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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대통령과 삼성, 질긴 악연의 마침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 열렸다. 벌써 11번째. 구속된 기간으로 치면 83일째다. 짙은 회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이 부회장은 담담히 재판에 임하고 있다. 가끔 눈을 감았다 뜨는 그의 모습에서는 상념도 엿보인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쓰러진 날이다. 3년 전 5월10일 이 회장은 급성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누웠다. 지난 3년간 사라진 총수 자리를 메우던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재벌 총수 중 유일하게 구치소에 수감됐다. 밝게 웃는 새 대통령과 삼성 총수 부자의 비극은 묘하게 오버랩된다.

이날 재판도 증인 신문은 늘어지고 명확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증거는 차고 넘친다’고 자신하던 특검은 이 부회장이 이번 사건에 개입한 증거를 못 내밀고 있다. 죄가 있다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죄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특검 수사는 전방위 로비력을 발휘하는 ‘삼성공화국’이라는 프레임을 기반으로 하는데 적어도 이번 사건에서만큼은 ‘피해자 삼성’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법정 안에 갇혀 있는 삼성은 혼란스런 모습이다. 숫자로 보이는 삼성전자 실적은 화려하지만 그룹 미래는 불투명하다. 삼성전자 외 계열사들은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바람에 삼성은 지주사 전환을 포기했고 피 같은 50조원 규모의 자사주까지 소각하기로 했다. 순환출자 구조를 언제 어떻게 해소할지 불투명하고 최악의 경우 경영권 위협에 노출될 우려마저 나온다.

총수가 부재한 상황에서 인사와 투자도 막혀 있다. 삼성에 전문 경영인 체제가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조 단위 투자와 인수합병(M&A)은 전문경영인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부회장이 경영을 맡은 후 진행되던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삼성의 체질개선이 멈췄다.



이 부회장의 유무죄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법원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삼성과 권력의 질긴 악연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권력의 검은 손길은 국가와 기업을 만신창이로 만들었고 이를 통해 입은 천문학적 손실은 계산이 불가능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취임사에서 “정경유착이라는 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정경유착 근절이 기업을 배척하고 재벌을 처벌하는 것과 동일시돼서는 안 된다. 재계는 삼성이 지닌 인프라와 노하우를 국가가 활용해 경제 재도약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모멘텀을 기대하고 있다.

삼성은 척박한 땅에서 반도체 산업을 일궈 세계 1위로 도약한 기업이다. 실향민의 아들 문재인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랐다. 결이 다르지만 그 둘 모두 대한민국을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한 원동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아무쪼록 새 정부에서 보다 당당한 삼성과 깨끗한 권력, 그리고 그들의 건전한 파트너십을 기대해본다.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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