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치른 7게임과 결승전의 경기결과 예측이 완벽히 적중하며 화제를 불러 모은 것. 족집게 무당 뺨치는 신통력의 비밀은 대체 무엇일까.
지난달 스페인의 우승으로 폐막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번 월드컵에서는 참가국들의 불꽃 튀는 명승부만큼이나 세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독일 오버하우젠 해양생물박물관의 수족관에 있는 영국산 문어 '파울(Paul)'이 그 주인공. 파울이 이토록 유명해진 것은 월드컵의 경기 승부를 정확하게 예측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1월 영국 잉글랜드의 웨이마우스 해양생물 센터에서 부화해 독일로 옮겨 온 파울은 태어난 해에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08 토너먼트의 경기 승부를 정확히 맞히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독일 국가대표팀이 외국과 경기를 하기 전에는 파울에게 굴, 홍합 등 먹이가 들어 있는 두 개의 상자를 주고 어떤 상자의 먹이를 먼저 먹는지를 보고 경기결과를 예측하는 이벤트가 진행됐다. 각 상자에는 독일과 상대국 국기를 붙이고 파울이 선택한 쪽의 국가가 승리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파울의 신통력은 대단했다. UEFA 유로 2008 토너먼트에서 독일이 벌인 6경기 중 4경기를 맞힌 것이다. 이러한 파울의 능력은 이번 월드컵에서 그 진가가 여실히 발휘됐다.
독일의 예선전 3경기와 16강, 8강, 4강, 3-4위 결정전 등 7 경기의 예상이 모조리 적중했다. 심지어 네덜란드와 스페인 이 벌인 결승전 경기도 스페인의 승리를 정확히 점쳤다. 무엇이 파울에게 이토록 놀라운 능력을 갖게 한 것일까. 이를 두고 여기저기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예지력 아닌 우연의 일치?
파울이 경기 결과를 정확히 예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파울에게 특별한 예지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에 회의적 입장을 견지한다. 오히려 많은 학자들은 이를 우연의 일치라고 설명한다. 동전을 무작위로 던져서 앞뒷면을 맞히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설명이다.
이는 영국 배스대학의 크리스 버드 교수와 케임브리지대학의 데이비드 스피겔할터 교수, 프랑스 피에르 마리퀴리대학의 에티엔느 로켄 교수 등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지하는 설이다. 특히 프랑스 라 로셀 수족관의 파스칼 코우탕 관장은 "파울이 경기 승부를 맞힌 것은 순전히 운"이라며 단순한 우연의 일치임을 강력히 주장한다.
확률적으로 보면 파울이 한 경기의 승부를 우연히 맞힐 확률은 2분의 1, 즉 50%다. 이 정도면 평범한 사람도 어렵지 않게 맞힐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파울은 무려 8번을 연속으로 맞혔다. 그저 운이 좋아서 이렇게 된 것이라면 그럴 확률은 2의 8승 분의 1, 다시 말해 256분의 1이다. 퍼센트로 변환하면 1,000번을 도전해야 4번 가량 성공할 수 있는 0.39%에 지나지 않는 확률이다.
하지만 스피겔할터 교수와 로켄 교수는 파울 외에도 승부 예측에 도전한 동물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들 모두가 실패했음을 지적한다. 전 세계의 수많은 동물 중 파울이라는 문어 1마리가 성공했다고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로또도 수학적으로는 1등 당첨 확률이 매우 낮지만 워낙 많은 사람이 응모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1등에 당첨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
실제로 과테말라시티의 자료 분석가인 호세 메리다가 동전던지기 모델을 이용해 계산한 바에 따르면 8번의 월드컵 경기 대부분의 승부를 동전던지기로 예측할 경우 178명 이상이 동전던지기에 참여하면 그 중 최소한 1명이 정답을 낼 수 있다고 한다. 파울의 능력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는 아닌 셈이다.
그런데 이 논리에는 변수가 있다. 파울에게 예지력이 없으며 선택이 무작위적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이만한 적중률을 보일 확률은 동전던지기보다 지극히 낮다. 월드컵 예선 3경기에는 승패와 함께 무승부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울의 선택 조건에는 무승부가 없었다.
이를 감안한다면 파울의 처음 3경기 예언 적중률은 2분의 1이 아닌 3분의 1로 계산해야 하며 결과적으로 월드컵 8 경기 연속 적중 확률은 432분의 1인 0.231% 밖에 되지 않는다. 이 또한 로또 1등 당첨 확률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은 가능성이지만 유로 2008 등 그동안 보여준 파울의 전력을 생각하면 우연으로 치부하기만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문어는 줄무늬를 좋아해
만일 우연이라는 요소 외에 파울의 예측에 영향을 미친 요소가 있다고 가정하면 그것이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학자 중 로켄 교수는 파울이 단순히 상자를 '찍은'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둘 중 하나를 선택했을 것으로 판단한다.
다만 축구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파울이 어느 팀이 강팀인지 알 턱이 없다. 따라서 로켄 교수는 파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요소로 상자에 붙은 국기의 디자인과 상자 속에 든 먹이를 지목한다. 파울이 특별히 좋아하는 디자인의 국기나 먹이가 있는 상자를 먼저 선택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어 주제에 무슨 디자인을 보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문어의 지능은 생각보다 우수하다. 무척추동물 중에는 단연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문어의 지능이 개의 지능(IQ 40~50)에 필적한다고 보고 있으며 인류가 멸망할 경우에는 진화를 통해 더욱 높은 지능을 얻어 다음 문명을 건설할 유력한 생물로 여기는 학자도 있다.
문어를 포함한 대다수 두족류는 육식동물로서 살아있는 먹이를 사냥하는 포식자이다. 움직이는 먹이를 잡으려면 타깃의 위치를 확인하고 타깃을 능가하는 속도로 추적해야 하는데 이 같은 능력을 갖추려면 상당 수준의 지능이 필요하다.
게다가 두족류는 많은 외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물체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 돌을 던지거나 병뚜껑을 여는 등 도구의 사용도 가능하다. 현재 발견된 생물 중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무척추동물은 문어를 포함한 두족류 밖에 없다. 게다가 문어는 사고력과 학습능력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 문어들이 붉은색을 좋아하기 때문에 붉은색이 들어간 독일 국기를 주로 선택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이는 사실무근이다. 문어는 색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어의 행동연구나 망막전도연구를 통해서도 문어가 색상을 분간한다는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문어의 눈은 척추동물의 눈과 대단히 유사해 밝기를 분간할 수 있으며 물체의 모양과 크기, 방향도 식별한다. 미국 뱅거대학 해양과학대학의 연구강사인 쉬라그 맬험은 이에 기반해 문어가 수평 방향의 줄무늬를 선호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파울이 선택한 나라의 국기(독일, 세르비아, 스페인)에는 모두 수평 방향의 줄무늬가 있었다.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독일 국기도 세 줄의 줄무늬가 수평으로 늘어서 있으며 노란 줄무늬가 굵게 들어간 스페인 국기와 푸른 줄무늬와 흰 줄무늬가 들어간 세르비아 국기의 대비는 독일 국기보다도 더욱 뚜렷하다. 아마 이 때문에 독일과 이들 국가들이 맞붙게 되었을 때 파울이 이들 국가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왼쪽과 오른쪽
파울의 선택에 국기 디자인이 영향을 줬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사람은 그 외에도 많다. 에이마우스 수족관의 선임 해양 생물학자인 매튜 풀러나, 러시아의 생물학자인 비야체슬라프 비시코프 박사 등이 그들이다.
또 다른 가설도 있다. 문어들은 다리에 민감한 화학 수용체를 보유하고 있다. 이 화학 수용체는 먹이나 자기 몸 주변의 물의 맛, 냄새의 감지에 쓰인다. 독일 그라이프스발트 대학의 생물학자 볼커 미스케 박사는 각 상자 표면의 미묘한 화학적 차이가 파울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견한다. 앞서 언급된 러시아의 비시코프 박사도 문어를 훈련시켜 냄새를 가지고 원하는 상자를 선택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외에도 공간적 편향성이나 빛의 강도 같은 요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월드컵 경기의 경우 파울은 8번의 선택 중 시청자의 시각에서 봤을 때 우측 상자를 6차례 선택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것을 가지고 파울이 우측을 더욱 선호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월드컵 결승전을 제외한 7번의 선택 중 독일 국기가 우측에 있었던 것은 4번뿐이며 이때는 호주, 세르비아, 잉글랜드, 스페인 국기가 좌측에 있었다. 파울의 사육사에 따르면 국제축구연맹(FIFA)의 회원국 명단 순서에서 앞서는 나라를 왼쪽에 배치했다고 한다.
만일 파울이 동일한 선택을 더 여러 번 수행했다면 이러한 여러 이론들을 충분히 체계적으로 검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울은 한 경기에 한 번밖에 상자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이유를 과학적으로 밝혀내려면 엄정한 연구가 수반돼야 한다.
설령 파울이 어떤 능력이나 합리적인 근거 없이 본능적 성향에 따라 선택을 했더라도 그의 선택은 분명 경기가 시작되기 이전, 그러니까 결과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실시된 것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축구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라면 잉글랜드나 아르헨티나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울은 그러지 않았으며 결국 파울이 옳았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승률이 높은 팀을 미리 정해놓고 파울에게 그 팀을 고르도록 훈련시켰다는 일각의 주장도 타당성이 부족하다.
어찌되었건 파울의 예언이 경기 결과에 필연적 영향을 미쳤다고 볼 근거는 현재로서는 하나도 없다. 파울의 예언을 접한 선수들의 심리 상태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동물의 초감각 능력
역사를 살펴보면 파울 이전에도 여러 동물들이 불가사의한 능력을 발휘, 앞날을 예측했다는 기록이 많이 있다.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 개, 뱀, 새, 물고기 들이 앞 다투어 도망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거나 폭우가 내리기 전 벌들이 모두 벌통 속으로 대피했다는 얘기처럼 동물과 곤충들의 천재지변 예측은 이제 어린아이들도 아는 고전에 속한다.
이러한 행동은 인간보다 훨씬 발달한 기압, 전자기파, 초저주파 감지력 등에 기인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을 가진 종(種)들도 축구 경기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무리다. 어쩌면 파울의 예언을 가능케 한 것은 동물의 심령력이나 초감각이 아니었을까?
심령력을 발휘해 앞날을 예언한 동물들의 사례는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동물학자인 루퍼트 쉘드레이크 박사의 저서 '주인의 귀가시간을 아는 개들'을 보면 영국에 살고 있는 '제이티'라는 테리어 강아지가 주인의 귀가 시간을 정확히 알았다고 한다.
주인이 직장에 다닐 때 제이티는 퇴근시간이 되면 창가에 앉아 주인을 기다렸으며 주인이 실업자가 돼 귀가 시간이 불규칙해졌을 때도 이는 계속됐다. 조사 결과, 주인이 집을 향해 출발한 시간과 제이티가 창가로 다가가 기다림을 시작 한 시간은 섬뜩하리만치 일치했다.
쉘드레이크 박사는 제이티가 귀가를 마음먹은 주인의 생각을 읽고 이런 행동을 취한 것으로 추정했다. 텔레파시를 통해 인간의 생각을 읽고 그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영국의 수상을 지냈던 윈스턴 처칠의 경우 말년에 지병으로 투병하면서 애완 고양이를 길렀는데 병상에 있는 처칠의 옆을 한결같이 지키다가 처칠이 사망하기 직전 병상을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는 주인의 죽음을 예견했다고 볼 수 있는 행동이다.
이러한 초감각적 영역은 유사과학적 분야이기 때문에 기존의 과학적 틀로는 규명이 쉽지 않다. 언젠가 파울이나 천재지변, 재난, 인간의 생각을 예측한 동물들의 비밀이 풀린다면 그만큼 인류의 인식과 사고의 지평도 크게 전진되어 있을 것이다.
월드컵에서 절정의 신통력을 보인 파울은 이제 예언자 자리에서 은퇴했고 홍합으로 장식된 월드컵 우승컵도 선물 받았다. 문어의 수명은 보통 3년을 넘지 않으므로 이미 2년 7개월을 산 파울이 다음 월드컵에도 족집게 신공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박사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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