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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문화 후원 이끌어 내려면 창의력·집요함·운이 필요하죠”

유니스 리 휘트니미술관 기업협력 디렉터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미국 뉴욕 4대 미술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휘트니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의 기업협력 디렉터(Director of Corporate Partnership) 유니스 리(Eunice Lee)를 만났다. 그는 휘트니미술관의 재원 마련을 위해 기업과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휘트니미술관 이전을 위한 대규모 재원 마련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유니스 리는 휘트니미술관 이전에 필요한 재원 조성 임무를 맡아 기업협력과 마케팅을 담당했다.




유니스 리 휘트니미술관 기업협력 디렉터가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열린 ‘2016 프로젝트비아 결과공유 세미나:비아 살롱ViA Salon’(문화체육관광부 주최·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비아 살롱은 ‘프로젝트 비아’를 통해 쌓은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다. 2013년 시작된 프로젝트 비아는 시각예술 기획 인력의 국제 프로젝트 개발과 해외진출 활성화를 위해 리서치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4년간 총 170여 명의 기획자가 여기에 참여했다. 그들이 벌이는 사업을 통해 전시, 출판 등 분야에서 약 50여 개 프로젝트가 실행됐다.


유니스 리는 휘트니미술관 재원 마련을 위해 기업 후원을 끌어오는 핵심 인물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기업모금 기획자로 일했다. 그가 휘트니미술관에 합류한 건 5년 전의 일이었다.


휘트니미술관은 미국 철도왕 밴더빌트의 손녀이자 미술가였던 G.V.휘트니(1875~1942) 여사가 1931년 미국의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기 위해 설립한 문화공간이다. 휘트니미술관은 메트로폴리탄·구겐하임·뉴욕현대미술관(MoMA)과 함께 뉴욕 4대 미술관으로 꼽히고 있다.


뉴욕 맨해튼 도심 한복판에 있던 휘트니미술관은 더 많은 소장품 보관과 전시 공간 확보를 위해 2007년 이전을 결정했다. 맨해튼 첼시에 부지를 마련해 세계적인 건축가인 렌조 피아노의 신축 건물로 이전 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예산만 7억 6,000만 달러(약 8,675억 원)가 드는 대규모 작업이었다. 유니스 리는 휘트니미술관 이전에 필요한 재원 조성 임무를 맡아 기업협력과 마케팅을 담당했다.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



우선 휘트니미술관은 옛 미술관을 처분해 이전과 신축에 필요한 비용 9,500만 달러를 마련했다. 나머지 6억 7,000만 달러(약 7,500억 원)는 기부금과 각종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기부 문화가 자리잡은 미국에선 기업 외에도 개인 후원 문화가 활발하다. 휘트니미술관 이전에는 미국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의 리어나드 로더 회장 부부가 쾌척한 1억 2,500만 달러 기부금이 큰 도움이 됐다. 휘트니미술관은 결국 2015년에 이전을 완료할 수 있었다.


휘트니미술관의 연간 예산에선 개인 후원(70%)이 항상 기업 후원(15%)을 앞서고 있다. 많은 기업과 개인이 이처럼 큰 돈을 온전히 미술관을 위해서만 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니스 리는 후원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으로 “미술관의 콘텐트, 즉 좋은 전시와 소장품”을 꼽았다. 유니스 리는 말한다.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는 대신 미술관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그들이 알지도 못하는 무한한 무형의 가치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은행은 아무도 보지 않는 전시의 ‘첫 관람(First Access)’을 자사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싶어 하고, 자동차 회사는 영원 불멸의 예술품이 전시된 미술관에서 자동차를 전시하거나 VIP 파티를 열고 싶어 합니다. 전자회사는 제품 시연을 희망하고, 보석·가방 같은 제품을 만드는 명품회사는 작가와 공동작업을 하는 협업을 중시하죠. 휘트니미술관은 이런 기업 니즈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휘트니미술관 소장품 이미지를 활용해 제작한 블루밍데일스 백화점 쇼핑백 모습



휘트니미술관은 기업이 원하는 것을 먼저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휘트니미술관은 미술가 제프 쿤스와 패션업체 H&M을 연결해 가방을 제작했다. 패션 브랜드 막스마라는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새 미술관 건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휘트니 백’을 만들었다. 그 밖에도 휘트니미술관은 소장하고 있는 작품 이미지를 활용해 블루밍데일스 백화점의 쇼핑백을 제작했고, 미국 보석회사 ‘티파니앤코’는 최근 세 번의 휘트니비엔날레를 공식 후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휘트니미술관은 전통있는 티파니앤코의 다소 예스러운 이미지와 ‘쿨하고 섹시한 휘트니미술관’ 이미지를 접목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 사정이 나빠지면 문화예술 지원이 가장 먼저 위축되기 십상이다. 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과 문화재단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우리 실정에선 그저 휘트니미술관이 부러울 따름이다. 유니스 리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도 어려운 건 매한가지예요. 10년 전쯤에는 벽에 기업 로고만 걸어줘도 좋아들 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비즈니스에 공짜란 없는 것 같아요.”


그는 기업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창의력, 집요함, 그리고 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별 기업 특성에 맞는 창의적 방안을 제안하고, “20곳에 제안해서 20곳 모두로부터 거절당해도 계속하는” 끈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니스 리는 그럼에도 “미술관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는 요구는 거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휘트니미술관 이전을 위한 재원을 모두 채울 때까지 거의 10년 걸렸습니다. 그것도 새 미술관 오픈 2주 전에야 겨우 달성할 수 있었죠. 후원자를 모집하고 후원액을 모으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우리에게 후원하라고 설득해선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후원을 결정하는 각자의 계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특별한 전략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휘트니미술관의 정책이나 프로그램과 상관없이 기업이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 후원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고, 병원이나 정치인 후원 외에 문화예술 후원만을 하기 위해 미술관을 찾는 기업이나 개인도 있다고 했다.


그는 후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관계를 꾸준히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큰 손 후원자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게 아니에요. 연간 500 달러 후원자가 몇 년 뒤에 1,000 달러 후원자가 되기도 하죠. 재정이 미술관의 핏줄이라고 보면, 미술관 후원과 기부는 헌혈인 셈입니다. 미술관도 이런 로열티 높은 후원자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과의 의미 있는 협업도 바라고 있다며 엷은 미소를 띄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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