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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몰이에 가짜 뉴스까지… 사이버 워리어가 된 '실버 누리꾼'

#1.‘까똑, 까똑’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한춘자(75)씨의 휴대폰이 연신 울렸다. 큼직한 글씨로 화면을 꽉 채운 ‘문재인이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를 천천히 내려 보던 그는 “망조가 들었네”라고 한숨을 쉬더니 옆에 앉은 노인에게 보여준다. 순식간에 노약자석에 앉은 노인 몇몇이 고개를 가로젓더니 시국 토론을 한다. 한씨는 서둘러 누군가에게 전달받은 그 메세지를 또 다른 카톡창에 공유했다.

#2.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류갑룡(82)씨. 돋보기 안경을 콧잔등에 올려놓은 채 독수리 타법으로 천천히 “반.대.합.니.다.”라는 글자를 하나하나 눌러 적어 넣는다. 그가 공들여 다섯 글자를 반복적으로 써넣고 있던 곳은 바로 ‘국회 입법예고시스템’ 게시판이었다. 얼마 전 참가한 탄핵 반대 집회에서 만난 참가자들로부터 “좌파들이 낸 나쁜 법안을 컴퓨터로 반대한다는 글을 남기면 막을 수 있대”라는 말을 듣고 류씨도 함께 동참하게 된 것. 그가 띄워놓은 인터넷 창엔 복사 붙여넣기를 한 듯 그와 똑같은 ‘반대합니다’라는 글이 수두룩하다.
▲노인 10명 중 3명은 이미 스마트폰 사용자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스마트폰이 노년층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2015년 정보통신연구원이 발표한 ‘세대별 스마트폰 이용 특성과 영향력 변화’에 따르면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던 2000년대 초반엔 20~30대가 주 보유층이었지만 2015년 이후 40~50대의 보유율이 80%를 넘어섰다. 특히 60대 이상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2012년 6.8%에 그친 것에 비해 2015년 32.1%로 급등하며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세대별 스마트폰 보유 비율 변화(2016 정보통신연구원)




이처럼 스마트폰 보급률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폰 이용 강좌’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주로 서울시 자치구에 마련된 주민 문화 센터를 방문해 수강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주관하고 있는 정보화 교육 열기가 뜨거운 편이다.

노인종합복지관 정보화교육 강의 시간표. 컴퓨터 강좌는 정원이 16명이지만 3~4배 이상의 신청자가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아 추첨을 통해 수강생을 선발한다.


서울시의 한 자치구 노인종합복지관 관계자는 “시간이 갈수록 정보화교육 수강생의 수가 점차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며 “인기가 많은 모바일 강좌의 경우, 수강 정원의 몇 배 이상까지 지원자가 몰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뒤늦게 온라인 세상에 입성한 실버누리꾼, 그들은 대체 이 곳에서 어디서 무엇을 어떤 활동을 할까?

▲인터넷 정치 여론 몰이에 가짜 뉴스까지… 사이버 워리어가 된 ‘실버 누리꾼’

스마트폰을 손에 쥔 ‘실버 누리꾼’이 온라인상에서 가장 먼저 흥미를 가진 영역은 바로 ‘뉴스’였다.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이자 전 언론사의 뉴스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네이버가 바로 그들의 놀이터다. 이는 뉴스 기사마다 달린 댓글을 성별·연령별로 구분해 분석한 통계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지난 19일 오후 2시를 기준으로 댓글이 가장 많은 정치뉴스 1~5위 기사에는 모두 50대 이상의 누리꾼이 가장 많은 댓글을 남겼다. 즉, 50대 이상 누리꾼의 다수가 정치 뉴스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19일 오후 2시 기준 네이버 뉴스 ‘정치 섹션’중 1~5위 기사의 통계 모습/사진=네이버 캡처


최근엔 특정 커뮤니티까지 이들의 손길이 닿고 있다. 극우성향의 사이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의 경우, 실버 누리꾼의 방문이 급증하며 기존의 일베 이용자들과 갈등을 빚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실버 누리꾼의 저돌적인 입장과 기존 누리꾼의 의견 사이에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 한 일베 사용자는 “일베 내에서도 박사모의 논리에 넘어가 박근혜를 옹호하려는 갈등 유발자들이 많은데 그것 때문에 박사모 회원들이 (일베로) 유입되는 것 같다”며 “일베 사이트 내에서 박사모 회원들이 활개를 치고 있어, 기존의 일베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요즘엔 자주 안 들어가게 된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일베는 박사모 너네들 것이 아니다”, “일베가 진짜 그분들 놀이터가 됐네” 등 사이트에서는 박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성향의 신규 가입자를 비판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진=일간베스트 캡처


단시간에 온라인상에서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인터넷상에서는 거침없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지만 오프라인상에서는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의 한 축으로 자리를 꿰찬 실버 누리꾼. 하지만 그들의 거침없는 활동으로 인해 몇 가지 문제가 속속들이 발생하고 있다. 먼저, 이들의 조직적 정치 활동이 잘못된 정치 여론몰이를 형성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점이다.

일례로 실버 누리꾼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박사모)’ 인터넷 카페에는 ‘입법예고 대책방(이하 입법 대책방)’이라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입법예고란, 법안을 수정하거나 새롭게 만들 때 국민의 의견을 서면이나 국회 입법예고시스템을 통해 수렴하도록 한 제도이다. 즉, 박사모 내 마련된 ‘입법예고 대책방’ 에선 현 정권에 조금이라도 불리하게 작용하는 법안이라고 판단되는 법안들을 반대한다는 게시글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온다. 주로 야당 의원이 발의하는 법안이다.

게시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법안에 대한 상세한 정보들과 함께 그들끼리 정한 ‘(반대 댓글) 달성 목표치’ 그리고 행동을 개시할 수 있는(반대 의견을 남길 수 있는) 국회 시스템의 링크가 적혀 있다.



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반대 의견 목표를 설정하고 “집중공격하자”며 참여를 독려한다.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말 것’을 유도하고 있다. /사진=박사모 홈페이지 캡처


실제 입법 예고방에서 게시글을 선도하고 있다고 밝힌 익명의 누리꾼은 “게시글을 올리자마자 단 몇 초 만에 조회 수가 수백개에 달하고 댓글 수십개가 달리니까 의무적으로 올리게 된다”며 “주로 달성 목표치는 4만 명으로 기준으로 정해졌는데, 사실 이 수치도 누가 처음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며 덧붙였다. 심지어 최근엔 자동으로 반대 의견을 남기게 하는 매크로(자동명령)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배포할 정도로까지 진화했다. 익명으로 중복 의견을 남길 수 있게 프로그램화한 것이다.

①목표 법안에 반대 의견 4만건을 남겨줄 것을 호소하는 글. ②자동으로 반대 의견을 남길 수 있게 제작한 매크로(자동명령) 프로그램이 유포되고 있다. ③국회 입법예고시스템에서 목표가 된 법안에 10만건이 넘는 반대 의견이 남겨져있다./사진=박사모 홈페이지 캡처


두번째 문제점은 실제로 조직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는 실버 누리꾼들이 정작 ‘ 반대 타깃’로 정한 법안의 실제 내용이나 입법 취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 1월 25일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제주시 갑)이 발의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법안은 도지사가 개발사업을 승인할 때 주민 등의 의견을 청취해야 하지만 사업의 시행주체가 농어업단체인 경우, 이 과정을 생략할 수 있게 한 개정 법안이다.

그러나 해당 법안에 대해 반대한다고 게시글을 올린 익명의 실버 누리꾼은 “법안 내용이 어떻든 간에 일단 제주도에는 4·3 사태 때부터 좌파가 많다고 들었다.”며 “이 긴 글(법안 내용)을 어떻게 다 보겠느냐. 그냥 주위에서 문자로 여기 링크를 보내면서 반대하라고 하니까 하는 거지”하고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실버 누리꾼의 온라인 ‘먹잇감’이 된 한 의원실 소속 관계자는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언급 없이) 다짜고짜 그 법안 철회하라며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수십통씩 항의전화가 와 업무에 지장을 받고 있다”며 “항의 내용은 마치 누가 멘트를 일괄적으로 정해주는 것처럼 똑같다”고 하소연했다.

마지막 문제점은, 실버 누리꾼이 SNS(사회적네트워크관계망)와 메신저 등을 통해 ‘가짜뉴스’를 유포하는데 일조한다는 것이다. 최근 50·60대 사이에서 메신저 단체 대화방과 이메일을 통해 급속도로 퍼진 ‘문재인이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가 그 예다. 이 편지는 실제 지난 2005년 당시 박근혜 유럽코리아재단 이사가 작성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에게 전달된 것이지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작성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가짜뉴스다.

이메일과 스마트폰 메신저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가짜뉴스 캡처본./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이러한 가짜뉴스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더불어 민주당은 최근에 전용 신고센터까지 마련해 관련 사례를 접수받아 대처방안을 마련 중이다.

▲실버 누리꾼 “표현의 자유 존중” VS 일반 누리꾼 “공론장을 훼손하는 주범”… 해결방안은?

온라인상에서 갈수록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실버 누리꾼 그리고 이들의 활동이 두드러질수록 계층간 깊어지는 갈등, 사이버 워리어로 변질된 실버 누리꾼의 활동을 바로 잡을 해답은 없을까. 우선 이들이 조직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는 데에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음에도 전문가들은 ‘법적 제재가 능사는 아니다’고 말한다.

이대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단적 의견 게시가 여론 왜곡 등을 유발해 국민이 피해자가 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나쁜 아이디어와 좋은 아이디어가 표현의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하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이들의 활동을 제재하게 되면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는 다수 누리꾼들의 표현의 자유마저 침해될 수 있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다. 다만 ‘게시글 폭탄’처럼 게시글을 중복해 올리는 것과 관련해서는 관련 기관의 기술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 급증한 ‘매크로 프로그램’에 대해 국회사무처 시스템 관리 담당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며 “악의적인 중복 게시글 등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 사항을 논의 중이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실버 누리꾼의 기술 교육 못지 않게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 교육이 동반되어야 한다. 앞서 말했던 지자체별 노인복지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 강좌를 살펴보면, 기술 교육이 대다수지만 정작 사이버 공간 상에서의 매너 등과 관련된 강좌는 부재하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온라인에서 조직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는 실버 누리꾼들의 다수가 기술력은 향상됐으나 이들의 윤리의식이나 가치관 등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 지체현상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버누리꾼들이) 다양한 매체를 보면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해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이 동반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가람기자·유창욱인턴기자 gara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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