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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외취업 성공기]④영국 간 '토종박사' 한국에 돌아오지 않는 이유

국내의 R&D 조급증·권위주의적 연구 문화 탓

한국 명문대서 교수직 제의 들어왔지만 거절

"이공계 두뇌 유출 막으려면 지원제도 선진화를"

구본경(뒷줄 오른쪽 첫번째) 교수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줄기세포 연구소에서 근무중이다. 지난 2013년 구 교수는 한국 명문대와 영국 캠브리지에서 동시에 자리를 제의받았다. 고민 끝에 그는 영국행을 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대로 연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 /사진제공=구본경씨




“연구실 간의 비밀, 그런 게 왜 필요하죠? 열린 방식으로 공동연구를 해야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 더 나은 기술을 ‘함께’ 만들고요. 젊은 과학자에게 조급증을 내며 실적이나 성과를 운운하기 보다는 가능성을 보려고 노력해야죠. 영국에선 이 모든 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더라고요”

영국 캠브리지대학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는 구본경(40) 교수. 그는 스스로를 ‘회귀본능이 강한 한국인 연구자’라고 소개했다. 구 교수는 국내에서 학사부터 석·박사과정까지 마친 ‘토종박사’다.

그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외국행을 택했다. 박사과정을 마친 후 해외로 연수를 가는 대다수 생명공학 분야 종사자들과 달리 그는 국내에서 3년간 박사 후 연구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지난 2009년 네덜란드에서 다시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가족도 친구들도 어머니의 손맛도 온통 그리운 것뿐이었다는 구 교수는 지금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 있다. 한국을 떠난지 벌써 8년째. 늘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다는 구 교수는 왜 아직도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걸까.

“연구를 하고 싶었거든요” 궁금증에 던진 질문에 돌아온 구 교수의 답이다. 네덜란드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할 때 그의 목표는 뚜렷하고 명료했다. 바로 ‘잘 해서 한국에 빨리 돌아가는 것’이었다.

해외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성과를 거두면 좋은 연구환경을 보장해주는 국내 대학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밤낮으로 연구에 매진한 결과 5년만에 그는 목표를 이뤘다. 2013년 한국의 명문대에서 교수직 제의가 들어왔다. 그런데 또 다른 선택지가 생겼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줄기세포 연구소에서 그에게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네덜란드에 첫 발을 디뎠을 때가 떠올랐다. 여전히 가족이 그립고 한국에 돌아가 뜻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영국이었다.

구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는 비용이 많이 들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통상적으로 젊은 과학자가 받을 수 있는 과제비가 연 1억~3억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하고자 했던 연구는 연 8억~10억이 필요한데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젊은 후배들이 저와 같은 고민에 빠진다면 외국에 남으라고 조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석학들은 대부분 계약기간을 채우기 무섭게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뿌리 깊은 권위주의와 소통 부재·다양성 부족·인맥 중심의 학내 정치를 견딜 수 없었다”고 말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분위기인 외국의 연구문화와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 일광욕을 즐기는 교수와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출처=플리커




2013년에 캠브리지 대학이 구 교수에게 5년간의 연구비로 17억원을 지원했다. 같은 시기에 외부 연구기관의 심사를 통과해 20억원에 달하는 연구비용 전액을 지원받았다. 5년간 37억이라는 금액을 연구계획서의 틀 내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구 교수가 특별히 운이 좋았던 걸까. 그렇지는 않다. 국내외 유수 연구원들이 인재를 영입할 때 활용하는 네이처잡(Naturejob)의 공고를 살펴보면 파격적으로 보이는 대우를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영국 런던의 한 연구소는 기본 계약기간 6년에 최장 12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연구비와 연구시설 이용비뿐만 아니라 연구원 4명을 지원해준다. 필요하다면 외부 연구비 수주도 도와준다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큰 규모의 연구비가 지원되는 경우가 있다. 단 이 같은 전제조건이 따라붙는다. ‘학계와 사회에서 인정받는 경험 많은 정교수일 것’. 한국은 젊은 이공계 연구자들 사이에서 연구개발(R&D) 조급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환경으로 악명이 높다. 시니어(senior)급 교수가 아니면 상당한 기간과 비용이 필요한 연구과제를 낙찰 받기 힘든 것도 같은 이유다. 실패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경험 많은 연구자를 선호하는 것이다. 생물학정보연구센터가 지난 7월 과학기술인 1,0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이공계 인재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 1위에 ‘지나친 단기 실적주의 및 연구 독립성 문제(59%)’가 꼽혔다.

앞서 지난 5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외국에서 취업해 한국을 떠난 박사 학위의 이공계 인력 수는 2013년 8,931명으로 2006년(5,396명)에 비해 65.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본경 교수는 성체줄기세포가 어떻게 몸속에서 장기의 재생에 관여하는지를 연구한다. 위 사진은 위장 상피에서 세포들이 자라는 것을 형광을 이용해서 관찰한 모습이다. /사진제공=구본경씨


위계질서가 강한 권위주의적 연구실 문화도 젊은 인재들이 한국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외국의 연구 문화가 평등하고 자유롭다고 느낀 적이 있느냐고 묻자 구 교수는 바로 네덜란드의 지도교수를 떠올렸다. 구 교수는 “사무공간이 부족해지자 교수님이 선뜻 ‘내 사무실을 나눠 쓰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바로 옆에서 교수님이 업무를 보고 있는데 연구원들끼리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며 위계질서에 구애 받지 않고 오직 실력에 따라 평가 받는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파격적인 조건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 석학들이 손사래를 치며 본국으로 돌아간 것도 이처럼 너무 다른 연구 문화가 바탕에 깔려있다. 이들은 뿌리 깊은 권위주의와 소통 부재·다양성 부족 그리고 인맥 중심의 학내 정치에 계약기간을 채우자 마자 한국을 떠났다.

연구 인프라나 복지 측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구 교수는 “전담연구원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입을 뗐다. 전문기술을 필요로 하는 실험의 경우 상주하며 지도 및 도움을 줄 전담연구원이 배치된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는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해 시간이 곱절은 더 들었다”며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세심한 지원이 이뤄지더라”라고 감탄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자주 뵙지는 못하겠다고 걱정하자 구 교수는 “빈도는 낮지만 시간으로 따지면 비슷한 것 같다”며 웃었다. 그에게 주어지는 휴가는 1년에 6주로 대개 1달 정도는 한국에 머물기 때문. 한국에서 일했다면 상상하기 힘든 여유를 외국에서 일하며 받은 휴가로 한국에서 마음껏 누리는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는 셈이다.

구 교수는 끝으로 “한국의 과학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며 “저 같은 토종박사도 외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서 박사 후 연구원까지 지내고도 외국을 택하는 젊은 과학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해결할지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바이오산업의 경우 유럽은 대학 외에도 기업 내 연구소 등 선택지가 다양하다. 그만큼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그는 “이공계 두뇌 유출을 막으려면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외국의 환경과 견주어도 손색 없는 지원제도의 선진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구본경 교수의 공식직함은 그룹리더(group leader)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용어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직함이다. 그룹리더는 연구활동을 위주로 하며 대학원생을 지도한다. 하지만 학부수업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교수와는 차이가 있다. 구 교수는 조교수급 그룹리더로 기사 내에서는 편의상 교수로 표기했다. 그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줄기세포 연구소에서 성체줄기세포를 연구중이다. 우리 몸 곳곳에 숨어있는 성체줄기세포는 상처가 났을 때 왕성하게 분열/분화하기 시작해 치료를 돕는 역할을 한다. 그는 성체줄기세포가 어떻게 몸 속에서 장기의 재생에 관여하는 지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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