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는 허리케인 마를린이 세인트 토마스를 폐허로 만들고 지나간 직후였으며 수트씨는 이 태풍의 시속 약 152킬로미터 바람에 이 섬의 가옥과 건물의 80퍼센트가 어떻게 그리고 왜 무너졌는지를 조사하는 팀의 일원이였다.
“일부지역의 경우 완전히 파괴되어 거의 사실이 아닌 것처럼 보였죠. 길거리엔 군인들이 머리 위로는 군용 헬리콥터가 떠 있었어요.”라고 수트씨는 회상한다.
지붕이 날아가고 집들이 뒤집어진 현장을 헤치며 나가던 수트씨는 이 손실의 대부분을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집을 하나하나 살펴본 저는 태풍에 못 견딘 것은 나무가 아니라 나무를 고정하고 있던 못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죠.”
이런 사실의 인식으로 인해 지진, 풍동이나 벽을 부수는 거대한 기계들과 머리를 맞대고 씨름하는 긴 여행을 시작하게 되리라고는 그 당시 수트씨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면 11년간 10여종이 넘는 태풍과 수 천개의 견본을 거친 후 마침내 전 세계의 집들 대부분에 쓰이고 있는 작은 대못을 재 발명하였다는 칭송을 받게 되리라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간과된 못의 중요성
2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나무틀로 된 구조물을 고정하는 수단으로 주로 못이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못이 지탱하고 있는 그 모든 것에 비해, 못은 연구 개발 대상에서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 하찮은 존재였다. 못은 공사 계약업자나 기술자들이 당연시 여겨져 온, 가장 저렴한 것이면 좋다는 식의 상품으로 발전되어 왔던 것이다.
수트씨면 당연히 알 것이다. 동료들 사이에 ‘못 박사’라고 알려져 있는 그는 코네티컷 주의 교외에서 건축 계약업자의 아들로 성장하면서 이곳에서 주말을 작업장에서 보내며 14세부터 집을 짓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그는 목수로 일하였고 그 후 자신의 건설업을 시작하였다. “전 공사 계약업자로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죠. 왜냐하면 거의 모든 걸 손으로 직접 못을 박으려 했거든요. 하루는 제가 문 위에다 위쪽 판자를 대기 위해 못질을 하던 중 부은 손을 보게 되었는데, 손마디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학교로 돌아갈 결심을 했죠.”라고 그는 말한다.
공학 과정에 필요한 학비 마련을 위해 수트씨는 클렘슨의 풍하중을 측정하는 부서에 연구보조원 자리를 얻게 된다.
이곳에는 연방 재난관리청이 풍속과 목조틀 구조의 붕괴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하도록 보조금을 지급한 상태였다. 이 일은 수트씨에게 아주 좋은 자리였는데, 그 이유는 그가 실제로 알고 있는 지식과 공학을 접목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저희는 풍속과 기압을 측정하는 이 이동 일기 관측소를 손으로 직접 만들었죠. 그리고 허리케인보다 더 앞서 가서는 태풍의 진로에다 떨어트려 놓았죠. 태풍이 지나간 후 그 지점으로 가서 실제 풍속과 집이 부서지기 시작하는 시점 사이에 상호관계를 수립할 수 있을지를 보았죠.”라고 그는 말한다.
현장에서의 결과치와 실험실에서의 실험치를 통합해 본 서트씨는 집을 더 견고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죄는 장치, 특히 지붕과 벽의 널을 집 틀에 고정시켜주는 못의 개선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술자들과 건축법규 입안자들이 중요한 사실을 놓쳐 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죠. 모두들 못은 못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죠.”
바로 이 회사에서는 막 죄는 장치 공학에 대한 투자를 늘린 상태였고, 면접을 보기 위해 수트씨를 불렀다. 면접에서 이 젊은 공학자는 연구에 대해 새로운 사고방식에 대한 그의 비전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에는 회사들은 못 생산 방식에만 신경을 썼었죠. 전 사용되는 못에 따라 어떻게 구조가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수트씨는 스텐리의 계열회사인 보스티치사와 죄는 장치 공학자로 계약을 맺었고 로드 아일랜드에 있는 본사 건물에 자리하고 있는 새 연구실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는 그가 일생을 바쳐 준비해 온 작업처럼 보였던 일, 즉 더 나은 못을 개발하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철 소재의 재개발
허리퀘이크를 개발하는 6년 동안 미국에서는 14차례 대형 허리케인을 비롯한 열대 태풍이 지나갔으며 가옥 수 만 채를 파괴하고 약 1천6백6십억달러(약 355조원)의 재산피해를 입혔다.
지난 1994년 LA 지역을 휩쓸고 간 노스리지(Northridge) 지진 이래 미국에서 큰 지진이 발생한 적은 없으나 전 세계적으로 보면 수 천명의 사람들이 목조 건물이 무너지면서 집과 가족을 잃었다.
정확한 통계치는 없지만, 스투씨의 연구에서는 이 같은 재난 발생 시 붕괴의 상당부분은 못이 제 기능을 못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못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의 이유에서이다.
즉 못의 머리 부분이 널을 가르면서 빠지는 경우, 못대가 틀에서 뽑히는 경우, 아니면 강풍과 지진 시에 집을 뒤흔드는 측면의 힘에 의해 중간부분이 꺾이는 경우 이 중 하나가 그 이유였다. 수트씨가 할 일은 이 세 가지 모두를 견뎌내는 못을 만드는 것이었다.
“첫 샘플 작업에서 저희는 못이 대에서 빠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못의 머리 부분을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입증해 보였죠. 그렇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크게 만들 수는 없었죠. 못 총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여야 했으니까요”라고 수트씨는 말한다.
보스티치팀에서 머리에서 몸대 부분까지의 비율을 미세 조정하는 동안 수트씨와 야금학자 톰 스털씨는 고탄소 합금을 최적화 하여 단단함과 유연성 사이에서 가장 견고한 합일점을 찾는데 주력하였다. 이는 못이 꺾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저희는 못이 뽑히지 않도록 할 방법을 고민하였죠”라고 스투씨는 말한다. 이 팀에서는 못의 끝부분에서 몸대까지 이르는 가시가 박힌 고리를 여러 개 만들어 사이즈와 가시부분의 위치를 달리하면서 실험해 보았다.
“이 고리부분이 최대의 홀딩력을 가져야 할 부분이죠. 하지만 이 부분이 너무 위에까지 이르게 되면 오히려 약한 몸대가 되어 더 쉽게 꺾어지게 됩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 팀에서는 가장 적정한 합일점을 찾아 수백 개의 디자인을 실험해 보았다. 가장 최근에 만든 샘플이 제일 견고하였으며 따라서 보스티치에서는 2005년 ‘Sheatehr Plus’라 명명한 가시망이 달린 못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 해결책들은 그들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즉 가시망 부분이 대를 뚫고 지나가면서 몸대보다 약간 더 큰 구멍을 만들었고 접합 부분이 헐겁고 엉성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못의 몸대 윗부분을 대에 고정시킬 방법이 필요했죠.”라고 수트씨는 말한다. 그는 이 문제를 두고 그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수차례의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거쳤다. 그렇게 해서 나온 해결안은 스크루 모양의 몸대, 즉 몸대 윗부분을 약간 비틀어 못을 박힌 곳에 고정시키자는 것이었다.
스크루 몸대, 가시가 막힌 고리부분, 더 두터운 머리 부분 그리고 강력 합금이 더해져 2세기가 넘도록 못을 괴롭혀온 문제들에 대한 멋진 해결안을 탄생시켰다. 수트씨의 팀은 사실상 못을 재발명한 셈이었다.
바람이 몰아치고 몰아친다 그리고는...
보통 집이 버티지 못하는 현상은 유리창이 깨지면서부터 시작된다. 강풍은 위부분에는 저기압을 형성하면서 집을 마치 풍선처럼 납작하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이 압력의 차이로 나무에 박혀 있는 못의 머리가 뽑히거나(우측) 틀에서 못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아니면 못을 옆으로 꺾기도 한다.
허리퀘이크 못(위)은 큰 머리부분, 나선 그리고 단단히 고정하는 꼬인 윗부분으로 구성되어 집이 무너지는 일을 방지하도록 고안됐다.
과학을 위해 벽을 두드리다
플로리다 국제대학과 독립 빌딩 안전 규격 협회인 국제 규격 협회에서는 허리퀘이크가 다른 전기로 박은 못보다 ‘들어올리는 힘 최대치(uplift capacity)’가 두 배 더 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독자적인 실험에서는 허리퀘이크가 일반 주택의 강풍에 대한 저항력을 최고 2배로 늘여줄 뿐만 아니라 지진에 대한 저항력은 50퍼센트까지 증대시켜준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필자는 그 저항력이 실제 어떤지 보고 싶어 크렘슨의 도시공학 및 공학기계학의 대학원 프로그램 담당자인 스콧 쉬프씨에게 허리퀘이크에 대해 실험 몇 가지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수트씨에게 그의 옛날 작업장으로 함께 가줄 것을 부탁했다.
수트씨를 클렘슨에서 지도한 바 있는 쉬프씨가 풍하중 실험 시설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이 시설은 사우스 캐롤니아의 북서쪽에 있는 대학의 캠퍼스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대형 창고 2곳에 설치되어 있다.
창고 안을 들어서면 쉬프씨가 만든 태풍을 연구하는 사람이면 꿈 꿀만한 실험실과 같은 공간이 나온다. 여기에는 대형 풍동과 스티로폼으로 만든 도시와 교외 모델, 그리고 심지어는 단면 2X4크기의 재목을 벽으로 쏘는 가정에서 제조한 대포도 있다.
뒤쪽에 있는 창고에는 높이 약 6미터의 I 빔들이 중세 고문 기구처럼 솟아 있다. 쉬프씨의 제자들이 이 기기에 8d짜리 ‘흔한 못’을 사용하여 만든 평방 2미터짜리 벽을 고정시켜 두었다. 이 벽은 조만간 체계적인 방법으로 쪼개질 것이다.
“자 이것이 바로 Monster입니다.”라고 기계의 작동장치를 향해 몸짓하며 쉬프씨가 말한다. 이 작동장치는 벽을 45도 각도로 위로 끌어올릴 것이다. “저희는 이 장치로 들어올림과 변형이 동시에 일어날 때의 힘을 모의로 연출합니다. 이는 강풍이 발생할 때 집에 가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죠.”
최대 2만 파운드(약 9천 킬로그램)의 힘까지 내는 기기는 죄는 장치가 시스템의 일부로 어떠하 역할을 하는지를 실험한다.
“오늘은 그 정도까지는 올리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쉬프씨가 필자를 안심시킨다.
“제가 처음 이 장치를 사용했을 때는 제 박사 과정 연구의 한 부분으로 서까래를 관통하는 못에 이 변형의 힘을 적용해 보려 했었죠. 하지만 전 이를 잘못 세팅시켰고, 이 장치를 켠 저는 말 그대로 장치를 망가뜨렸죠”라고 죄 지은 듯한 웃음을 지으며 스투씨는 말한다.
“저희는 이걸 다시 제작하기 위해 내보내야 했었죠”라고 말하는 쉬프씨의 얼굴은 촉망받는 학생이 다시 나타나는 것에 대해 재고해야 했다는 듯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저희는 이제 집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집에 일어나는 일들을 모의실험할 것입니다. 이는 노어이스트, 강풍, 허리케인 또는 토네이도 등을 포함합니다”라고 컴퓨터에 명령을 입력하면서 쉬프씨가 말한다.
이 기기는 18회에 걸쳐 압력을 상하로 널뛰듯 바꿔가면서 벽면을 당겨 동강이 나게 할 것이다. 이때 벽이 견디지 못하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매회 그 힘을 점차적으로 증가시켜 나간다.
처음 몇 회 진행되는 동안에는 별 변화가 없다. 그러나 그 힘이 5천파운드(2,260킬로그램)까지 늘어나가 벽에 균열이 생기고 터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7천파운드(3,170킬로그램)에 이르자 지붕널의 접합 부분이 서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9천파운드(4,080킬로그램)에 이르자 구조물에서 못이 뽑혀 나가기 시작하면서 펑 소리가 더 심해진다.
“마치 공휴일의 불꽃처럼 탁탁하는 소리가 나지요”라고 쉬프씨가 말한다. 이때 계기판은 1만파운드(약 4,500킬로그램)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쯤되면 집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라고 판들이 바깥을 향해 뒤틀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스투씨는 말한다.
1만3천5백 파운드(6,120킬로그램)가 되자 구조물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갈라지면서 동강이 나버렸다. 우리는 그 지점으로 걸어가 못들을 살펴보았다. 일부는 틀에서 뽑혀 나와 있었고, 다른 일부들은 머리 부분이 지붕널에서 쑥 밑으로 들어가 있었다.
대못 대부분은 복합적인 하중에 의해 모양이 변형되어 S자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었다. 쉬프씨는 “전통적인 못들이 어떤 식으로 제구실을 못하는 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와 그의 제자들이 기계를 다시 조정하고 판을 교체했다. 한 시간 후 이 기기는 다시 작동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번에 이 판들을 고정하고 있는 것은 허리퀘이크1로, 8d 일반 못과 그 크기가 같다.
쉬프씨가 기계를 가동시키고 우리는 기다려 보았다. 화면에 의하면 이 기기가 벽면을 1만2천파운드(5,670킬로그램)의 압력으로 당기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구조물은 압력을 받고 있다는 징후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심지어 균열이 간 곳도 없다. 이 기기는 전통적인 못들이 제 기능을 못한 1만 4천 파운드(6350킬로그램)까지 질주했다.
1만6천파운드(7,250킬로그램)에서 기록된 것을 보니 벽이 4분의 1인치도 채 안되는 정도로 움직였음을 알 수 있다. 마침내 1만 8천3백파운드(8,300킬로그램)에서 이르자 설치물에서 못들이 뽑히기 시작하고 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자를 먹고 난 후 또 다른 판이 준비되었다. 이번에는 스투씨의 못 중 더 튼튼한 버전인 허리퀘이크2로 벽이 고정됐다. 기기가 1만 파운드(4,500킬로그램)까지 올리고는 그러고는 1만 5천파운드(6,800킬로그램)까지 올린다.
특별히 눈에 띄는 영향은 없는 듯 하다. 압력 그래프 선이 1만7천(7,710킬로그램), 1만8천(8,160킬로그램)으로 계속 올라가는 동안 쉬프씨는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다. 벽에서 삐걱하는 소리가 조금 들렸다.
“이 기기를 최대치까지 올리면 어떨까요.”하고 스투씨가 말하자 “자네 신용카드 두고 가게.”라고 말하는 쉬프씨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1만9천 파운드(8,610킬로그램)가 되자 판이 군데군데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지만 못들은 꿈쩍도 않는다.
그래프의 선이 호를 그리며 1만9천5백(8,840킬로그램)을 기록하더니파르르 떨면서 2만(약 9천킬로그램)을 향해 달린다. 조절장치가 떨리자 쉬프씨가 한 발짝 물러선다. 갑자기 케이블이 느슨해진다. “이런, 제가 기계를 또 망가뜨린 것 같은 걸요”라고 수트씨가 말한다.
무언가를 지을 만한 기반
검토해 본 쉬프씨는 기기가 사실은 괜찮다고 판단한다. 기기가 지치기 전에 조정장치가 멈춘 것이다. 교수가 무릎을 꿇고는 벽 아랫면을 살피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판은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는데 반해 못들은 저 안에 그대로 고정되어 있어요.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우리가 다 식은 피자 남은 조각을 먹으면서 학생들이 벽을 떼어내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수트씨는 활짝 미소를 짓는다. 그의 옛 스승은 그의 발명품에 분명 깊은 인상을 받았으리라.
보스티치의 스투의 상사들 역시 만족스러워 할 것이 틀림없다. 이 회사는 생산하는 허리퀘이크 못은 모두 판매하고 있으며 생산 능력을 매월 2배씩 늘이고 있다.
현재 이 못은 멕시코만 지역에서만 판매되고 있으나(일반 2천 입방 피트(약 185 입방미터) 주택에 15달러(약 1만 4천원)의 추가비용만 든다), 전국적인 수요에 맞추어 회사 측에서는 새 생산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물론 이 못은 건축 기술 전문가로부터 극찬의 평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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