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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과학의 세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외계문명의 작품인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 대한 미스터리는 수없이 많지만 의문의 출발점은 바로 건축 시기다.

현재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대략 BC 2,500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스핑크스에 나타난 물에 의한 침식 흔적, 그리고 이집트에서 사자자리가
스핑크스 정면에 나타났던 시기 등을 감안하면 BC 1만970년~BC 7,000년으로 건축 시기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얼핏 보면 고대 건축물의 건축 시기가 보다 오래전의 것으로 드러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규모 및 건축방법 등을 고려하면 현재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보다 훨씬 이전에 정체불명의 초(超) 고대문명이 존재했을 가능성과 외계문명의 존재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세계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피라미드와 부속물인 스핑크스는 과연 어느 시대, 어떤 문명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현재까지는 이집트의 고대문명이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수많은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인류의 문명 이전에 고도로 발달한 초(超) 고대문명이 존재했다거나 외계인의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음모론의 증거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의문의 출발점은 건축 시기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 대한 미스터리는 수없이 많지만 의문의 시발점은 바로 건축 시기다.

현재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대략 BC 2,500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있다기보다는 피라미드를 세울 수 있는 규모의 왕조국가가 성립된 시기가 이 무렵이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이집트 문명이 형성된 시기를 대략 BC 6,000년 무렵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집트 전역을 통일한 국가가 형성된 시기를 BC 3,030년, 본격적인 왕조국가가 시작된 시기를 BC 2,850년으로 보고 있다. 이를 근거로 피라미드가 건축된 시기를 BC 2,500년경으로 역산한 셈이다.

하지만 최대 규모의 피라미드인 쿠푸왕의 피라미드 앞에 세워진 스핑크스에 나타난 침식 흔적은 전혀 다른 가설을 가능케 한다.

사람의 머리에 동물의 몸을 가진 반인반수 형태의 조각상인 스핑크스.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지만 피라미드 앞에 세워져 이를 지키는 상징물로 추정되고 있다.

기록상으로는 오랫동안 모래 속에 묻혀 머리 부분만 남아있던 스핑크스였지만 BC 1,400년경 투트모스 4세가 모래를 걷어냄으로써 전체 모습이 드러난 것으로 돼 있다.

당시 왕자였던 투트모스 4세는 스핑크스 앞에서 잠이 들었고, 꿈에 스핑크스가 나타나 “숨이 막힐 것 같은 모래를 걷어내 주면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말을 하자 이를 듣고 모래를 치웠다고 한다.

이렇게 제 모습을 드러낸 스핑크스는 얼굴 크기만 세로 5.8m, 가로 6m다. 또한 높이는 20m에 몸 전체 길이는 약 52.4m에 달한다.

투트모스 4세는 왕이 된 후 스핑크스의 두발 사이에 자신의 꿈 내용을 적은 비석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스핑크스가 건립된 시기는 대략 BC 2,500년경 카프레 왕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하나의 거대한 암석을 깎아 만든 이 스핑크스의 측면에는 수많은 침식의 흔적이 존재했으며, 이 흔적은 사막 기후의 강력한 모래바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가설이었다.

하지만 이 침식 흔적을 면밀히 분석하면 모래바람이 아닌 물에 의한 침식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문제는 이집트의 기후 상태로 볼 때 BC 2,500년 무렵에는 현재와 같은 메마른 기후였으며, 침식을 일으킬 정도의 홍수는 약 BC 7,000~BC 5,000년 이내의 시기이여야만 가능하다는 것.

사실 투트모스 4세의 전설에서처럼 스핑크스는 지난 대부분의 시간동안 모래 속에 묻혀 있었고, 지금도 모래를 걷어내지 않으면 파묻혀 버리기 때문에 모래 속에 묻힌 채 강력한 모래바람의 침식을 받기는 어렵다.

이로 인해 스핑크스에 나타난 침식 흔적은 모래바람이 아닌 물에 의한 것이며, 물이 아니면 이러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만일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스핑크스가 만들어진 시기는 BC 7,000년~ BC 5,000년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이 시기는 금속을 전혀 사용하지 않던 석기시대다.

또한 사자의 몸에 사람의 얼굴이라는 스핑크스의 특징에 따라 황도 12궁 중 하나인 사자 별자리와의 연관성도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한다.

이집트에서 사자자리가 스핑크스 정면에 나타났던 시기는 BC 1만970년~ BC 8,810년까지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 건축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가설은 다시 피라미드의 건축 시기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스핑크스가 먼저 만들어지고 피라미드가 나중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피라미드의 건축 시기 역시 이집트 초기 왕조국가가 출현한 BC 2,500년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커진다.

얼핏 보면 고대 건축물의 건축 시기가 보다 오래전의 것으로 드러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피라미드의 규모와 건축 방법 등을 고려하면 현재 인류 문명의 발전과정보다 훨씬 이전에 정체불명의 초 고대문명이 존재했을 가능성과 외계문명의 존재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이집트 기자지역에 있는 3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230.5m, 높이는 146.60m에 달하는 거대한 사각뿔 형태의 건축물이다.
평균 2.5톤의 돌 230만개를 쌓아 만든 이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무덤인지 또는 다른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지 불확실하다.

이는 이 피라미드에서 왕의 미라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부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가로·세로 20cm 정도의 좁은 통로를 통해 보이는 별자리의 위치나 기자지역 3개 피라미드의 배열이 오리온 별자리를 모방했다는 측면 등에서 다른 용도의 건물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문들을 상징하듯 공상과학 영화인 ‘스타게이트’에서 피라미드는 초거대 행성 간 우주선의 착륙기지로 표현됐다. 또 다른 영화 ‘제5원소’에서는 지구를 구하는 무기가 탑재된 외계인의 건축물로 표현되기도 했다.

단순히 인간의 상상력을 토대로 한 것이지만 피라미드와 외계인을 연관 짓고 있다는 점은 피라미드에 관한 미스터리에서 출발한 것이 분명해 보이다.

모래사막 한 복판에 세워진 피라미드는 스핑크스의 침식 흔적에서와 같은 의문이 있다. 용도가 왕의 무덤인지, 아니면 천문대인지를 떠나 도대체 왜 모래바람 때문에 모래 속에 묻히기를 반복하는 사막 한복판에 세웠느냐는 것이다.

이는 건축 시기를 스핑크스 가설에서 보듯이 약 1만 년 전(BC 7,000)으로 보면 쉽게 해결된다.

약 1만 년 전의 이집트 기자지역은 모래사막이 아닌 비옥한 토지의 초원지대였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건축됐다면 위치에 대한 의문은 쉽게 풀리는 셈이다.

피라미드의 건축시기와 방법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다.

건축 방법 역시 의문

BC 2,500년경의 기술로도 건축하기 어려운 피라미드를 약 1만 년 전에 건축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결국 외계문명 또는 정체불명의 초 고대문명설로 이어지게 되는것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건축 과정에 많은 의문점이 생길 수 있지만 화강암과 비교해 재질이 무른 석회암을 사용했기 때문에 대량의 금속공구가 사용되지 않았어도 충분히 건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소량의 금속공구와 석기만으로도 건축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또한 거대한 돌을 높은 곳까지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현대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큰 기중기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초대형 기중기의 흔적이 없다는 것은 외계문명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프랑스의 건축가인 장-피에르 우댕은 지난해 피라미드가 내부에서부터 쌓여졌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는 피라미드를 쌓기 위해 약 1.6km에 달하는 직선형 경사로를 만든 뒤 피라미드의 높이가 올라감에 따라 경사로를 함께 높여간다는 기존 건축방법 주장의 맹점을 해결한 것이다.

이 같은 경사로 건축방법의 경우 피라미드 높이를 감안할 때 현재 나타난 경사로 흔적보다 더 길어야만 가능하며, 이렇게 되면 2.5톤 무게의 석재를 이 경사로를 통해 옮기는 작업이 쌓아올리는 작업보다 힘들어지게 된다.

우댕의 주장에 따르면 피라미드의 아랫부분은 경사로를 이용해 쌓아 올렸지만 나머지 부분은 피라미드 내부를 통해 옮겨진 석재를 쌓아올리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즉 피라미드 내부를 돌아가며 최단거리의 경사로를 만든 후 이 경사로를 통해 석재를 밀고, 위에서 끌어당기는 형태로 만들었다는 것.

우댕은 피라미드 내부에서 용도를 알 수 없었던 경사로 복도와 도르래가 달린 밧줄을 연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들의 연구를 통해 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특히 가장 의문이 됐던 5개의 60톤짜리 화강암으로 덮여진 ‘왕의 방’ 천정 부분 역시 이 같은 방식으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높이 43m 부분에 위치한 왕의 방 천장 부분은 거대한 기중기로 위에서 덮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우댕은 내부 경사로만으로 덮을 수 있다는 것을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으로 입증해 보였다.

또한 피라미드 최상단에 올려진 15톤 무게의 사각뿔 형태의 석재 역시 마지막에 덮여진 것이 아니라 건축 마지막 단계에서 옮겨 놓은 뒤 바로 밑의 돌을 쌓으면서 들려 올려진 형태라고 풀이했다.

이 같은 주장들에 따르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건축 과정에 굳이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포함하지 않고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건축방법에 대한 연구결과들이 현재 알려진 건축 시기보다 더 과거 시기에도 건축할 수 있다는 간접적 해명은 될 수 있지만 수 천 년의 차이가 발생하는 건축 시기 문제 자체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스핑크스에 나타난 침식 흔적처럼 수 천 년 전의 시기에 건축이 이뤄졌다면 초 고대문명이나 외계인의 문명이 존재했다는 음모론이 여전히 고개를 들 수밖에 없게 된다.

과연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외계인의 영향을 받은 문명이 건축했는지, 그리고 음모론자의 주장처럼 달이나 화성에도 거대한 피라미드 건축물이 존재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일 수밖에 없다.

강재윤 기자 hama9806@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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