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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in이슈] 재벌총수 총출동 청문회 28년전 '일해재단' 데자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재벌 총수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이호재기자




6일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의 진상규명 청문회에 이재용 삼성 회장 등 9명의 재계 총수들이 증인 신분으로 총 집결하면서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28년 전인 지난 1988년 일해재단 사건과 ‘닮은꼴’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이들 총수들이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80년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일해재단을 만들어 재벌들의 기금을 출연받았고 이것이 문제가 돼 재벌 총수들이 검찰 수사를 받은 바 있다. 일해재단과 미르·K스포츠재단이 ‘판박이’로 불리는 이유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기금 출연 주도·모금 과정의 강제성 폭로·재단의 사유화 논란 때문이다. 일해재단 모금과 관련해 검찰은 1989년 1월 5공 비리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기업들의 기금 출연이 강요 성격도 없었고 돈을 낸 기업에 특혜를 줬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벌 총수들은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으며 뇌물죄의 칼날을 피해갔다.

이번에도 일해재단 때처럼 총수들은 뇌물죄의 칼날을 피해갈 수 있을까.

2016 국조특위 청문회는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을 전경련이 주도적으로 나서 모금한 사실이 밝혀지며 열린 청문회와 판박이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1988년 12월 14일 열린 국회 ‘5공비리 조사특위 일해재단 청문회’에 참석해 선서하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왼쪽부터), 장세동 전 안기부장,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이날 국조특위 청문회에서는 총수들은 재단 기금 출연에 대가성은 없었다고 밝혔다.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대가성이 있어야 한다. 대신 총수들은 직간접적으로 강요에 의해 돈을 냈다고 은연중에 밝혀 피해자임을 부각시키려 했다.

이만희 새누리당 의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2015년 7월 26일과 2016년 2월 17일 대통령과 독대한 사실이 있는지, 그 자리에서 대통령으로부터 문화융성과 체육계 발전을 위한 자금 요청을 받은 사실이 있나”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두 번 독대했고, 그 자리에서 문화 육성을 위해 기업들도 열심히 지원을 해주는 것이 경제 발전,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낌없이 해달라는 말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기금 출연에 대한 압박이 있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러나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것이 강요냐, 뇌물이냐, 자발적이냐에 대한 질문이 거듭되자 이 부회장은 “그 당시에 그런 청와대의 지시를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정확한 답변을 회피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들 단체에) 출연했다. 80억원을 내라는 요구를 받은 적 있다”고 말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기업은 정부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거부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했고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역시 “재단출연을 기업이 거절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다른 재단과 미르-K스포츠재단과 설립에서의 차이점이 있느냐’는 최교일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이번엔 세세한 부분을 청와대에서 많이 관여했다”며 “올 2월경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독대 후 더 세부적인 지시를 내렸다”고 털어놔 청와대의 압박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드러냈다.

1988년 당시에도 5공비리 특별수사부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소환해 일해재단 모금 과정에 강제성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정 명예회장은 “85년 2차, 86년 3차 모금 때는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일해재단 측 요청에 따라 순순히 응하는 게 편할 거 같아 냈다”고 말했다. 사실상 불이익이 있을까 두려워 돈을 낼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강제모금 행위는 전혀 처벌되지 않았다. 검찰은 장세동 전 청와대 경호실장은 일해재단 부지의 건축제한 완화 압력·이사회 결의 없이 일해재단 영빈관 건립 지시 등 직권남용 및 대통령경호실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김인배 전 일해재단 사무처장은 익명의 기부금 15억원을 빼돌려 개인 계좌에 입금하고 9,000여만원의 이자를 가로챘다며 횡령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구속기소된 두 명마저도 곧 풀려났다. 장 전 실장은 1989년 1심 재판에서 징역 10개월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으나 수감 4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 장기간의 항소심 재판이 이어졌고 1993년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김 전 사무처장도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용두사미’(龍頭蛇尾)식 수사였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초고속 설립 허가 과정·수개월 만에 약 800억원이라는 거액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정경유착 비리의 전형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검찰이 기금을 낸 대기업에 특혜가 주어졌는지를 밝혀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혜를 특정하지 못할 경우에 총수에게 뇌물죄를 적용하기 힘들기 때문에 일해재단때처럼 칼날을 비껴갈 수 있다. 하지만 대가성을 특정하지 못하더라도 국가 행정 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돈을 낸 만큼 미래의 불특정 특혜를 노린 것일 수 있는 만큼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그룹의 경우는 전경련을 통한 기금 출연과 별도로 최순실측에 직접 승마 구입 비용을 지급하는 등 직거래 사실이 밝혀진 만큼 대가성 입증이 쉬울 수 있어 뇌물죄를 벗어나기 힘들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재단이 설립되기 이전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위해 최순실씨와 정유라씨를 지원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대가성 논란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비선 실세 최순실에 대해 금전적 지원을 해주는 대가로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는 선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온라인 공간을 통해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어 전국민적 감시 체계가 공고해졌다는 점도 1988년의 흐지부지한 결과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에 힘을 보태고 있다.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온라인 뉴스를 통해 누구나 관련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 실제로 2016 국조특위 청문회가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생중계 되면서 총수들의 발언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잠잠해지는 게 아니라 이슈가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며 증폭되는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3일 촛불로 밝혀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뒤로 적막한 모습의 청와대가 보인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의 마지막 뒷모습이 어떠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박 대통령은 사실상 ‘해당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일해재단 사건 등의 책임을 지고 1988년 11월 23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란 제목의 사과문을 낭독한 뒤 백담사로 은둔했다. 전 전 대통령은 일해재단에 대해 “당초 설립 취지대로 ‘아웅산 사건’ 유가족을 돕는 일에 그쳐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다”며 “현직 대통령이 이 사업에 관심을 보이면서 기금 모금·관리에 잘못이 빚어진 점은 모두 저의 불찰”이라고 밝혔다.

한편 2016 국조특위에 증인으로 채택된 재계 총수 9인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구본무 LG그룹 회장·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최태원 SK그룹 회장·손경식 CJ그룹 회장·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신동빈 롯데그룹 회장·허창수 GS그룹 회장이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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