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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과 시신확인

미국에는 10만 명의 실종자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4만구의 시신이 있다. 텍사스 주 포트워스에 있는 인간 신원확인센터는 이들 시신의 신원을 확인해 실종자의 사망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연쇄 살인범의 비밀이 드러난다.

사실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건수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의 숫자를 따져보면 얼마나 많은 살인이 비밀리에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실제 미국 범죄학자들은 연간 1,800건의 연쇄살인이 벌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이전의 예측치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래리 웨더먼은 디어 크릭 로드를 달리고 있었다. 말고삐를 느슨하게 쥔 카우보이처럼 왼손으로는 핸들을 느슨하게 잡고, 오른손은 언제라도 기어를 조작할 준비를 하면서. 구덩이와 돌이 있는 지저분한 길을 달리자 픽업에 함께 탄 사람들의 몸이 흔들렸다.

지난 2000년 미주라 카운티 보안관 에서 퇴직한 웨더먼은 흰색 콧수염을 풍성하게 기르고 카우보이용 중절모를 쓴 탓인지 점잖은 농장 주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눈 오던 지난 해 3월 두 명의 일행을 태우고 몬태나주 실리 호수를 떠나 80km 정도 달려간 쓸쓸한 숲은 20년 전 몬태나에 서 가장 유명한 연쇄 살인범이 시체를 유기한 장소였다.

앞 유리창에 눈보라가 몰아쳤다. 하지만 이 같은 눈보라 속에서도 웨더먼은 길을 따라 서 있는 소나무와 전나무 사이의 작은 틈을 찾아냈다. 그는 길옆에 픽업을 세운 후 문을 열면서 “그놈은 여자친구를 여기로 데려와 파티 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 했다.

데비 디어 크릭

웨더먼은 젊은 보안관이던 1974년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의 최초 사건을 수사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미주라에서 문도 잠그지 않고 외출하던 시대는 끝나 버렸다. 또한 술집에 있던 여자들이 밤늦게 혼자 걸어서 귀가하는 일도 사라졌다.

처음 죽은 사람은 어느 전도사의 아내였다. 그녀는 자기 집 지하실에서 총에 맞아 죽 은 채 발견됐다. 몸은 결박당하고, 재갈이 물렸으며, 그녀의 다리 사이에는 남편의 권총 이 쑤셔 넣어져 있었다. 웨더먼은 피해자의 남편을 심문하는 한 편 그날 피해자의 집 뒷마당에서 목격됐던 이웃의 고등학생을 잠시 동안 용의자로 여겼다.

하지만 혐의를 입증할만한 충분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대배심(大陪審)에 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대배심이란 일반시민이 재판에 참여해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배심제의 한 종류다. 그 후로 12년간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연쇄살인이 벌어졌다.

10대 소녀 3명과 한 쌍의 부부가 죽었고, 그 외에도 강간을 목적으로 한 가택침입 사건이 잇따라 벌어졌다. 그러다가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1986년 웨인 낸스라는 사람이 어떤 부부를 죽이려 다 오히려 자신이 죽은 사건이다.

그는 남편을 결박하고 칼로 찌른 후 부인도 죽이려다 남편이 결박을 풀고 공격하는 바람에 죽었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얼굴의 가구 배달원이자 시간제 경비원이었던 30세의 낸스는 웨더먼 이 지난 1974년 용의선상에 올려놓았던 바로 그 고등학생이었다.

낸스의 방과 낸스 아버지의 집 을 수색한 결과 그가 저지른 다른 살인사건 3건, 그리고 수차례에 걸친 가택침입 사건의 증거물 이 나왔다. 하지만 낸스가 죽어버림으로서 그 이상의 살인관련 증거는 얻지 못했다. 웨더먼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살인사건 피해자 두 명의 시신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됐다.

그 시신 중 한 구는 ‘데비 디어 크릭(Debbie Deer Creek)’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낸스가 사망하기 21개월 전 디어 크릭 로드 옆의 얼어 붙은 땅 속에서 발견된 백골 상태의 10대 시신이었다. 염색된 머리카락을 본 웨더먼은 이것이 낸스와 함께 다니다 몇 주 만에 실종됐다는 10대 소녀의 시신이 아닌가 생각했다.

‘로빈’이라는 별 명이 붙은 이 소녀는 부랑자였다. 웨더먼은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지역 법집 행기관에 여러 통의 회람을 보내 이 소녀의 가족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소녀의 사진과 별명 만 갖고는 그녀의 가족이 어디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데비 디어 크릭의 신원을 알아내려면 시신의 머리카락과 사진 이상의 증거가 필요했다. 우선 기술이 필요하다. 시신이 발견된 지 20년이 지 난 현재라도 소량의 DNA를 시신에서 추출하면 가족의 DNA와 비교해 볼 수 있다.

물론 집을 나간 아이를 계속 찾아다니는 가족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 한 것은 미국 법무부가 미국 내에 예상보다 많은 수의 연쇄 살인범이 잡히지 않은 채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20년 동안 웨더먼의 책장 맨 위에는 데비 디어 크릭의 두개골을 토대로 그녀의 생전 얼굴을 재구성한 그림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크리스티 크리스털 크릭(Christy Crystal Creek)’이라는 또 다른 신원미상 시신의 얼굴 상상도도 있다.

크리스티 크리스털 크릭은 낸스의 집에서 산길을 따라 3.2km 정도 올라간 지점에서 사냥꾼에 의해 발견됐다. 웨더먼은 그 이름 모를 소녀들을 생각할 때면 아직도 괴롭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 한다. “저는 한 때 그 아이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지요.”

의문의 실종

신원미상 시신으로 발굴되는 사람은 데비와 크리스티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연쇄 살인 범도 웨인 낸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저널인 ‘살인연구’ 최근호에서 범죄학자 케나 퀴넷은 과거의 계산법으로는 연쇄 살인 발생 건수를 실제보다 심하게 낮춰 잡 을 수도 있다고 적었다.

연쇄살인 문제는 상상하는 것보다 10배는 더 심각할지 모른다는 얘기다. 사실 미국에서 1년에 연쇄살인으로 죽는 사람은 180명이 아니라 1,800명에 이를지도 모른다. 살인사건 전문가인 퀴넷은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는 인디애나-퍼듀 대학에 근무하고 있다.

그녀는 간단한 계산을 통해 앞서의 결론에 도달했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경찰 증거물 보관실과 검시관 사무실에는 신원이 확 인 안 된 4만구의 시신이 있다고 한다. 시신 의 신원이 확인된 사례를 통해 본다면 이 들 중 대부분은 살인사건 피해자들이다.

퀴넷은 미국에서 보고된 10만 건의 실종 사건 중 20%를 살인사건으로 판단하고 있다. 퀴넷은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은 연쇄 살인범들의 전력을 자신의 연구에 대한 증거로 사용하고 있다. 그녀는 “보통 연 쇄 살인범들은 수년간,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 년간 숨어 활동하면서 범행을 저지른다”고 말한다.

과거의 계산법으로는 연쇄살인 발생 건수를 실제보다 심하게 낮춰 잡을 수도 있다


실제 퀴넷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 연쇄 살인범의 경우 9년 동안 평균 6~11명을 죽인다. 그리고 의료 종사자 가운데 많이 나오는 여성 연쇄 살인범의 경우 같은 기 간 동안 7~9명을 죽인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체포된 연 쇄 살인범의 경우에 한해서다.

퀴넷은 미국의 각 주마다 최소한 2명씩의 연쇄 살인범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100명 의 연쇄 살인범이 잡히지 않고 활개 치며 다니고 있는 셈이다. 워싱턴 주만 해도 22구경 살인범, 색인(Index) 살인범, 르윈스턴 계곡 살인범, 스노호미쉬 카운티 사지절단 살인범 등 적어도 4명의 연쇄 살인 용의자가 활동하고 있다.

연쇄 살인범들의 범행은 대단히 불규칙적이고 잦지 않아서 패턴을 파악해 내 기가 어렵다. 또는 피해자가 실종된 것처럼 교활한 수를 쓰기도 한다. 퀴넷은 미국에서 발생한 수만 건의 실 종사건 중에는 상당수가 살인범의 소행 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법 집행기관이 이 같은 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그녀는 지적한다. 퀴넷은 또한 법집행기관은 가출자, 불법 체류자, 성매매 여성, 그밖에 법원의 영장이 나올 만한 일을 한 사람이 사라지면 실종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 가지 우스운 것은 퀴넷도 지적했다시피 영장은 ‘실종’된 사람들이 법정에 나오지 못할 때 발부된다는 것이다. 미국 법무부 산하 연구기관인 법무연구소의 과학기술 부본부장 존 모건은 미국 사회에 불법 체류자가 많아지는 것도 문제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미국 사회는 다양성이 매우 크다”면서 “많은 살인 사건에는 외국인이 관련돼 있다”고 말한다. 특히 피해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고향을 떠나 사회관계 망(網)과 분리돼 있는 상태다. 이 때문 에 그들이 사라진다고 해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이사를 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그 결과 특정 유형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범죄자에게 법의 심판을 내리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고 모건은 말한다. 이 같은 범죄사건을 해결하려면 수사관이 증거를 찾아내기 전에 가장 먼저 시신과 실종자 간의 연결고리를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퀴넷은 “누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것은 힘들다”고 말한다.

가출과 성매매의 위험

지난 1984년. 데렉 바크만은 누나인 마시 바크만이 가출하는 것을 도왔다. 마시가 워싱턴 주 밴쿠버에 있는 집에서 나갈 당시 나이는 15세. 데렉은 14세였다. 데렉은 이렇게 말한다.

“누나는 의붓아버지 가 자기를 성추행했고, 강제로 애무하게 했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누나한테 이렇게 말했지요. ‘누나 말이 옳아. 그럼 이 집에서 도망쳐야 할 것 같아’라고 말이죠.”

그것이 누나를 본 마지막이었다. 데렉은 현재 세인트루이스 교외에 살며 웹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그는 미국 북서부에는 당시 5명의 연쇄 살인범이 있었다면서 그 때 누나의 가출을 도와준 게 언제나 후회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최소 8명이었다. 1991년 데렉은 누나를 찾기 시작했다. 그 것이 그동안 갖고 있던 불안감의 실체를 확 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는 마시가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연락을 취해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는 전국의 모든 경찰서 강력계와 풍기 사범 단속반에 전화와 편지를 보내 마시를 찾아달라고 했다. 마시가 성매매 여성이 됐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심령술사는 물론 1만 달러나 주고 사립탐정도 고용해 보는 등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다면서 하지 만 소득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도(Doe) 네트워크 같은 웹 사이트는 데렉에게 새로운 수단을 열어주었다. 아마추어 탐정과 실종자 가족들이 운영 하는 이 사이버 게시판은 이런저런 실종사건 은 물론 뉴스나 경찰 보고서에 올라온 신원 미상 시신의 재구성된 얼굴도 나온다.

데렉은 밤새 컴퓨터 앞에 붙어있게 됐다. 누나를 찾겠다는 강박관념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점을 인정했다. 누나를 찾는 과정에서 벌어진 슬픈 일이었다는 것. 사이버 게시판에는 꽃으로 장식된 로빈 이라는 소녀의 추모 페이지도 있었다.

그 페이지에는 ‘이 사람을 아십니까?’라는 글자가 적힌 배너 아래 짙은 머리 색깔을 한 안경 쓴 소녀의 사진이 있었다. 데렉은 그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 소녀의 코와 입은 어디 선가 많이 본 것 같았다.

그는 친척, 가족들에게 그 사진을 보여줬다. 하지만 다들 그녀가 마시는 아니라고 말했다. 마시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 게 다가 머리색도 누나랑 달랐다. 몇 달 후 그는 그 페이지에 남겨져 있던 미주라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그렉 힌츠 보안관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응답은 없었다.

DNA 실험실은 신원미상 시신 4구 중 1구의 신원을 밝혀낼 수 있다


마시가 가출한 1984년은 시애틀 그린 강 살인범이 한창 악명을 떨치던 시기였다. 그 린 강 살인범은 나중에 49명의 여자를 죽였음이 밝혀졌는데, 그 대부분이 성매매 여성 과 10대 가출 소녀였다.

데렉은 그린강 사건 수사본부장이었던 킹 카운티의 수사관 톰 젠슨에게 편지를 썼다. 젠슨은 마시의 치과기록을 자신이 갖고 있던 신원미상 시신 4구의 치열과 대조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일치하지 않았고, 젠슨은 마시의 파일을 서류 보관함에 처박아 버렸다.

2001년 킹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의 부보 안관들은 당시 53세였던 트럭 도색공 개리 리지웨이를 그린 강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했다. 2년 후 리지웨이는 48회의 종신형을 선 고받았다. 그린 강 사건 수사본부의 일은 이 제 끝난 셈이다.

하지만 젠슨은 여전히 살해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자 100여명의 파일을 가지고 있다. 킹 카운티 보안관은 그린 강 수사본부 출 신의 수사관 3명을 차출, 이 파일들을 모두 검토해 실종사건을 종결짓도록 지시했다.

이로 인해 2005년 여름 라파엘 크렌쇼 수사 관은 미주리 주에 있는 데렉에게 전화를 걸 어 마시가 아직 실종 상태인지 물었다. 그리고 크렌쇼는 가족의 DNA와 신원미 상 시신의 DNA를 대조해 보는 새로운 검사법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데렉은 당연히 이 검사를 받겠다고 했지 만 검사에는 부모의 DNA도 필요했다. 아버지는 끝내 설득시키지 못했지만 워싱턴에 살 고 있던 어머니는 설득 끝에 DNA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다음 주 데렉의 어머니는 솜으로 입안 을 문지른 다음 비닐백에 포장해서 보안관에게 보냈고, 보안관은 그것을 텍사스로 보냈다.

신원확인의 연결고리

낸스와 리지웨이가 한창 연쇄 살인을 저 지르고 있을 때는 마시 바크만과 신원미 상 시신의 연관성을 찾아낼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텍사스 주 포트워스의 한 실험실에서 실종자와 신원미상 시신 의 연관성을 찾아내고 있다.

지난해 3월의 어느 날. 꾸준히 내린 비가 포트워스의 문화특구를 가로지르는 트리니티 강의 수위를 높여 놓고 있었다. 또한 노스텍사스 대학 건강과학센터의 진입로에서는 직원들과 학생들이 새로 생긴 물웅덩이를 뛰어 넘으며 다니고 있었다.

인간 신원확인센터는 베이지색 벽토 가 발라진 이 건물의 3층에 자리 잡고 있으며, 여기에는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DNA 실험실이 있다.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DNA 실험실 은 미국에 단 하나밖에 없다. 지난 1989 년 분자생물학자 아서 아이젠버그는 DNA를 이용해 부계(父系)를 밝히거나 살인사건 희생자의 신원을 밝히는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10년 동안 아이젠버그는 현재 DNA 검사에서 사용되는 여러 가지 절차와 표준을 세웠다. 2000년을 전후로 해서는 실종자에게 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2001년에는 직원들과 함께 텍사스 주의 DNA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었다.

이후 인간 신원확인 센터의 능력은 미국 전역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처리할 정도로 성장했다. 인간 신원확인센터에 오는 실종자의 시신 표본은 매우 잘 보존된 대퇴골부터 수 십 년 간 경찰 창고에 처박혀 있던 부러진 뼛조각까지 다양하다.

물론 최근의 표본일수 록 DNA를 추출하기가 쉽다. 이 때문에 인간 신원확인센터는 이런 표본일수록 우선적으로 신원확인을 한다. 또한 잘 보존됐거나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시신, 그리고 가족관계가 어느 정도 추정 되는 시신은 아무 단서가 없는 미확인 시신 보다 우선권을 갖는다.

얼마나 많은 살인사건이 알져지지않은 채 묻혀가는지 안다면…


인간 신원확인센터 의 DNA 실험실은 지금까지 맡은 사건 4건 중 1건을 해결해 냈다. 25%의 성공률을 보이 고 있는 셈이다. 인간 신원확인센터의 프로젝트 관리자인 론다 로비는 막연한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례일수록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심하게 부패된 시신에서 DNA를 추출하는 방법을 개발하는데 인생을 걸었다. 로비는 지난 1991년 미군 검시소에서 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2차 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들의 신원 을 파악하는 기술개발에 일조했다.

2001년 에는 뉴욕으로 날아가서 세계무역센터 잔해에 깔린 2만 조각이 넘는 인간 신체조직의 신원을 밝히는 일에도 참여했다. 특히 그녀는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이 살해한 사람들의 신원을 밝히는 일에도 참가 했고, 니콜라이 2세의 신원을 밝혀내기도 했 다.

니콜라이 2세는 제정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의 마지막 황제다. 로비가 오기 직전인 2004년. 인간 신원 확인센터는 오랫동안 신원미상으로 남아있던 시신에서 DNA를 추출하는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표본은 가느다랗고 노랗게 변색 된 대퇴골로 페덱스 택배에 의해 배달됐다. 대퇴골은 넓적다리뼈로 인간의 뼈 중 가장 크다 법의학 분석가인 리사 샌섬은 그 뼈에 ‘F2775.1EC’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인간 신원확인센터의 데이터베이스에 이름을 입력한 후 DNA 실험실의 뼈 보관소로 가져갔다. 뼈 보관소 문에는 ‘법의학 소수사본구 역-허가받은 자 이외에는 출입을 통제함’이 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오래된 뼈에서 나오는 유전 소재는 너무 작아서 공기 중에 떠다니는 사람의 피부 파편이나 타액 방울만 닿아도 오염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소수사본구역 안에서 분석가들은 방진복, 마스크, 수술 장갑을 착용한다. 외기 차단장치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오염물질을 차단하며, 분석가들의 유전자 특성은 인간 신원확인센터의 DNA 데이터베이스에 미리 입력돼 표적서열에서 배제된다.





이 일은 범죄현장에 남겨진 DNA 지문을 토대로 생물학적 증거를 식별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래된 뼈에서 필요한 핵 DNA 마커를 추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경우에 따라 서는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인간 신원확인 센터는 확실하게 DNA를 추출할 수 있지만 조금 덜 알려진 분야, 즉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하는 기술도 갖추고 있다.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면 모든 사람의 핵 DNA는 다르다.

그리고 세포핵과 세포 에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미토콘드리아 내 의 DNA도 다르다. 인간은 어머니로부터 mtDNA라고 불리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물려받으며, 이것은 형제자매들과 똑같다. 따라서 이를 이용하면 피해자 가족의 수색 범위를 좁힐 수 있다.

샌섬은 1시간 동안 대퇴골의 표면을 문지른 후 DNA 추출을 시도했다. 뼈의 골수는 사망 후 2~3년이 지나면 분해된다. 이 때문에 골수를 함유한 뼈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F2775.1EC는 경찰서 창고에서 20년간이나 보관돼 왔기 때문에 DNA는 뼈의 흰색 담체에 있는 빈약한 다공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녀는 목공용 전동공구를 사용해 대 퇴골의 둥근 끝부분 아래, 즉 대퇴근이 붙는 부분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잘라냈다. 이 부 분은 골밀도가 상당히 높다. 다음에는 냉동 분쇄기로 잘라낸 뼈 조각 을 냉동 분쇄한 후 혼합했다.

그리고 자동화 된 화학공정을 통해 뼈세포에서 유전자를 꺼 낸 후 세척·농축·정제 과정을 거쳤다. 유전자 분석을 위해 샌섬은 DNA 확장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래야만 DNA를 탐지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법의학 소프트웨어가 그 결과를 고점과 저점이 나타난 4 색 그래프로 나타내준다. 그녀는 그동안 배운 것과 경험한 것을 토대로 각 그래프의 고점을 DNA 알파벳의 4 개 뉴클레오티드 문자 중 하나로 바꾸었다.

표본 F2775.1EC가 이 같은 과정을 거치는데 1주일이나 걸렸다. 확장 신호가 분명하지 않으면 DNA를 가족의 DNA와 일치시킬 확률은 급격히 떨어진다. 서열 데이터가 모호하면 추출과 분석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샌섬은 한 번에 서열 데이터를 얻어냈다. 그녀는 인간 신원확인센터의 DNA 데이터베이스에 자료를 업로드했다. 하지만 일치되는 것은 없었다. FBI의 국립 실종인물 데이터베이스에도 올려봤지만 역시 일치되는 인물은 없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지난 2004년 인간 신원확인센터는 아서 아이젠버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큰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이는 5년간에 걸쳐 700만 달러 이상의 돈을 들이는 미 법무 부 최초의 투자였다. 인간 신원확인센터의 임무는 미국 전 역, 또는 주립 법집행기관을 위해 신원미상의 시신과 가족들의 DNA 표본을 무상으로 검사해 주는 것이다.

이곳은 현재 1 년에도 수천 건이나 발생하는 실종자와 신원미상 시신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에 서 있다. 미 법무부는 이 같은 실종자와 신원미상 시신을 ‘소리 없는 미국의 대재 앙’으로 부르고 있다. 아이젠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 무역센터 테러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미국을 유린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 만 얼마나 많은 살인사건이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가고 있는지 사람들이 안다면 과연 어떨까요. 지난 20년 동안 문자 그 대로 수십만 가정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했습니다.”

상당한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지만 이 분야의 발전은 곧 신원확인을 저렴하고, 신속하며, 확실하게 해내는 기술의 개발 에 달려있다고 그는 말한다. 인간 신원확인센터에는 미국 내 여러 주에서 엄청난 가족 관련 DNA 표본과 실종신고가 접수 되고 있다.

아이젠버그는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인간 신원확인센터의 방법도 한 단 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핵 DNA의 일부 파편을 가지고도 심하게 부 식된 뼈의 신원을 밝히는 등 좀 더 개선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대표적인 것이 단일염기 다형성으로 불리는 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의 활용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유전자는 1,000개의 염기서열마다 한 개씩 염기서열이 다르다. 다시 말해 인간은 99.9% 유전자가 일치하지만 SNP로 인해 피부 와 머리카락의 색깔은 물론 체질 등 고유의 유전적 특성이 나타난다.

아이젠버그가 언급한 방법은 파손된 DNA의 40개 구간을 스캔, 여기에 서 SNP를 찾아내는 것이다. 법의학 전문가들은 SNP가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SNP가 오래된 뼈의 신원을 더욱 확 실히 식별하게 해 줄 것이라는 얘기다. 아이젠버그는 이 방식이 대단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립 법무연구소의 모건 역시 “SNP를 이용한 신원확인에 성공한다면 살 인사건 수사에 혁신을 몰고 올 것”이라면서 “더 이상 시신의 신원을 밝히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인간 신원확인센터는 이 같은 방법을 시험하는 한편으로 다른 연구소와 협력, 신원파 악 방식을 개선하고 있다. 테네시 대학과 함께 DNA 분석 자동화와 신원파악 절차의 신속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함으로 서 수사관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오래된 미해결 사건으로 고통 받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인간 신원확인센터의 시험결과는 수백 개의 고점과 저점이 들어간 그래프로 나오고 있다.

숙련된 법의학 분석가는 이를 보고 한 번에 하나의 뉴클레오티드 문자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분석가는 그 것을 읽고 정확성을 검증해야 한다. 이 같은 과정을 모두 자동화하는 것은 아직 머나먼 얘기다.

하지만 테네시 대학의 과학자들 은 서열 데이터를 완벽하게, 즉 그래프를 분명 하게 읽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설계 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 번 더 읽어야 할 필요를 없애고 인건비와 시간을 절약할 것이다.

하지만 신원미상의 시신에서 DNA를 추출 하고 읽어냈다 하더라도 아직 갈 길은 많다. 이 DNA가 원하는 실종자의 DNA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모건에 따르면 미국에는 실종자와 신원 불명 살인 피해자의 사진, 지문, 치과기록, DNA 서열, 기타 신원확인 자료를 보관하는 중앙기록보관소가 없다.

만일 이 같은 기록이 모두 검색 가능하다 면 강력계 수사관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또한 이 기록이 대중에게 공개된다면 오늘밤도 인터넷을 뒤지고 있는 수천 명의 실종자 가족들에게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 될 것이다.

2005년 미 법무장관 은 실종자대책본부를 창설, 실종자신원미상 인물체계(NamUs; National Missing and Unidentified Persons System)를 개발토록 했다. 2007년에는 이 체계의 여러 부분 중 신원 미상 시신과 관련한 데이터베이스 검색이 가능하게 됐다.

또한 지난해에는 실종신고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검색도 가능하게 됐다. 올 하반기에는 두 가지 데이터베이스를 연 결, 실종신고와 신원미상 시신을 연결시킬 수 있는 교차 검색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DNA의 일치

하지만 아직 실종자신원미상인물체계의 데이터베이스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 신원확인센터의 연구자들은 정확한 데이터 수집과 행운에 의지해야 한다. 인간 신원확인센터는 실종자 가족이 쓸 DNA 수집용 키트를 만들어 전국의 경찰서와 보안관 사무실에 배포했다.

법집행기관 직원들은 이 키트를 사용해 가족들로부터 얻은 DNA를 인간 신원확인센 터로 보낸다. 그러면 인간 신원확인센터의 직원들은 최고 80개까지의 DNA 샘플을 분 석, 실종자 부모형제의 핵 및 미토콘드리아 DNA 프로필을 산출해 낸다.

각 가족 구성원의 DNA 지문이 나오면 재 차 데이터베이스로 보내져 사망자의 DNA와 일치하는지 검색하게 된다. 이 과정은 매혹 적이라고 법의학 분석가 멜로디 조서랜드는 말한다.

수천가지의 비밀 중 하나가 순식간 에 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그녀는 “한 주에 30~40회의 검색을 하지만 결코 방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면 서 “항상 자리에 앉아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고 말한다. 조서랜드는 2006년 3월 어느 날 신원미상의 F2775.1EC가 스크린에 나타난 때를 기억한다.

"크리스티를 찾을 때까지는 끝난게 아닙니다."


그녀는 킹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에 서 보내온 가족 참고 표본 F3352.1US를 막 업 로드해 놓은 참이었다. 마치 슬롯머신의 릴처럼 두 줄의 숫자가 모니터 안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6쌍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두 일치했다. 완벽한 일치였다.

하지만 그녀도 알다시피 미토콘드리아 DNA를 결정적인 증거로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길은 있었다. 지난 2004년 샌섬 이 신원미상 시신의 뼈 표본에서 꺼낸 7개의 핵 DNA 마커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 조서 랜드는 가족 참고 표본을 그것과 대조해 보았다.

이번에도 모두가 일치했다. 조서랜드는 신원미상 F2775.1EC 폴더를 불러와 이것을 가족 참고 표본 파일과 대조 해보았다. 모든 데이터가 일치했다. 그녀는 데비 디어 크릭의 신체 특징 관련 추정치를 말해 주었다.

성별: 여성, 추정연령: 17세, 체중: 57kg, 신장: 170cm, 추정 사망일: 1984년 8월 19 일, 추정 사망 장소: 몬태나 주 미주라. 실종신고 기록에서 조서랜드는 마시 바크만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실종 일시는 1984년 5월, 실종 장소는 워싱턴 주 밴쿠버였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 때 든 생각 은 이 불쌍한 소녀가 거기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실종자와 신원미상 시신의 관계를 확실히 알려면 더 많은 가족의 DNA 표본, 특히 친아버지의 DNA 표본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는 킹 카운티의 크렌쇼 수사관에 게 전화했고, 크렌쇼는 다시 데렉과 통화했 다. 크렌쇼는 미주라에서 발견된 해골에 대 해서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데렉이 희망을 잃지 않게 하려고 할 수 있는 거짓말은 모조리 다 했어요. ‘실험실에서는 더 많은 DNA 표본 이 필요하다. 일치하는 것이 있으면 수색 범 위를 더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는 식으로요.”

데렉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버지께 전화를 해서 솔직히 말했어요. ‘검사를 받으 셔야 합니다. 이번엔 확실히 알아야 겠습니다’라고요.” 2006년 3월 22일. 인간 신원확인센터에는 두 통의 페덱스 택배가 배달됐다. 하나는 데렉의 DNA였고, 또 하나는 데렉 아버지의 것이었다.

데렉 아버지의 핵 DNA는 데비 디어 크릭의 핵 DNA 마커와 완벽히 일치했다. 그리고 데렉 어머니의 것과 같은 데렉의 미토콘드리아 DNA 역시 데비 디어 크릭의 것과 같았다. 이로서 데비 디어 크릭의 신원은 확실해졌다.

절차에 따라 인간 신원확인센터는 이 소 식을 국립 실종학대아동센터에 전달했고, 여기서 미주라의 힌츠 보안관에게 다시 알렸다. 그는 래리 웨더먼의 퇴직 이후 데비 디어 크릭의 대퇴골을 인간 신원확인센터로 보낸 사람이다.

데렉은 그 전화가 왔을 때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면서 그 때 자신은 포커 토너먼트를 하고 있던 중이라 나가서 받았다고 말했다. 힌츠의 목소리가 들리자 데렉은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사건이 종결됐음을 직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순식간에 그가 인터넷에 나 온 사진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 는 그에게 사진 속의 소녀는 우리 누나가 아닐 것이라고 이야기했지요. 하지만 그는 제가 갖고 있던 잘못된 생각을 깨우쳐 줬습니다.”

최종 신원확인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 눈 오는 3월의 어느 날. 미주라에서 웨더먼은 카운티의 관용 픽업 밖에 서서 데렉이 걸어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들은 1984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마시의 싸늘한 시신 을 발굴한 장소를 두 번째로 찾았다.

가죽 재킷을 입은 데렉은 떨고 있었다. 퇴직 한 보안관을 따라 숲속으로 400m를 걸어 들어 가 클라크 포크 강을 굽어보는 절벽으로 향하는 그의 스니커즈 속에는 눈이 스며들고 있었다. 한때 마시가 누워있었던 이끼 낀 구덩이 주변을 키 작은 침엽수림이 에워싸고 있었다.

데렉이 처음 올 때보다 훨씬 더 힘들다고 하자 웨더먼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당신에게는 참 힘든 발걸음이지요.” 절벽 아래의 밀 타운 댐에서는 시끄러운 공사 소리, 정확히 말해서는 해체작업 소리가 메아리 쳐 울렸다.

마시가 희생된 장소를 지나 줄줄이 늘어선 오렌지색과 황색의 측량용 깃발들은 강 복원 사 업의 일환으로 건설될 전망대 터의 위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카운티에서는 오래된 댐을 해체하고 작은 공원을 짓기로 했다.

건설은 봄부터 시 작될 것이다. 데렉은 마시가 숨진 곳이 절대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러 왔다. 그가 카운티에 요청해 작은 추모비도 세우고 싶다고 하자 웨더먼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다들 픽업으로 돌아갈 때 데렉이 말했다. “보안관님, 이제 모두 두고 떠날 준비가 되셨지 요?” 그러자 웨더먼이 대답했다. “천만에요. 크리스티를 찾을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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