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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없는 과거를 복원하는 기술

공룡 알 화석이 언제 생겨난 것인지, 또는 암석의 융기가 어떤 속도로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극미량의 방사성 동위원소가 얼마큼 있는지 측정을 통해, 그리고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자연의 역사를 정확히 되짚어낸다.

특히 과거를 복원하는 기술을 통해 남극을 파 내려가면 100만 년 전의 역사와도 만날 수 있다.

동위원소로 지질학 연구

최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20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장비를 들여놓았다. ‘가속기 질량분석기’라는 것이다.

가속기 질량분석기는 극미량의 방사성 동위원소가 정확히 얼마만큼 있는지 잴 수 있는 장비다.

흔히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이 어느 연대의 것인지를 분석해 내기 위해 동위원소 연대측정을 하는데, 가속기 질량분석기는 동위원소의 양을 가장 정확히 재는 도구로 꼽힌다.

방사성 탄소 동위원소를 이용한 방법은 가장 일반화된 연대 측정 방법이다.
일반적인 탄소는 양성자 6개와 중성자 6개로 이루어져 있는데(양성자와 중성자 수를 더해 탄소-12라고 쓴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방사선이 대기 중 질소(N-14)와 부딪히면 탄소-14가 된다.

탄소-12에 대한 탄소-14의 양은 거의 일정한데, 약 1조분의 1이다. 탄소-14가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가 되든지, 아니면 다이아몬드가 되든지 그 농도는 마찬가지다.

대기를 호흡하는 동식물도 체내에서 탄소-12와 탄소-14의 비율을 측정하면 같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식물이 죽고 나면 이때부터는 호흡을 하지 못해 방사성 원소인 탄소-14는 붕괴돼 점점 줄어든다.

그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반감기)이 5,730년이다. 결과적으로 탄소-14의 농도를 측정했을 때 1조분의 1이라는 기준 농도보다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를 계산하면 탄소-14를 포함한 유물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땅 속에 묻힌 사체나 유물에서 탄소-14의 양을 측정한 결과 탄소-12에 대한 농도가 1조분의 1보다 4분의 1밖에 안 되는 4조분의 1이었다고 하자.

탄소-14는 당연히 있어야 할 농도보다 절반의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므로 2번의 반감기를 거친 것이고, 1만1,460년(5,730년 x 2) 전 붕괴를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 유물은 약 1만1,460년 전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속기 질량분석기는 연대 측정에 쓰이는 동위원소의 양을 재는 가장 정밀한 기기다.

동위원소를 측정하는 다른 방법도 있지만 가속기 질량분석은 1,000개의 탄소 중 1개의 탄소-14가 섞여 있어도 알아낼 정도로 민감하고, 시료가 조금만 있어도 측정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기기가 아무리 정밀해도 연대가 7만년이 넘어가면 유물의 연대 측정은 어려워진다. 반감기를 수차례 거치면서 탄소-14가 절반의 절반의 절반으로 줄어들어 거의 남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질자원연구원이 도입한 가속기 질량분석기는 탄소-14보다 반감기가 훨씬 긴 베릴륨-10과 알루미늄-26을 측정할 수 있다.

베릴륨-10은 반감기가 160만년이고, 알루미늄-26은 70만5,000년이어서 수백만 년에서 수억 년까지 연대 측정이 가능하다.

때문에 탄소로는 연대 측정이 불가능한 공룡 알이나 공룡 발자국 화석, 암석의 융기율 등도 알아낼 수 있다.

지질자원연구원의 홍 완 박사는 “흔히 활용되고 있는 유물의 연대 측정뿐 아니라 육상지질, 해저지질 연구와 결합해 지구환경 변화에 적극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석의 융기 연구를 예로 들어보자. 지층이 융기돼 단구가 생성되면 맨 처음 지층 밖으로 노출된 암석은 베릴륨-10을 함유하게 된다.

베릴륨-10의 양은 노출된 시간에 비례한다. 결국 이 농도를 측정하면 얼마나 오래 전부터 지층 위로 솟아올랐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나이테로 나이를 말한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은 1940년대부터 쓰여 왔고, 이를 개발한 리비 박사는 노벨상도 받았다.

하지만 주로 탄소를 이용한 동위원소 연대 측정은 사실 오차가 있다. 동위원소 연대 측정의 전제는 탄소-12와 탄소-14의 비율이 늘 일정하다는 것이다.

이 농도(1조분의 1)를 기준으로 삼아서 탄소-14의 양이 얼마나 적은지를 비교해야 반감기를 곱해 연대를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기준 농도가 시기에 따라 고정적이지 않고 약간의 변화를 보인다.

태양의 활동에 따라 탄소-14가 생성되는 양이 약간씩 달라질 수 있고, 때에 따라 탄소-14의 농도가 달라지면 반감기에 의한 연대 측정도 부정확해 질 수밖에 없다.

현대의 연구자들은 이 같은 문제를 보정해서 탄소 동위원소 연대 측정을 하고 있는데, 그 보정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나무의 나이테를 이용한 연륜 연대 측정법이다.

나이테로 연대를 측정하는 원리는 아주 단순하다. 지금 나무를 베었을 때 나이테가 50줄이면 이 나무는 50년 전인 1957년 처음 싹을 틔운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또한 이미 집이나 나무를 만드는 데 쓰인 나무라면 언제 베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다는 것인가? 비밀은 바로 나이테의 패턴에 있다.

나이테는 기후조건에 따라 빨리 성장한 해에는 간격이 넓고 성장이 더딘 해에는 간격이 좁다.

예컨대 맨 바깥쪽부터 나이테 간격을 수치화했을 때 3㎜-1㎜-2㎜-2㎜-4㎜ 같은 식의 그래프를 만들었다고 하자. 일정 지역 내에서 나무들의 나이테 간격을 측정해 보면 나이테 간격의 절대값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해에 따라 빨리 자라고 좁게 자라는 패턴은 비슷하게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한 나무의 경우 3㎜-1㎜-2㎜-2㎜-4㎜씩 자랐고, 다른 나무의 경우 2㎜-0.7㎜-1.3㎜-1.3㎜-2.7㎜씩 자랐다면 두 나무는 나이테 간격이 넓고 좁은 패턴이 같기 때문에 같은 시기에 자랐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올해 벌목된 100년 수령의 A나무와 언제 벌목한지 알 수 없는 B나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일 A나무의 중심에서부터 30년까지의 나이테 패턴과 B나무의 바깥쪽 30년 나이테가 같다고 한다면 B나무는 A나무가 수령 30년이었을 때, 즉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에 벌목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B나무의 수령이 200년이라면 B나무는 지금으로부터 270년 전인 1737년에 땅에서 나와 1937년까지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의 생몰 연대가 확인되는 것이다.

해외의 연구자들은 이런 식으로 나이테 패턴의 데이터베이스를 수천 년 전까지 확장했다.

우리나라는 충북대에 있는 목재연륜소재은행(은행장 박원규 교수)이 지난 10년간 소나무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800년 전까지 나이테 패턴을 확보해 두었다.

이에 따라 1200년대 이후 태어난 소나무라면 나이테만 보고도 언제 살았던 것인지 연대 추적이 가능하다.

단 나이테 한 두 줄만으로는 비교가 어렵고, 패턴을 비교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나이테가 확보돼야 한다.

쉬우면서도 확실한 이 방법을 이용해 실제 나무가 쓰인 유물의 연대를 확인하는 작업이 수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박원규 교수는 충북 영동 영국사(寧國寺) 대웅전 재건 작업에 참여했다가 대웅전이 1674년 건립됐다가 불에 탄 뒤 1703년 재건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건물을 해체하면서 드러난 나무 기단과 숯의 나이테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통상 절은 대웅전과 탑이 나란히 건축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영국사의 경우 대웅전이 바라보는 방향과 탑이 바라보는 방향이 15도 정도 틀어져 있어 의문이었다.

하지만 박 교수의 연구결과 1674년 건립된 기단 숯은 탑과 평행이었다가 1703년 재건되면서 15도 틀어진 것으로 나타나 불에 탄 뒤 일부러 각도를 틀어서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의 건축 연도를 이 연륜연대측정법으로 확인한 것은 국사학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일화다.

기록에 따르면 신무문은 고종 2년(1865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 교수팀이 신무문에 쓰인 나무의 나이테를 조사하자 목재가 벌채된 때는 1870~1879년이었다.

조선시대의 기록은 워낙 풍부한지라 박 교수팀의 연구결과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박 교수는 박 교수대로 “나이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맞섰다.

하지만 의문은 곧 풀렸다. 국사학자들이 ‘일성록’이라는 문헌에서 “1872년 4월 고종이 신무문을 속히 완공하라는 윤허를 내렸다”는 문구를 찾아냈던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신무문은 애초 1865년 지어졌다가 1870년대 초 다시 완성된 것이다. 이후 연륜연대측정은 역사 연구의 중요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거 날씨가 얼어있는 빙하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홍성민 박사팀은 최근 중국 고비사막 인근 해발 5,356m의 치례산에서 빙하 코어를 시추해 냈다.

드릴로 수백m까지 수직 구멍을 뚫어 지름 10㎝ 정도의 빙하 원통을 고스란히 뽑아내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를 알아내는 비밀이 바로 이 빙하 속에 담겨 있다.

빙하는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 그 압력에 의해 만들어진 얼음 덩어리로 눈 사이에 있던 공기까지 그대로 담고 있다.

한마디로 빙하 코어는 수만~수십만 년 전의 대기가 연대기 순으로 얼음 속에 갇힌 냉동 타임캡슐이자 대기의 화석이다.

빙하 속에 갇힌 대기의 산소와 수소 동위원소의 비율은 온도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통해 기온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또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메탄가스 등 온실가스의 함량도 추정이 가능하다.

홍 박사팀은 남극에서 100만 년 전 형성된 빙하 코어를 시추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수천m의 빙하가 한 번도 녹지 않고 고스란히 간직된 남극의 빙하는 지구상 담수의 70%를 보유한 얼음 덩어리일 뿐 아니라 과거 100만 년 전에 내린 눈까지 녹지 않고 있다.

결국 가장 빙하층이 두터운 남극의 빙하는 100만 년 전 과거의 기후를 말해준다는 뜻이다. ‘만년설’이 아닌 ‘백만년설’이다.

100만 년 전 얼음을 얻으려면 드릴로 3,000m 이상을 뚫어야 한다. 하지만 이 기술이 녹록치 않다.

표층에서 깊이 내려가면 주변 빙하의 압력에 의해 빈 구멍이 무너질 수 있는데, 1,000m쯤 뚫어놓고 이렇게 무너져 구멍이 막혀버린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압력을 견뎌내기 위해 구멍을 뚫어 얼음을 빼낸 뒤엔 자동차 부동액처럼 얼지 않는 용액을 채워둔다.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런 식으로 수년에 걸쳐 조금씩 깊이 파내려가야 비로소 100만 년 전의 과거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남극에서 채취된 가장 오래된 빙하 코어는 유럽의 공동연구팀이 시추해낸 74만 년 전 것이 최고 기록이다. 최근까지 일본 연구팀이 이보다 더 오래된 빙하를 얻어내기 위해 3,025m나 파내려 갔지만 72만년에 만족한 채 물러나야 했다.

구멍을 뚫은 빙하층의 맨 아래 밑바닥이 72만년 전에서 그친 채 녹아 없어진 것이다. 때문에 더 오래된 과거를 찾아내려면 적설량이 적으면서 빙하층이 두터운 곳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빙하가 10년 전 것인지, 1만 년 전 것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년설이 쌓인 남극이라도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가 있고, 이 때문에 빙하에도 나무처럼 나이테가 생긴다.

결국 나무의 나이를 추정하듯이 표층에서부터 얼음에 새겨진 나이테를 새면 빙하의 나이를 알 수 있다.

물론 강수량과 압축률을 계산해 깊이에 따라 연대를 추정하거나 해양퇴적물의 기록과 비교해서 연대를 보정하는 방법이 병행된다.

최근 지구온난화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세계의 기후학자들은 부쩍 남극에 관심을 쏟고 있다.

지금까지 남극의 빙하 연구를 통해 기후가 수백 년이나 수천 년이 아니라 불과 수십 년만에도 급변했던 일이 과거 여러 차례 반복됐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희원 한국일보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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