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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칼럼] 오동나무 가지 위에 걸린 보름달

사실만이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어

검찰·언론의 존재 이유는 사실규명

대중 불신 초래한 이유 되돌아봐야





필자의 본적은 충남이다. 어느 날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세종시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울 때였다. 필자는 세종시 반대파였기에 옆자리 아내에게 충청도를 비판하고 있었다. 도중에 ‘멍청도’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 비판에 열중하던 나머지 정작 빠져나가야 할 IC를 지나치고 말았다. “이런, 어떻게 하지?”라는 한숨 소리에 아내가 말을 받았다. “누가 멍청도 아니랄까 봐.”

아들과 함께 운전 중 앞차가 꾸물거리는 바람에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런 멍청한….” 그러자 조수석 아들이 말했다. “운전자들은 자기보다 늦으면 멍청한 놈이고, 자기보다 빨리 달리면 미친 놈이래.”

정민 한양대 교수가 얼마 전 신문에 쓴 자신의 칼럼에 “너(술잔)는 가득 차면 능히 덜어내므로 넘치는 법이 없다”는 고려 때 문인 이규보의 시 구절을 인용했다. 덜어낼 줄 모르고 반성할 줄 모르는 인간을 빗댄 글이다.

하지만 필자로서는 반성하는 삶에 왜 이규보가 등장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규보는 고려 무인정권 당시 권력에 빌붙어 영화를 누리기 위해 발버둥 친 인물이다. 그는 조정이 농민 항쟁을 강경 진압하기를 바라면서 “뭇 개들 시끄럽게 짓는 소리 듣고부터…놈들을 궐하에 끌어올 장사가 있을 텐데”라고 읊던 인물이다. 여기서 뭇 개는 민중이고 장사는 권력집단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규보는 결국 당시의 권세가인 최충헌에게 빌붙는 데 성공한다. 빈번한 민란에 맞서 민심 수습과 회유를 위한 격문 작성에 능한 문사(文士)로 발탁된 것이다. 그는 최이 정권이 몽골의 침략에 놀라 강화도로 도망칠 때 ‘천도’를 축하하는 글까지 남겼다.

이쯤 되면 정 교수의 글을 들여다봐도 어떤 것이 덜어내고 반성하는 삶인지 알 수가 없다. 하긴 지식인의 삶과 글이 유리되는 것이 고려 시대뿐일까. 얼마 전 강정인 서강대 교수가 쓴 칼럼 ‘만사법통(萬事法通)에 추락하는 도덕의식’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이 글에서 강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돈 있고 배운 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법치를 악용하면서 처벌만 피하면 만사법통이고, 자신들의 도덕적 타락과 양심의 마비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도덕 불감증이 두렵다”고 말한다. 물론 그 부류에는 정치인·관료·기업인 등이 거론된다. 필자가 뜨악해한 것은 막상 대학교수 등 지식인들만 쏙 빠져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는 말을 남겼다.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의 기본을 묻자, 백성이 (군주를) 믿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 내용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나라의 검찰을 지휘 통괄하는 법무부 장관이라면 무신불립과 함께 ‘무증불신(無證不信·증거가 없는 것은 믿지 않는다)’이라는 말도 함께 남겼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법을 다루는 책임자에게, 그리고 그 휘하의 검찰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격언은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청(淸)나라 고증학이 오늘날에도 과학적 학문으로 평가받는 배경에는 무증불신의 신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 고증학파가 내건 학문적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이 무증불신이었다.

무신불립은 공자의 말이다. 그런 공자가 같은 책 위정편에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겨놓고 있다. ‘다문궐의 신언기여(多聞闕疑 愼言其餘)’. 많이 듣되 의심나는 것은 제외하고 그 나머지조차 신중히 말해야 한다는 의미다. 무증불신과 상통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들 경구는 범죄자를 찾아 조사하고 처벌하는 검찰만이 아니라 사실과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네 검찰과 언론은 이런 선인들의 가르침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작금의 시중에 검찰·언론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갈수록 번져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통 동양화는 시서화(詩書畵)가 합일을 이룬다. 조선 후기 화가 김득신의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에는 오동나무를 쳐다보며 짖는 강아지 그림 옆에 이런 시 구절이 덧붙어 있다. “한 마리 개가 짖으니 온 동네 개가 짖어댄다/아이에게 문 밖에 나가보라 했더니/오동나무 가지 위에 보름달이 걸려 있다 하네.” shinwo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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