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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알몸 투시안경의 공습

안경을 끼기만 하면 상대방의 나체를 볼 수 있다는 중국산 알몸 투시안경, 즉 누드 글라스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투시안경은 특수 필터를 사용, 옷에서 반사된 가시광선은 차단하고 피부에서 반사된 적외선은 가시광선으로 변환시켜 80%까지 인체의 투시가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배터리도 필요하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 프라이버시 침해에 따른 여성들의 강력한 반발, 그리고 법이나 윤리적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과학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상대방의 나체를 볼 수 있다는 중국산

알몸 투시안경, 즉 누드 글라스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국의 늑대들을 위한 희소식’이라는 자극적 광고 문구를 앞세운 이 투시안경이 실제 존재한다면 관음증적 상상 속에서나 꿈꾸던 물건이 현실화됐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글라시스 테크닉이라는 중국 업체가 제조 및 판매하고 있는 이 투시안경의 작동 메커니즘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특수 필터를 사용, 옷에서 반사된 가시광선은 차단하고 피부에서 반사된 적외선은 가시광선으로 변환시켜 사람의 나체만 보이도록 한다는 것.

중국 일간지 신상바오(新商報)는 지난 5 월 “투시안경은 눈앞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며 “만일 길을 걸을 때 다른 사람들이 이런 안경을 쓰고 투시를 한다면 우리의 프라이버시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 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업체가 내놓은 투시안경의 외관은 일반적인 안경과 전혀 다를 바 없다. 가격은 1,200~1,600위안. 그리고 사용 직전 특수 액체에 담가야 투시효과가 생긴다고 한다. 이 업체는 면직물의 경우 투시력이 떨어지지만 나일론이나 견직물을 입은 경우 투시력이 80%에 달한다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특히 이 업체는 한국어 웹사이트까지 개설, 18만~25만원의 가격으로 투시안경을 팔다가 지난 6월 15일 폐쇄했다.

하지만 그 이후 또 다른 한국어 인터넷 사이트가 개설돼 투시안경을 팔고 있다. 당국의 제재가 우려됐는지 최근에는 거의 모든 투시안경 사이트가 문을 닫고, 무작위로 스팸메일을 보내 홍보 및 판촉을 실시하고 있다. 가격도 55만~65만원으로 크게 올랐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장비를 사용하는 행위는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범죄행위라고 경고한다. 한마디로 목욕탕, 탈의실, 화장실 등을 몰래 훔쳐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 많은 여성들 역시 이 투시안경의 존재에 혐오감을 나타내고 있다.

적외선의 특성과 서모그래피

투시안경을 제조 및 판매하는 중국 업체에서는 상세한 과학기술적 원리를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인체를 포함해 모든 물체에서는 적외선을 방출하는데, 이 투시안경은 그 적외선을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으로 바꿈으로서 상대방의 나체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사실 모든 물체는 적외선을 방출한다. 적외선이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비(非)가시광선 가운데 하나지만 프리즘을 통해 분해된 빛의 스펙트럼을 통해 알 수 있다. 백색 광선은 분해되면 빨강·주황·노랑·초 록·파랑·남색·보라, 즉 무지개 색상을 나타낸다.

하지만 빨간색과 보라색 바깥에서도 빛으로 인한 온도의 변화가 감지된다. 이것으로 인해 사람들 은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에너지를 가진 비가시광선이 존 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 빛의 파장이 스펙트럼에 나타나는 빨간색 부분 밖에 해당하면 적외선, 보라색 부분 밖에 해당하면 자외선으로 부르게 된 것이 다.

적외선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 투시가 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또한 이렇게 물체에서 방출되는 적외선을 이미지화하는 기술은 이미 존재한다. 이것을 서모그래피, 또는 열 영상 기술이라고 한다.

서모그래피 카메라는 물체에서 방출되는 적외선 파장을 포착, 그 파장을 가시광선으로 바꿔 사람이 볼 수 있는 영상으로 만들어준다. 또한 물체에서 방출되는 적외선의 양은 그 온도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모그래피를 통해 온도의 차이도 감지할 수 있다. 이 같은 특성으로 인해 연기, 구름, 안개, 야음 등으로 가려진 피사체도 볼 수 있다.

사실 서모그래피는 이 같은 투시효과를 살려 이미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연기가 자욱한 화재현장에서 소방관들이 구조대상자나 최초 화재발생 장소를 찾아 낼 때, 그리고 고압선 등 여러 장비의 과열된 부분을 찾아낼 때 사용되고 있는 것. 또 한 건축물의 냉난방 장치에서 열기가 새는 부분을 찾아낼 때도 이용되고 있다.

서모그래피는 군사용으로도 오래전부터 사용돼 왔다. 어둠 속을 뚫고 사람을 보여주기 때문에 야간투시경으로 활용된 것. 최근에는 밤길 안전운전을 위해 서모그래피 카메라가 장착된 고급 자동차도 나오고 있다.

투시안경 광고의 결정적 함정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적외선을 이용한 투시안경도 말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함정이 존재한다. 서모그래피는 투시는 되지만 피사체의 색상 차이는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적외선 방출량은 물체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서모그래피를 통한 투시는 피사체의 부위에 따른 온도 차이만 보여줄 수 있을 뿐 상대방의 옷을 완전히 벗겨 놓고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내지 못한다.

색상이 어찌 되었든 간에 온도가 같다면 서모그래피를 통해 볼 경우 똑같은 색으로 나타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외선을 방출하는 것은 사람의 몸만이 아니다. 옷 자체도 적외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적외선만을 이용해 알몸을 보여준다는 중국 업체의 주장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중국 업체가 제조 및 판매하고 있는 투시안경은 외관만 봐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현재 서모그래피에 사용되는 카메라는 적외선만을 필터링해 받아들이는 필터링 기기와 적외선 정보를 눈에 보이는 가시 광선으로 바꿔주는 컨버터가 필요하다. 또한 가시광선의 크기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을 경우 이를 제어 및 증폭할 수 있는 제어 장치, 그리고 이들 장비에 전원을 공급하는 전원공급 장치도 필요하다.

하지만 중국 업체의 투시안경에서는 이 가운데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만약 안경의 외관을 해치지 않고 이 모든 장치를 통합 할 수 있는 기술이 적용됐다면 이는 현대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일 것이다.



도대체 어떤 기술을 썼기에 일반 안경렌즈와 별반 다르지 않는 투시안경의 렌즈가 인체에서 발산되는 적외선만을 정확히 포착한 다음 원래의 피부 색상으로 바꾸어 보여준다는 것일까. 한마디로 적외선을 가시 광선으로 전환해 상대방의 나체를 보여준다는 중국 업체의 주장은 과학기술적 근거가 대단히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보안장비 밀리미터파 스캐너

투시안경의 성능에 근접하는 효과를 내는 게 없는 것은 아니다. 공항에서 탑승자 보안 검색에 사용되는 밀리미터파 스캐너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중국 업체가 투시안경을 판매하면서 내놓은 광고문구만큼의 성능은 없으며, 적용된 과학기술적 원리도 전혀 다르다.

밀리미터파, 즉 파장이 밀리미터 단위인 극고주파 전파는 인간의 의류에 사용되는 여러 유기소재를 거의 방해받지 않고 관통할 수 있지만 금속이나 세라믹 등 무기재료로 만들어진 물체에는 반사된다. 또한 X선 과 달리 인체에 아무런 악영향이 없다.

그렇다면 이 전파를 사람에게 쏘고 그 반사파를 캐치해 영상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바로 사람의 알몸은 물론 은닉한 무기도 그대로 드러나게 할 수 있다.

밀리미터파 스캐너를 개발한 파란 테크 놀로지스에 따르면 이 장비를 사용할 경우 50m 떨어진 사람까지도 자신이 검색되는지 모른 채 보안검색을 실시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이 장비도 중국 업체가 광고하고 있는 투시안경처럼 나체를 총천연색으로 보여주는 수준까지는 아니며, 흑백 영상이 나 온다.

현재 이 장비는 피검색자의 신체 어디든지 관통해 보여줄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피검색자의 프라이버시권 침해 논란을 격렬하게 불러올 정도다.

따라서 다른 검색장비를 먼저 사용해 금지품목을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만 이 장비로 검색 받게 하는 식으로 운용하거나 피 검색자의 생식기 등 민감한 부분은 보안요원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등의 신기술 개발이 요청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교통안전청은 이미 이 장비로 촬영한 영상의 저장 및 다른 기기로의 송신을 금지하고 있으며, 검색대에 배치된 보안요원조차도 이 장비의 영상을 직접 보지 못하게끔 하는 등 프라이버시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 장비의 영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검색대에서 떨어진 통제구역에 배치된 보안 요원뿐이며, 그가 영상을 보고 위험 품목의 휴대 여부를 알아본 후 검색대에 연락을 하는 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현재까지 등장한 장비 중에는 밀리미터파 스캐너가 그나마 중국 업체에서 광고하고 있는 투시안경의 성능에 근접해 있다. 하지만 밀리미터파 스캐너는 투시안경은 물론 서모그래피 카메라와 비교도 안될 만큼 크고, 복잡하며, 가격 역시 대당 15만 달러에 이를 정도로 비싸다.

투시안경이 실제 존재한다면(?)

얇은 렌즈와 특수 액체만으로 상대방의 나체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은 코믹 만화의 소재로나 쓰일 만큼 황당무계하다. 실제 투시 안경을 소재로 한 만화가 이미 20여 년 전에 있었다. 만화속의 투시안경은 비(非) 생명체를 보이지 않게 함으로서 상대방의 나체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중국 업체가 광고하고 있는 수준의 투시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 과학기술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는 서모그래피 카메라나 밀리미터파 스캐너의 사례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중국산 투시안경의 광고된 만큼의 성능을 갖춘 안경을 만들어 낸다면 법적, 윤리적 문제를 차치하고 당장 각국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주문이 쇄도할 것이다.

현재의 서모그래피 카메라나 밀리미터파 스캐너에 비해 대단히 작고 저렴할 뿐 아니라 사람만 골라서 보여주는 만큼 보안경 비용, 인명구조용, 수사용, 군사용 등 여러 가지 공익적 목적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같은 안경을 만든 회사나 개발자는 인류의 광학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킨 인물로 전 세계의 학계와 산업계로부터 주목과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중국산 투시안경을 구매한 관공서나 기업은 하나도 없다. 또한 중국산 투시안경의 원리와 성능이 권위 있는 기관이나 개인을 통해 입증된 적도 없다.

이것만 봐도 중국산 투시안경의 광고된 성능은 적어도 현대기술로는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며, 관음증에 걸린 무지한 소비자들의 돈을 노린 사기라는 게 명백하다. 그런 만큼 여성들 역시 투시안경의 공포에 떨 필요가 없다.

투시안경을 구입하려고 돈을 냈다가 물건은 받지 못한 채 돈만 떼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왠지 안쓰럽다기보다는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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