말한 차를 위한 로켓 엔진이 있는 곳이다. 로마노의 딸은 그가 그녀와 그녀의 동생을 위해 만들어준 고카트 경주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그녀들은 고등학교 과학제전에서 항상 우승할 수 있었다.

그의 집 뒤뜰은 별난 친척의 비행을 보기 위해 치킨 포졸레를 한 접시 들고 그의 집에 찾아오는 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아보카도, 라임, 무화과, 구아나바나, 오렌지 나무와 수십 종의 꽃 들이 만발해 있고 용접기와 고양이가 함께 어울려있는 에덴동산과 하이테크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로자노가 직접 디자인 그의 집은 크진 않지만 인공폭포와 뜰에서 따온 라임과 함께 데킬라를 한 잔 하기에 최적의 장소인 테이블이 있는 풀장이 있다.

이런 집이야 말로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그런 집이면서 동시에 커다란 과산화수소 증류기계와 6미터짜리 안전보호 기둥에 의지한 로켓벨트 비행에 완벽한 장소이기도 하다.

로자노의 실험정신은 복잡하지 않다. “스스로 할 것”, “결과를 확인할 것”, “반복할 것”뿐이다. 그는 로켓벨트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조사, 디자인, 실험을 혼자 다 하는 1인 팀이 되었다.

그의 희망은 그동안 연구해온 모든 것이 그가 직접 고안하고 제작한 로켓벨트를 등에 달고 안전 보호 기둥에 묶이지 않은 채 하늘을 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로켓벨트의 개발을 위해서는
용기와 인내, 대규모의 자금과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만약 계획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면 그는 하나의 세트인 연료공급기계와 고객맞춤 로켓벨트, 비행도구와 기술지원을 포함하여 35만 달러에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이런 판매를 통해 그는 또한 그의 다음 버전 로켓벨트 연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돈이 많이 생기면 좋겠지만 로자노가 하는 일은 돈 버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자신을 매료시킨 로켓벨트 비행의 꿈을 쫓을 뿐이다.

만약 영화나 TV가 아닌 당신 눈앞에서 1인 비행을 보고 듣게 된다면 이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지 알게 될 거라고 로자노는 말한다. 비행을 위한 욕구는 어쩌면 유전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로자노의 증조부는 기구를 통해 비행한 최초의 멕시코 인이고 그의 할아버지는 이중날개가 달린 비행기를 조종했다 .

로자노는 비행훈련과정 이후 상업용 비행기를 조종했다. 로자노의 적극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들은 비행을 포기하고 귀금속가공업에 뛰어 들었다. 귀금속을 통한 수입이 비행보다 더 좋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의 아들은 자신의 생각에 변함이 없다.

1975년의 그의 20번째 생일날까지 그는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목록을 만들었다.

1. 나 스스로 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고 제작한다.
2. 현재보다 더 반응성이 좋은 촉매 꾸러미를 개발한다.
3. 노즐과 측면 튜브를 새로 배치한 로켓벨트를 고안하고 제작한다.
4. 이 장치로 비행을 연습한다.
5. 내가 가진 모든 인생과 돈을 여기에 허비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사실 그 후 20년 동안 로자노는 한두 가지 사항의 개량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연료가 가장 중요한 항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나중에 8년간 로켓벨트 디자인의 개선을 위해 자금을 투자하기도 했다.

비행방법의 습득도 중요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가장 우선인 것은 과산화수소였다. 그 스스로 과산화수소를 만들지 않는 한 이 하나만을 위해서도 터무니없이 많은 돈이 필요했다.

엔지니어들과 화학자들은 한결같이 그에게 개인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개인용 로켓연료를 만들 수 없다고 했다.

말 그대로 과산화수소는 매우 위험한 물건이다. 베인 상처를 소독하는데 쓰이는데 3퍼센트의 과산화수소를 사용하고 머리를 염색하는데 6퍼센트의 과산화수소를 사용한다.

하지만 로켓벨트를 위해서는 90퍼센트의 과산화수소가 필요하다. 위크숍에서 그는 과산화수소가 얼마나 파워풀한지 보여주었다. 극소량의 과산화수소를 가죽에 쏟는 즉시 화염 속에 폭발하였다.

로자노는 과산화수소장치를 19년 동안 8번이나 다시 만들고 나서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과산화수소에서 조심스럽게 물을 뽑아내는 완벽한 증류를 위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증류장치가 듣기 좋은 윙윙대는 소리를 내는 것은 증류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다.

로자노는 워크숍에서 화학재료를 판매하는 가게에서 구입한 과산화수소가 들어 있는 작은 냉동기로부터 50퍼센트 과산화수소를 분리하여 증류장치의 왼쪽에 부었다.

화씨 158도인 증류기는 천천히 과산화수소로부터 물을 분리하였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증기를 이동시켰다. 하지만 만약 증류기가 완벽하게 이동량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과산화수소는 물과 함께 오른쪽으로 이동하거나 물이 다시 과산화수소 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연료는 쓸모없게 된다.

이 과정은 얼핏 보기에는 쉽게 느껴지지만 로자노가 연구실에 침대를 가져다 놓을 걸 보면 매우 어려운 과정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1990년대까지 로자노는 로켓벨트를 추진할 연료는 가졌지만 로켓벨트를 제작할 자금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개인이 하기에는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연료를 만들어내는 장치를 개발하였다는 점이다.








타임라인
비행의 꿈
공상과학 판타지로부터 고난이도의 곡예비행까지, 1인 분사 추진 비행은 거칠고 험난했다.


1920년대
공상과학소설인 “Skylark of Space”에 1인 분사 추진 비행이 처음 등장함. 만화책 영웅인 벅 로저스에 의해 1928년 어메이징스토리 표지에 묘사됨.

1961년
1961년 4월 20일, 뉴욕 주의 나이지리아 폭포에서 헤럴드 그라함이 웬드웰 무어의 벨 라켓벨트를 타고 자유비행에 성공함. 같은 해에 미국 대통령 존 케네디 앞에서 비행함.

1965년
로켓벨트가 알려지고 영화와 각종 행사에 자주 등장함. 007영화 시리즈인 ‘썬더볼’에서 제임스본드 역의 숀 코너리 대역으로 스턴트맨이 비행함.

1984년
1인 분사 비행의 역대 최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스앤젤레스에 올림픽 개막식에서 비행함.

1995년
오너 들 중 한 명이 죽고 교도소에 수감된 나머지 2명 간의 내분에 의해 RB-2000 모델은 한 번만 비행하고 종적을 감춤.

2004년
스턴트맨 에릭 스콧에 의해 2004년 4월에 영국에서 약 46미터까지 비행에 성공함. 이 기록은 빌 수터의 기록을 경신하며 세계 기네스북에 로켓벨트로 가장 높이 비행한 기록으로 등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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