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눈길’은 광복 이후 70여년이 흘렀어도 일본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 하나 받아내지 못한 채 여전히 진행 중인 비극적인 과거사 ‘위안부’ 할머니에게 우리가 써내려간 반성문이자 “우리만은 할머니들의 아픔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같은 작품이다.
1944년 일제강점기 말, 가난하지만 씩씩한 종분(아역 김향기·성역 김영옥)과 부잣집 막내에 공부까지 잘하지만 깍쟁이인 영애(김새론)는 같은 마을에서 자란다. 영애를 동경하던 종분은 일본으로 떠나게 된 영애를 부러워하며 어머니에게 자신도 일본에 보내달라고 떼를 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남동생 종길과 단둘이 집을 지키던 종분은 일본군들의 손에 이끌려 낯선 열차에 몸을 싣게 되고 그곳에서 유학 간 줄 알았던 영애를 만난다. 이때부터 두 소녀는 비극적인 운명에 내던져진다. 이를 견디지 못하겠다며 영애는 매번 자살을 시도하지만 종분은 “죽는 게 제일 쉽다”며 끝까지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자고 설득한다. 전쟁 막바지에 종분과 영애는 기적처럼 탈출한다. 그리고 “방직 공장에서 목화솜 뽑는 일 했다. 간호부로 일했다. 아무에게도 거기서 있었던 일 말 하지 않을 거야, 엄마한테도. 난 거짓말하면서 살 거야”라며 삶의 의지를 살려내던 영애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아랫목에 깔아 놓은 목화솜 이불 같은 ‘눈길’ 위에서 숨을 거둔다. 온갖 치욕 끝에 종분은 홀로 살아남아 집에 돌아온다. 그러나 어머니도 동생도 없었고, 동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도망치듯 고향을 떠난 후 한 번도 찾지 않는다. 그리고 종분이 아닌 영애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종분은 할머니가 돼서도 영애도 과거도 잊지 못한다. 단지 영애를 동경해서 영애로 산 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자신을 통해 영애를 계속해서 살게 하고 싶었던 것. 어린 영애가 할머니가 된 종분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는 판타지 장면들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끊임없이 홀로 치유하는 장치이자 끝나지 않는 비극을 상징한다.
비극을 끝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어 나아가는 건 어쩌면 우리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우리 근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피해자 위안부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다.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239명의 할머니 중 199명이 돌아가시고 2017년 현재 40분 만이 생존해있다.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고 기다리고 있지만 한일 양국 정부는 2015년 12월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와 관련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를 타결했다. 그리고 이 합의에 따라 거출금 10억엔을 화해·치유재단(12·28 합의에 따라 한국 정부 주도로 발족)에 송금했고, 아베 총리는 “이 외에 서면 등 털끝 만큼도 사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영화는 말미에 우리가 해야 할 말을 할머니가 된 종분의 옆집에 살던 소녀의 입을 통해 전한다. “그거 부끄러운 거 아니에요. 할머니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에요. 그 새끼들이 나쁜 놈들이지.”
‘눈길’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2015년 KBS 1TV 2부작 드라마로 방송됐으며, 이번에 극장판으로 편집해 관객들과 만난다. 1일 개봉.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yeonvic@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