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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값’ 33조원과 리글리



‘껌값’ 33조원과 리글리
287억 달러. 껌값이다. 원화로 33조원이 넘는 돈을 껌값이라 하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국제적 기술 및 시장 분석 전문기업인 테크내비오(Technavio)가 추정한 올해 세계 껌 시장 규모가 이 정도다. 껌값이 합쳐져 거대한 돈이 되니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물론 74억 지구촌 전체가 껌을 즐기지는 않겠지만 수요가 많다. 식사를 마친 회사원, 졸음을 참으려는 운전자, 경기 중인 운동 선수들이 껌을 찾으니까.

국적과 연령, 성별, 지위를 막론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껌을 씹는 문화가 생기고 시장이 형성되는 데에는 이 사람의 역할이 컸다. 윌리엄 리글리 주니어(William Wrigley Jr:1861~1932.1.26). 126년 전에 요즘과 같은 형태의 껌 상품을 만들어 대중화한 주인공이다. 껌을 팔아 억만장자가 된 인물일 뿐 아니라 경영 혁신의 롤 모델로도 자주 거론된다. 영국 태생의 기업경영 저술가인 스튜어트 크레이너는 ‘75가지 위대한 결정-탁월한 결정 하나가 기업의 운명을 바꾼다’에서 리글리를 유연성과 창의력을 고루 갖춘 경영인으로 손꼽았다.

기업인으로 거대한 족적을 남겼지만 어린 시절의 그는 ‘가망이 없는 아이’로 통했다. 필라델피아에서 비누를 만들어 이륜 마차에 싣고 판매하는 집안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동생들을 돌보지도, 공부에 전념하지도 않았다. 장난이 심하고 주장이 강해 선생님들에게 대들기도 일쑤였다. 바닥권 성적이던 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는 두 번이나 가출해 부모의 속도 썩였다. 다만 한 가지, 잘 하는 일이 있었다. 실망한 부모가 집안 일이나 거들라며 시킨 비누 판매에 재미를 느낀 것. 태어나 처음으로 흥미를 갖게 된 비누 판매에서 뛰어난 실적을 올렸다.

경험을 쌓은 그는 29세에 자기 둥지를 틀었다. 독립에 반대하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1891년 초 시카고행 열차에 몸을 실은 그의 재산은 단돈 32달러. 말 그대로 ‘껌값’이었지만 세일즈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자본을 댄 삼촌과 공동으로 시작한 비누 사업은 생각대로 단기간에 자리를 굳혔다. 비결은 ‘끼워 팔기’. 소비자들이 덤으로 얹어 주는 베이킹파우더를 비누보다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뒤 업종을 바꿨다. 결과는 대성공. 베이킹파우더 한 캔에 풍선껌 두 팩을 제공한 게 먹혀들었다.

껌이 예상외로 인기를 끌자 리글리는 다시금 방향을 틀었다. 껌 사업에 미래가 있다는 판단 아래 아예 주력 사업으로 삼은 것. 1892년 첫 번째 상품인 ‘로타’와 ‘바사’를 출시하고 이듬해부터는 추잉껌 ‘주시 푸르츠’와 ‘스피어민트’를 내놓았다. 아직까지도 리글리사의 주력인 초장수 대박 상품인 ‘주시 푸르츠’와 ‘스피어민트’는 그에게 부를 안겨줬다. 얇고 긴 판 모양의 껌 특유 디자인도 이때 처음 나왔다. 성공 속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세일즈 아이디어를 냈다.
‘껌값’ 33조원과 리글리
리글리의 세일즈 포인트 가운데 가장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계산대 바로 옆에 껌을 진열하는 전략. 잡화점이나 소매점 주인을 설득해 계산기 옆에 작은 껌 진열대를 집어 넣었다. 껌은 동전 몇 개면 살 수 있는 저렴한 상품이었기에 소비자들은 계산을 하다가도 별다른 부담 없이 껌을 집어들었다. 특히 부모를 따라온 어린 아이들은 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라나 평생토록 리글리 껌을 찾았다. 상품은 매장 안의 진열대에 정리하고 고객을 기다리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발상으로 그는 돈 방석에 앉았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한 1907년 공황에서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남들이 광고를 줄일 때 저렴한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기회로 보고 광고비를 대폭 증액한 덕이다. 전화번호부에 적힌 주소에 껌 4개씩을 무료로 보낸 적도 있다. 인류 전체가 한꺼번에 싸웠던 최초의 전쟁인 1차세계대전도 그에게는 기회였다. 어릴 적부터 리글리의 껌을 접하며 자라난 미군 병사들이 가는 곳마다 껌 씹는 문화를 퍼트리며 해외 기반이 넓어졌다. 1916년에는 야구단도 사들였다.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팀 시카고 컵스의 홈 구장 이름이 지금도 리글리 필드인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1923년에는 회사 주식을 뉴욕증권거래소와 중서부 증권거래소에 상장시켰다. 이듬해에는 르네상스풍의 초고층빌딩인 리글리 빌딩까지 올렸다. 리글리 본사 사옥은 이전했어도 리글리 빌딩은 여전히 시카고의 명물로 꼽힌다.

캘리포니아 남부의 샌타카탈리나섬이 관광 휴양지로 개발된 것도 그의 투자 덕분이다. 미국과 멕시코를 오가는 해상 밀수의 근거지였던 샌타카탈리나섬은 각종 휴양시설을 건립하고 정기 운항선을 투입한 리글리 가문의 노력에 힘입어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껌값’ 33조원과 리글리
1932년 오늘, 71세로 사망한 리글리의 껌 사업은 증손자까지 이어졌으나 지난 2008년 워렌 버펫과 초콜릿 등을 생산하는 종합제과회사인 마즈(MARS)에 넘어갔다. 매각 대금 230억 달러. 껌값으로 출발해 창의력을 발휘해가며 세계적 기업을 일군 미국적 기업 환경이 부럽다. 학교 성적 꼴등의 말썽꾸러기가 자신이 할 일을 찾아내 마침내 성공을 거둔 스토리는 더욱 부럽다. 어떤 아이든 소중하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사족: 계간 ‘시작(詩作)’ 2004년 여름호에 실린 조기조 시인의 짧은 시, ‘껌과 민주주의’를 붙인다.

껌과 민주주의

조기조

아이들이 미군트럭을 쫓아 마구 달리던 먼지 속에서

한 아이가 우뚝 멈춰 양팔을 높이 들고 환호했다

그 아이의 손에는 껌 한 통이 들려 있었다

자신이 원했던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껌이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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