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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탄생 110주년 간송문화재단 첫 현대미술전

'올드앤뉴-법고창신' 현대작가33인 간송 오마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10월 23일까지

간송 탄생 110주년을 맞아 기획된 ‘올드앤뉴-법고창신’전에 현대작가 33인의 작품과 나란히 걸린 겸재 정선 ‘풍악내산총람’ /사진제공=간송문화재단




“예술품의 존귀한 바는 그것이 우수한 작품일수록 그 시대와 문화를 가장 정직하게 똑똑하게 우리에게 보여주는 까닭에 있다.”

일본의 손에 넘어갈 뻔한 우리 문화재를 사재(私財)를 털어 지켜낸 간송 전형필(1906~1962)은 평소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예술은 당대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시대정신까지 함축하고 있기에 중요하다는 뜻이다.

간송 탄생 110주년을 맞아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최초로 기획한 현대미술전 ‘올드 앤 뉴-법고창신(法古創新):현대작가, 간송을 기리다’가 10월 23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린다. 젊은 국내 미술가 33명이 간송의 삶과 업적, 소장품 등을 재해석한 자리다.

이세현 ‘비트윈 레드’ /사진제공=간송문화재단


현대 작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화가로 꼽는 겸재 정선은 간송이 첫 수집대상으로 고려했던 그림의 작가이기도 하다. 나아가 ‘간송 컬렉션’이 확보한 겸재의 최고 수작들은 간송미술관 내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가 진경산수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 문화의 주체성과 우수성을 입증하는 기반이 됐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박연폭포를 그린 겸재의 ‘박생연’을 웅장한 애니메이션으로 되살린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의 작품이 관객을 맞는다. 화가 이세현은 ‘붉은 산수’로 겸재의 삼원법(三遠法)과 우리나라의 과거사를 절묘하게 뒤섞었고, 점묘화 기법으로 작은 글자와 단어들을 이용해 명화 이미지를 만드는 유승호는 겸재의 ‘총석정’과 ‘통천문암’을 재구성했다.

사실적 묘사로 실경(實景)을 그리는 사생화의 관습을 뛰어넘은 겸재는 풍경에 대한 인상과 감상을 투영한 사의화(寫意畵)로 ‘진경(眞景) 산수’를 개척했다. 이를 이어받은 협업작가 김기라×김형규는 ‘사상화(思象畵)’를 제안했다. 이들은 타임랩스(저속촬영 후 빠르게 돌리는 영상)와 360도 회전 기법으로 해남의 미황사와 대흥사, 남원의 실상사를 24시간 촬영해 사찰에서 벌어지는 정적인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시간을 두고 오래 지켜보는 경건한 태도, 가까이 들여다보는 동시에 한발 물러나 살펴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천 년 전 사찰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삶의 본질’을 되짚게 한 작품들이다.

김기라x김형규 ‘세기의 빛_정토’


조선시대 매화그림의 대표 작가인 조희룡의 ‘홍매’를 두고 부자지간인 백남흥×백정기 작가 팀은 전기가 통하는 금속성 안료로 매화 그림을 그려 라디오 안테나로 활용했다. 홍매가 임의로 잡아내는 주파수에 따라 라디오를 흘려보내는 이 작품에 작가는 ‘동종주술’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현대도예가 이하린은 흑토로 빚은 매병과 알록달록한 문양의 화병 사이에 ‘젊음(youth)’이라 이름 붙인 화려하지만 무표정하고 고독한 인물상을 놓았다. 고려청자와 옛 인물화를 연구한 그가 포착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신이철 작가는 조선시대 청화백자 용문 항아리를 만들어 발톱 3개 짜리 로봇 용을 그려넣었다.



이하린 ‘매병’(오른쪽부터), ‘젊음’, ‘화병’


이원호의 ‘진품명품전’


간송이 보여준 문화에 대한 태도와 업적도 참신한 작품의 촉매가 됐다. 이원호의 설치작품 ‘진품명품전(傳)’은 진품을 판별해주는 TV프로그램 현장을 찾아다니며 ‘가짜로 판명된 작품들’을 흥정해 수집하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재화적 욕망이 개입된 골동품 거래를 통해 간송의 뜻을 반어적으로 보여준다.

장종완 작가는 가짜 백호 가죽에 한반도의 풍경과 골프장을 그렸고 여기에 ‘화려한 조명을 받다 은퇴한 복서가 기르던 백호’라는 거짓 서사를 능청맞게 갖다 붙였다. 전통 호피도 못지 않은 위풍당당한 작품이다. 오래된 벼루를 수집해 벼루 안에 검은 드로잉을 그리는 이상용의 ‘운명’도 눈길을 끈다. 선(線)만 남기고 주변부를 도려내는 양각기법으로 벼루를 긁고 파낸 작가의 노고가 우리네 조상들의 성실함을 닮았다.

간송미술관인 ‘보화각’을 소재로 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보화각 주변을 먹그림으로 그린 장재록은 고양된 인격의 발현이라는 동양화의 태도를 따르면서도 다루는 내용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픽셀로 만들어 놓은 허상의 이미지다. 실상과 허상, 순수감각과 합리성 사이의 괴리감을 표현했다. 사진작가 정희승은 덧칠된 보화각의 벽과 창틀, 반질반질 윤나는 대리석 등을 통해 관람객들의 손길과 시간의 축적을 감상적으로 보여준다.

이창원 ‘간송의 기억’ /사진제공=간송문화재단


거울 설치작품으로 유명한 이창원은 간송의 사진과 겸재의 ‘단발령망금강’, 탄은 이정의 ‘풍죽’을 거울 이미지로 만들어 벽면에 비춘다. 역설적이게도 희뿌연 거울 허상은 외려 더 또렷한 진정성을 남긴다.

간송의 손자인 전인건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은 “일제 강점기에 문화로 나라의 정신을 지키려한 할아버지의 신념이 현 시대에 맞는 형태로 유효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젊은 작가들과의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고, 이진명 수석 큐레이터는 “33인의 현대작가가 기리는 우리 고유문화에 대한 찬가가 현대미술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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