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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만족할 줄 알면 치욕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동양학 교수




사람의 움직임은 선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 노란선 밖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차를 몰더라도 차선을 지켜야 하고 횡단보도 정지선 앞에서 서야 한다. 모두 안전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므로 선을 지키라고 요구하게 된다. 문서 작업을 하면 선을 그을 때도 반듯해야 모양도 좋고 내용도 편하게 눈에 들어온다. 머리 손질을 할 때도 라인이 살아야 예쁘게 보인다. 라인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왠지 불편하고 머리를 손질해도 손질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선은 아름다움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살면서 선 안에 머물 수만은 없다. 철도에 사람이 떨어질 경우 선 안에만 있으면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할 수 없으므로 선을 넘어 사람을 구하게 된다. 처음 만난 사람이 반말부터 하거나 사람 사이에서 상식을 지키지 않으면 평소 자제하던 감정의 선을 넘어서 항의를 할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사람을 쉬운 사람으로 여겨 바보 취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선의 안 밖을 넘나들며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전체적으로 5,000여 글자에 지나지 않지만 노자의 ‘도덕경’을 보면 자주 되풀이되는 말이 있다.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멈출 곳을 알아야 한다.” 이 말도 따지고 보면 선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족과 멈춤은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그 안에 있어서 밖으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친 김에 선을 지키자는 노자의 말을 더 들어보자. “만족할 줄 알면 치욕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 가이장구·可以長久).”

0315A23 고전




사람은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를 바란다. 그 노력이 실패로 귀결되면 좌절하고 성공으로 귀결되면 환호하게 된다. 여기서 노자는 우리에게 성공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주목하게 만든다. 사람이 하는 일에서 성공을 거두면 힘들게 이끌어온 노력이 평소에도 발휘될 수 있는 실력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일의 속도를 높이고 포부를 더 크게 가지게 된다. 노력과 실력이 새로운 도전을 수용할 수 있다면 지금의 나는 분명 이전과 다른 더 큰 나로 성장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아도취에 빠져 상황을 안이하게 인식한다면 지금 시도하려는 도전은 내가 가진 것이 보잘 것없으며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를 모는 것처럼 위험을 가져오게 될 뿐이다. 그래서 노자는 자신의 능력과 한계가 어디인지 선을 모르고 자꾸 그 선을 넘으려고 시도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노자는 선이 뒤죽박죽된 세상을 말에 비유해서 생생하게 설명을 시도한다. 세상에 상식과 원칙이 통용되고 있으면 전쟁을 대비해서 기르던 말이 더 이상 전쟁터를 달리지 않고 논밭에서 농사를 짓게 된다. 반면 세상에 상식과 원칙이 통용되지 않으면 논밭을 갈고 짐을 실어 나르던 말이 전부 전쟁터로 내몰리게 되고 전장에서 새끼를 낳게 된다. 상식과 원칙이 통용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 말은 있어야 할 곳에 있게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노자는 말만이 아니라 사람이 안전하고 평온한 삶을 살려면 만족과 멈춤의 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죄 중에 만족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없다”는 말을 통해 만족하는 삶의 가치를 되풀이해서 강조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광화문을 비롯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지는 촛불집회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촛불집회는 분명 시민이 평소 하던 일상과 되풀이되던 생업의 활동을 접고 광장에 나왔으니 선을 넘어선 것이다. 일상과 생업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경계를 넘어서는 월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월경은 치욕과 위험을 가져오는 사건이 아니다.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소수의 사람들이 헌법에 보장된 공과 선을 마구잡이로 넘나들며 일으킨 치욕과 위험을 제대로 돌리게 하는 복원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선을 유쾌하고 발랄하게 넘나들면 만족하고 멈춰야 하는 선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은” 노자의 선과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선의 의미를 창조적으로 이해한다면 민주주의가 더 공고하고 정의가 더 확실해지리라.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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