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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칼럼] 브렉시트…꿈틀대는 민족주의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블록경제 추구 오타와협정 축소판

분리·민족주의, 보호무역 예고

민족 자주·통일이 중장기 대책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후유증이 또 도졌다. 영국 파운드화가 폭락하고 이탈리아에도 불통이 튈 조짐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결정된 당일, 전 세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2,346조원이 사라졌다. 좀 나아지나 싶으면 다시 나빠지는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상황은 보이는 것보다 심각하다. 역사의 흐름에 영국이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비록 쪼그라들었어도 영국은 세계의 기틀을 짠 나라다. 의회민주주의 시발점이라는 대헌장(Magna Carta)과 근대적 법치 우위 원칙의 탄생지다. 사회계약론에 의거해 삼권분립과 사유재산의 신성불가침을 규정했던 존 로크의 사상은 미국 헌법에 그대로 녹아 내려온다. 경제 부문의 흔적은 더 많다. 산업혁명은 말할 것도 없다. 경제학의 기초와 세계 경제 질서도 영국에 통합된 스코틀랜드 출신 애덤 스미스로부터 나왔다. 역사상 최초의 자유무역(메수엔조약·1703), 원산지 증명(1887)을 주도한 나라도 영국이다.

해악을 끼친 적도 적지 않다. 제국주의 침략 같은 정치·사회 부문은 빼더라도 글로벌 경제에 결정타를 날린 적이 있다. 월가 주가 폭락(1929)이 세계공황으로 번져가던 1932년 영연방 8개국은 캐나다에 모여 ‘영연방국가끼리의 특혜 관세’를 규정한 오타와협정을 맺었다. 영국이 주도한 이 협정은 최초의 배타적 블록 경제로 손꼽힌다. 스털링 블록(Sterling Block)의 탄생에 놀란 각국은 ‘제 살길 찾기’에 나섰다.

미국은 남미를, 프랑스는 중부유럽·아프리카를 권역으로 삼으려 애썼다. 일제가 침략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대동아공영권도 엔화 블록경제권과 다름 아니다. 갈수록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제와 ‘우리만 살자’는 행태는 상호불신과 군비경쟁으로 이어져 결국 2차 세계대전을 낳았다. 오타와회의는 대공황-무역전쟁-전쟁이라는 최악 시나리오의 연결고리였던 셈이다.

누적된 과거사는 오늘을 규정한다. ‘우리끼리만 잘 살자’는 브렉시트는 오타와협정의 결과인 블록경제권의 축소판이다. 영국은 과연 자기들끼리 잘살 수 있을까. 모를 일이지만 그레이트 브리튼을 유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스코틀랜드 지역에서는 잔류표가 62%나 나왔다. 민족과 종교가 다르고 멜 깁슨 주연 1995년 개봉작 ‘브레이브하트’에 봤듯이 반목하던 이들을 통합시킨 동력은 경제였다. 영국처럼 식민지를 갖겠다며 거국적 해외투자에 실패한 스코틀랜드가 채무 변제와 자치권 보장을 조건으로 통합을 먼저 제의한 게 1707년. 영국과 달리 전통적으로 유럽 대륙과 친했던 스코틀랜드는 더 이상 미련 없이 대영제국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아일랜드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상황이 비슷하다.



그레이트 브리튼의 분열은 세 가지를 예고한다. 분리주의와 민족주의, 보호무역주의. 흔들리는 EU 안에서 동요하지 않는 나라는 이미 민족 통일을 이룬 독일 뿐이다. 브렉시트 이후 EU 내부에서도 유럽의 일원보다 민족국가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보호무역의 색채가 강해지면 수출로 먹고사는 구조인 대한민국의 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민족 단위의 분리주의 움직임은 세계 유일의 분단 지역인 한반도의 미래에는 어떤 변수로 작용할 것인가.

결코 우호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세계적인 무역 감소 추이 속에서 수출 성장세는 이미 꺾였다. 더 어려워지면 어려워졌지 나아질 기미가 없다. 현상유지만 해도 다행이다. 한민족의 미래를 점치려니 아쉬움이 밀려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통일대박론’이 조금이라도 실행됐다면 브렉시트 상황이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깝다.

박 대통령이 주창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까지 감안한다면 한국이 아시아의 끝에서 분열이 아니라 화합이라는 새로운 분위기를 주도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터인데, 참으로 아깝다. 분단과 대결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남북을 잇는 가느다란 끈이었던 개성공단마저 폐쇄했으니 답답하다. 브렉시트는 우리에게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역량을 요구한다. 답은 이미 있다. 2년 반 전의 통일대박론과 44년 전 이맘때쯤 발표된 7·4 남북공동성명에 담긴 자주·평화·민족단결의 정신이야말로 브렉시트의 파고를 넘을 수 있는 기반이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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