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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_창업을_응원해]<19> 검도소녀, 엘리트선수와 생활체육인을 이어주다

1등 만능주의 스포츠 문화를 ‘즐기는’ 문화로

엘리트선수와 생활체육인이 만날 수 있는 플랫폼 ‘플레이콕’

정아람 플레이콕 대표./사진제공=정아람 대표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단짝이던 친구를 야구부 훈련장에 무심코 따라갔다가 처음 본 아이였다. 야구부 훈련장에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훈련장 구경은 야구 시합에 응원을 가는 것까지 이어졌고, 어느새 야구 자체를 좋아하게 됐다.

“배팅 한 번 해볼래?”

매일 야구장을 기웃거리던 어느 날, 야구부 코치님이 공을 쳐보라는 제안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에게 거는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쨍그랑’ 날아오는 공을 향해 무작정 배트를 휘둘렀을 뿐인데 교실 유리창이 깨졌다. 홈런이었다. 엘리트 선수와 생활체육인들의 교육 프로그램을 주선해주는 플랫폼 서비스인 ‘플레이콕’을 만든 정아람(28·사진) 대표가 운동에 빠진 운명의 순간이었다.

정 대표는 느긋하고 감성적인 아버지와 대범하고 이성적인 어머니 밑에서 컸다. 어려서부터 활동적이었던 것은 사업가였던 아버지와 ‘쿨’한 어머니의 영향이었다./사진제공=정아람 대표


◇ ‘딸 바보’ 아빠와 ‘대범했던’ 엄마

정 대표는 ‘딸 바보’인 아버지와 똑 부러지는 성격의 어머니 밑에서 컸다.

부모님 두 분은 9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첫 만남은 20살 때 다방에서 이뤄졌다. 커피를 마시러 왔던 어머니와 그곳의 DJ였던 아버지는 서로에게 반해 연애를 시작했다고 한다.

충남에서 자란 두 사람은 29살에 정 대표를 낳고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는 당시 국내에 150명 정도밖에 없던 엔지니어링 관련 자격증을 보유한 기술자였다. 공기업을 다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오기 직전 건설기술회사를 창업했다. 당시 많은 창업자가 그러했듯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외환위기 여파로 건설 경기가 급하락한 데 따른 것이었다.

“아버지 사업이 기운 건 제가 중학교에 올라갔을 무렵이었어요. 다들 힘들었죠. 학원 가는 게 부담스러운 시기였어요. 그래도 아쉬웠던 건 별로 없어요. 아버지의 사업가 DNA를 제가 물려받았으니까요.”

인터뷰 도중 대학생 때 만들었던 제안서 얘기도 꺼냈다. 정 대표는 용인대 동양무예학과 08학번이다.

당시 학교와 집의 거리는 편도로만 2시간 30분이 걸릴 만큼 멀었다. KTX를 타면 서울에서 대구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등포에 있는 집과 학교를 오가기만 해도 몸이 녹초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아버지는 자취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막 20살이 된 큰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너무 컸던 탓이다.

포기는 없었다. 어떻게든 자취를 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대학 생활이 힘들 지경이었다.

정 대표는 아버지를 조르는 대신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사업가 출신인 아버지의 스타일에 맞게 제안서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학교 앞에서 자취하는 생활의 장단점을 분석한 보고서를 5페이지로 만들었다. 아버지에게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사업가로서 내용이 타당한지 판단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가 아닌 회사의 대표로 제안서를 보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왕복 5시간의 통학 거리를 단 10분으로 바꿀 수 있는 자취의 장점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제안서 덕분에 1학년 2학기부터 집에서 나와 자취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정반대의 성격이었다. 느긋하고 감성적이었던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대범하고 이성적인 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집에 불이 났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살던 집은 여러 주택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였다. 정 대표가 소풍을 간 날이었다. 이웃 주택에서 시작된 불은 골목 안 10채가 넘는 집을 태웠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불이 다 꺼지고 난 후였다. 어머니는 재를 뒤집어쓰고 집 안팎을 오가며 망가진 짐을 옮기고 있었다. 한순간에 소중한 보금자리가 불타버린 상황. 울어도 모자랄 판국에 어머니는 오히려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린 정 대표의 눈에도 당연히 이상한 모습이었다. 집이 불탔는데 왜 웃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보험 들어놔서 괜찮아.”

정 대표가 검도를 시작한 건 경호원이 되고 싶어서였다. 검도 전공으로 용인대학교에 들어갔지만 동기들의 실력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운동이 아닌 다른 진로를 선택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은 이 때였다./사진제공=정아람 대표


◇경호원이 되고 싶었던 검도소녀

어려서부터 야구를 좋아했지만, 국내에서 여자 선수를 꿈꾸기에는 환경이 만만치 않았다. 경호원이라는 직업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였다.

학교 선배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너는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니까 경호원을 해보면 어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본 경호원의 멋진 모습은 정 대표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검도를 하게 된 것은 온전히 경호원이 되기 위해서였다. 경호학과로 유명한 용인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운동 하나를 필수로 해야 했다. 검도는 여러 선택지 중 입시 경쟁률이 가장 낮은 편이었다.

입시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운동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검도에 열중했고 엘리트 선수들이 나오는 대회도 출전했다. 서울시 대회에 나가서 입상을, 전국대회 단체전에서는 우승도 경험했다.

노력 끝에 꿈에도 그리던 용인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 경호학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검도를 전공하면 더 많은 길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용인대 동양무예학과에서 검도를 전공하면 선수는 물론이고 도장 사범이나 관장까지 할 수 있거든요. 무도 특채로 경찰 경호원이 되거나 스포츠 경영 쪽을 공부할 수도 있고요.”

더 많은 길을 열어두고 싶어서 선택한 전공이었지만 대학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전국에서 날고 기는 검도 특기생들이 모인 학과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동기들이 전국대회에 출전해 상을 받아올수록 그의 자존감은 낮아만 갔다.

미친 듯한 노력도 해봤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단련해온 동기들의 검도 실력을 좀처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결국 운동이 아닌 다른 진로를 선택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창업을 꿈꿨던 그때, 멘토를 만나다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언제부터 했는지 물었다.

“대학생 때 ‘기업 창업론’이란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제출한 과제에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의 대표가 되겠다고 써놨더라고요.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당연히 아니었죠. 그래도 언젠가 창업을 꼭 하겠다는 생각은 늘 했던 것 같아요.”

진로를 바꾸자 망설임이 없었다. 1학년 2학기에는 아예 경영학과를 복수 전공으로 선택했다. 동기들에게 검도로는 때문에 공부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 경영학을 배우는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었다. 정 대표의 졸업 학점은 거의 만점에 가까웠다. 그만큼 치열하게 경영학에 매진했다.

공부에 열중하느라 창업 생각을 잠시 밀어두고 있던 그때, 정 대표에게 ‘멘토’가 생겼다.

“3학년이 되고 나서 한국장학재단에서 진행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어요. 대학생 5명에 멘토 한 명을 묶어주는 형식이었죠. 재단에서 멘토를 해줄 만한 사람들의 명단을 줬는데 무작정 거기서 제일 높아 보이는 분을 찾아봤어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지원서를 썼는데 웬걸, 멘토가 되어주겠다고 허락하셨죠. 나중에 이유를 여쭤보니 지원서 내용이 너무 절박해서 도움을 주고 싶으셨대요. 검도 때문에 낮아진 자존감이 지원서를 절박하게 만들었나 봐요.”

정 대표의 멘토는 국내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유통회사의 대표였다. 큰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여러 조언을 듣는 것은 대학생으로서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였다.

멘토는 정 대표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창업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부족하고 실체가 없었는지 깨닫게 해준 것이다.

가장 큰 자극을 줬던 것은 유통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사업에서 사람을 설득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은 유통이다. 유통이 중심을 잡아줘야 성공적인 사업이 가능하다.” 유통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이 창업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등불에 달려드는 나방’과 같다는 의미였다.

대형 유통회사에서 3년 동안 근무하며 받았던 우수 사원 상. 정 대표는 유통일을 좋아했지만 그보다 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회사를 그만뒀다./사진제공=정아람 대표




◇유통회사에서의 3년을 보내다

첫 직장으로 유통회사인 홈플러스를 선택한 건 멘토가 해 준 조언의 영향이 컸다. 대학교 마지막 해였던 2011년, 이 회사의 인턴으로 입사했다.

생각한 것보다 일은 더 재미있었다. 인턴에서 정직원으로 전환되면서 마트 하나를 담당하게 됐고 유통의 ‘A부터 Z’를 배울 수 있었다.

“제가 맡았던 마트의 규모가 꽤 컸어요. 관리했던 직원만 200명에 달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떤 물건을 구매하고 또 이를 어떻게 판매해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가면서부터는 매출이 자연히 오르더라고요. 밸런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날 판매 이벤트를 기획하면 고객들의 반응이 바로 오는 것도 즐거웠죠.”

회사에서 능력도 인정받았다. 인턴 기간을 제외한 2년 동안 우수 사원에서 주는 상을 6번이나 받았다. 대리 진급을 앞둔 시기에는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유통회사에서 보낸 3년은 재밌었어요. 계속 이 업계에서 일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있었고요. 대리를 달고 본격적으로 유통업계에서 성장하느냐, 아니면 원래 목표였던 창업에 도전해 보느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였던 거죠.”

고민 끝에 그는 회사에 사표를 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그만두지 않으면 영원히 창업을 꿈꿀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좋아하는 일보다 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쉽지는 않은 결정이었다.

◇창업을 위해 다시 회사로!

정 대표는 바로 창업에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회사로 입사했다. 스포츠 유통회사였다.

“유통의 기본은 익혔지만, 사업의 큰 틀로 정해뒀던 스포츠와 관련된 업무는 전혀 알지 못했어요. 기본만 있으면 아무 소용 없잖아요. 그 위로 사업 형태를 갖춰줄 경험이 필요했던 거죠.”

경력을 인정받아 대리로 들어갔지만 전 직장보다 연봉이 40% 가까이 줄었다. 그 대신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훨씬 커졌다. 전 직장보다 규모가 작았던 탓에 정 대표 혼자 3~4명의 역할을 담당했다.

직영 매장 관리부터 자사 브랜드 상품 기획, 프랜차이즈점 확보 등 정 대표는 회사의 거의 모든 업무에 참여했다. 몸이 부서질 것 같았지만 버티고 또 버텼다. 창업을 위한 경험을 순식간에 쌓아갈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버티기 힘든 업무량이었어요. 무조건 다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진작에 그만뒀을 거에요. 6개월 정도 일하면서 보고 익히는 모든 걸 스펀지처럼 흡수하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한계가 왔죠.”

6개월도 잘 버틴 셈이었다. 정 대표가 있는 동안 인력 유출은 계속됐다. 차장급 이상 직원들이 그만두는 시점에 그도 결단을 내렸다.

유통회사를 그만두고 다녀온 독일 여행에서 정 대표(왼쪽 네번째)가 생활체육인들을 상대로 진행한 검도 특강. 이 때의 경험은 플레이콕 창업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사진제공=정아람 대표


◇엘리트 선수와 생활 체육인들의 만남

창업 아이템은 이미 정 대표의 머릿속에 있었다. 유통회사를 그만두고 두 번째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가졌던 3주 동안의 휴식기 때 다녀온 유럽여행에서 창업의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시 정 대표는 주로 독일에 머물렀다. 검도 선수 생활을 하던 시절 알게 된 독일 친구와 함께였다.

“독일에서 일반인 동호회 분들을 상대로 특강 식의 검도 강의를 했어요. 친구가 집이랑 식사를 책임질 테니 본인의 검도 동호회에서 특강을 해 달라고 요청했거든요. 독일은 엘리트 선수가 일반인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문화가 자연스럽더라고요.”

한국에서 검도 선수 생활을 했던 그에게 독일의 체육 문화는 충격적이었다. 엘리트 선수와 일반 동호회 선수들이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은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플레이콕의 시작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취미로 즐기는 운동을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하는 일반인. 은퇴 이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는 엘리트 출신 선수들. 두 집단을 묶어 주기만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는 곧바로 시장 조사에 들어갔어요. 독일과 스포츠 유통회사에서의 경험은 생활 스포츠가 반드시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 줬죠. 종목을 가리지 않고 스포츠 동호회 모임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생활 체육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사했어요.”

지난해 출범한 통합 대한체육회는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높여줬다. 이전까지 엘리트 선수들과 생활체육인들의 관리는 각각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따로 해왔다.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경계를 허물고 상호 보완해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이 두 단체의 통합을 이끌었다.

본격적으로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엘리트 선수와 생활 체육인들의 만남을 주선해주는 플랫폼 개발에 나선 것. 페이스북을 통해 가입한 스타트업 모임에서 개발자와 디자이너도 섭외했다. 2016년 5월, 드디어 플레이콕의 베타서비스를 시작했다.

“여러분의 스포츠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요?” 플레이콕 홈페이지 메인 화면의 문구. 플레이콕은 엘리트 선수와 생활 체육인들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다./출처=플레이콕 홈페이지 캡처


◇1등이 아니어도 괜찮아!

정 대표가 검도 선수 출신인 만큼 베타서비스의 시작은 검도에 집중됐다.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체육관을 월 단위로 예약하거나 스포츠 센터의 유휴 공간을 섭외하는 방식으로 교육 장소를 확보했다. 강사는 자신이 직접 맡거나 대학 선배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제 검도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플레이콕이 고유 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아요. 플레이콕을 이용하면 검도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진 거죠. 플레이콕이란 이름 대신 ‘검도콕’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계실 정도죠.”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검도 강좌가 입소문을 타면서 베타서비스를 시작한 지 6개월도 되기 전에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강료는 종목별로 다르다. 검도를 예로 들면 160분 동안 검도 사범에게 수업을 받는 모임에 참석하는 회비는 3만원 정도다. 장소대관비와 엘리트 사범 섭외비로 쓰인다. 플레이콕의 수익원은 모인 회비의 10% 정도다. 앞으로 개설되는 모임 수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수익이 커지는 구조다.

플레이콕을 통해 만나게 된 생활 체육인과 홍승현 웨크크보드프로(전 국가대표·오른쪽)가 1:1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플레이콕에서는 단체 수업부터 개인 레슨까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사진제공=정아람 대표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많은 모임이 개설됐다. 마라톤부터 웨이크보드와 농구, 유도까지 10여 개에 달하는 종목의 특강이 진행됐다. 이제는 교육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동호인들의 번개를 주선하거나 체육관을 대관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1등이 아니어도 괜찮아’

플레이콕의 핵심 사명 중 하나다. 1등만을 기억하는 우리나라의 스포츠 문화로는 누구나 쉽고 재밌게 운동을 즐기기가 쉽지 않다. 정 대표는 플레이콕을 통해 이런 문화가 바뀌어 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회사 이름에도 그런 의지가 담겨있다. 스포츠를 놀이처럼 즐기자는 뜻의 ‘플레이’와 모임을 선택한다는 의미의 ‘콕’을 합쳤다.

“지난해는 사업의 기반을 다지는 기간이었어요. 올해는 베타서비스에서 발생한 문제를 개선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해야죠. 우선 교육 프로그램을 세분화하고 체육관 확보에 힘을 쏟을 생각이에요.”

이제 성공적인 사업을 위한 기반 다지기를 끝내고 기둥을 세워나가는 정 대표는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창업을 하고 나서는 뇌가 쉬지 않는 날들이 계속됐어요. 검도 선수로 뛸 때보다 더 강한 체력이 필요한 삶이죠. 철저한 시장조사와 색다른 아이템 선정은 다들 고민하시잖아요. 장기적으로 사업을 이끌어 가기 위해 건강과 체력에 대한 준비를 하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부터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해서 강철 체력을 기르는 걸 ‘강추’합니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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