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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좁은 대지위에 놓인 비움의 건축…'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건물 휘감은 기하학적 줄무늬 … 패션을 입은 문화공간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는 좁은 부정형의 대지라는 악조건에도 기하학적 변형을 통한 수려한 외관과 비움의 건축을 통한 공간 활용의 극대화를 현실화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외벽 인공조명을 켠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의 전경. /사진제공=남궁선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프라다재단 미술관은 모두 세계적인 패션 기업들이 만들고 운영하는 문화공간이다. 그리고 ‘디자인’이라면 내로라하는 이들 세계적인 패션 기업들은 각각 장 누벨과 프랭크 게리, 렘 콜하스라는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에게 작품의 설계를 맡김으로써 건축과 패션 디자인이 조우하는 예술성 넘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국내에서도 ‘루이까또즈’라는 패션 브랜드를 보유한 태진인터내셔날이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복합문화공간인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PLATFORM-L CONTEMPORARY ART CENTER)’를 올해 개관하면서 패션과 건축의 만남은 현실화됐다.



● 공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다

채우기 보다 비우면서 지하공간 활용

오각형 모습의 좁은 대지 문제 극복



플랫폼-엘이 들어선 부지는 예전에는 마당이 있는 호프집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대지면적은 684㎡에 불과할 정도로 좁은데다 비정형(非正形) 오각형의 모습을 띠고 있어 상업용 건물을 짓기에는 쉽지 않은 땅이다. 외부인의 드나듦이 빈번한 복합문화 공간의 특성상 주차장 확보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좁고 일반적인 사각형의 건물이 들어설 경우에는 그나마 활용할 수 있는 공간도 ‘죽은’ 공간이 돼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지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공간을 비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해결됐다. 설계를 맡은 이정훈 조호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지하를 20m까지 파고 들어갔다”며 “중간에 암반층이 나와 고생했지만 좁은 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처럼 플랫폼-엘의 지하 공간은 독특하다. 고민이었던 주차장은 지하 1층에 외부에서 곧바로 자동차가 진입할 수 있도록 한 기계식 주차 공간으로 만들어 20대 정도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도록 했다.

지하 2층은 다양한 공연과 전시가 가능한 ‘플랫폼 라이브’가 들어서 있다. 이 공간은 8m에 달하는 천장고를 확보했으며 내부에 무빙월 시스템과 수납식 의자를 설치해 필요에 따라 공간의 크기와 형태를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해 영화 상영이나 패션쇼·미술전시관 등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소장은 “건축주인 전용준 태진인터내셔날 대표가 확정적인 느낌의 공간이 아니라 복합문화 공간 기능들이 다양하게 연출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며 “지하 2층은 그런 의도에 잘 부합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지하 2층의 ‘플랫폼 라이브’는 무빙월과 수납식 의자를 활용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설계됐다. /사진제공=남궁선


●비움의 건축과 확장하는 공간

다양한 확장성 지닌 전시·공연장 설계

아늑한 중정도 배치 … 건물내 쉼표 역할



플랫폼-엘은 이 소장의 전작(前作)인 ‘헤르마 주차빌딩’과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외관만 볼 때는 전혀 다르다. 마치 ‘이란성 쌍둥이’ 같은 느낌이다. 헤르마 주차빌딩과 플랫폼-엘 모두 비정형의 좁은 대지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기존의 건축적 문법을 과감하게 바꿨으며 재료가 가진 다양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는 사람에게 새롭고 매력적인 건물로 다가서게 함으로써 미적 완성도를 높였다.

이 소장은 대지가 좁기 때문에 모든 공간을 건물로 채우려 하는 조급함 대신 오히려 공간을 비워버리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그 결과물이 플랫폼-엘의 내부에 있는 ‘중정(中庭)’이다. 플랫폼-엘에서 중정은 다중적인 의미를 가진 공간이다. 중정은 사무동과 전시동, 두 개의 덩어리(매스)로 구성된 건물을 이어주는 공간이며 동시에 공간적 연속성을 분리해주는 공간으로 건물 내에서도 ‘쉼표’ 역할을 하는 곳이다.

기능적으로 중정은 야외 극장식 공간으로 활용된다. 3면이 건물로 둘러싸여 있지만 유일하게 뚫린 공간에는 자동 스크린이 설치돼 있어 영화도 상영할 수 있고 소규모 음악공연도 가능하다. 극장식 공간의 비율과 구성은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을 표본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건물 내부의 2층과 3층 복도는 오페라 극장의 테라스석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래서인지 중정이 있는 내부 공간은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 소장은 “내부 공간은 협소하지만 그 공간을 잘게 쪼개서 필요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고민을 많이 했다”며 “중정은 이를 상쇄할 수 있는 공간이며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가진 공간”이라고 말했다.

‘플랫폼-엘’의 중정은 두 부분으로 나뉜 건물을 이어주거나 단절하는 역할을 하며 영화 상영이나 공연 등 다양한 문화활동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사진제공=남궁선




●미적·경제적 가치를 모두 담다

바로크 기하학 변형·조합한 외벽패턴

루이까또즈 제품 디자인에도 차용돼



플랫폼-엘은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미적 가치에도 충실한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플랫폼-엘 외관이 백미다. 얼핏 보면 플랫폼-엘의 외관은 수많은 끈으로 건물 외부를 ‘칭칭’ 감아놓은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하지만 이 꼬여 있는 듯한 줄무늬 패턴은 ‘루이 14세(루이 카토르즈)’가 정립한 바로크 기하학에서 흔히 보이는 마름모와 왕을 상징하는 원을 결합하고 이를 변형하고 조합해 적용한 결과다.

여기에 각기 다른 세 가지의 루버(louver)를 외벽에 배치함으로써 패턴에 변화를 줘 중정이 있는 내부 공간과는 다른 화려함과 세련됨을 건물에 부여하고 있다. 이 소장이 고안한 건물 외벽의 패턴은 ‘루이까토즈’의 제품 디자인에도 차용됐다고 알려졌다.

이 소장은 “외부에서 보는 플랫폼-엘이 차갑고 세련된 모습이라면 내부에서 본 플랫폼-엘은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라며 “강남 논현동의 휘황찬란한 거리와 행인들로 북적이는 모습이 세련된 외부 디자인과 어울린다면 그 속에서 아무도 생각지 못한 중정은 쉼표와 같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중정의 바닥 타일 디자인도 루이 14세가 살았던 1624년의 베르사유 하늘을 본떴다. 이 소장은 “중정에 선 사람은 시공간을 넘어 21세기 서울의 하늘과 17세기 프랑스 하늘에서 얻을 수 있는 감성을 느꼈으면 하는 의도로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의 단면도. /사진제공=조호건축




■ <설계자 인터뷰> 이정훈 조호건축 소장

“재료 따라 건물 표정 달라 … 알루미늄으로 화려함 표현”



“건축주가 문화 공간에 대한 확실한 목표의식이 있어 설계 과정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정훈(사진) 조호건축사사무 소장은 “협소한 대지 조건 등에도 만족할 만한 작품을 설계할 수 있었던 것은 건축주와의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이었다”며 “다양한 내용과 상황을 반영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중정을 비롯해 지하의 플랫폼 라이브 등을 마련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설계 전 건축주, 시공사 대표와 한 달 정도의 유럽 건축기행을 떠났던 것이 설계에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주로 미술관과 아트센터를 직접 방문해 유럽 건축을 접했고 ‘플랫폼-엘’에 대해 토론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설계나 시공 단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해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성균관대에서 건축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건축을 더 공부했다. 특히 그는 프랑스 낭시(Nancy) 건축학교에서 건축재료학으로 석사학위를 받는 등 건축재료에 대한 남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는 “같은 유리라도 그냥 사용할 때와 표면을 거칠게 긁어내 사용할 때는 재료가 가진 느낌 자체가 달라진다”며 “설계를 할 때도 이런 재료가 주는 질감 등을 충분히 생각해 적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은 그가 설계한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헤르마 주차빌딩’은 일반적인 주차빌딩에서 쓰는 철골이나 철근콘크리트가 아니라 플라스틱 재료로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해 다양한 색상을 연출하기도 했고 플랫폼-엘에서도 건축재료로는 잘 쓰지 않는 알루미늄을 사용함으로써 금속이 가질 수 있는 차가움과 반짝이는 화려함을 적절하게 제어해 건물이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프랑스 유학 시절 세계적 건축 거장인 반 시게루과 자하 하디드의 설계 사무소에서 일했다. 이 소장은 “반 시게루는 작은 부분부터 만들어 외연을 확장시킨다면 자하 하디드는 큰 부분을 만들고 세밀한 부분으로 넘어와 성향이 전혀 다르다”며 “그들을 모방하지 않고 한국적인 요소를 반영해 설계에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앞으로 보다 미적 가치에 충실한 작품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그는 “심미적인 작품을 해보는 것이 목표”라며 “예를 들어 종교시설을 설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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