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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트럼프의 국제질서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외교무대, 경쟁의 장으로 인식

파리협정 탈퇴 등 기존 합의 무시

美 중심 세계질서 종언 부를수도





우리는 이제 트럼프 독트린, 혹은 최소한 구상단계의 독트린을 갖고 있다. 트럼프 독트린은 지난 1945년 이래 양당 합의를 바탕으로 지속돼온 미국의 대외정책과는 완전히 다르다.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허버트 R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단히 현실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며 “그는 세계를 지구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민간조직·기업들이 서로 뒤엉켜 이익을 다투는 경기장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 콘과 맥매스터는 이어 “우리는 국제 문제의 기본적 성격을 부인하기보다 오히려 적극 포용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말하는 포용은 미국의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로 가시화됐다.

국제관계의 ‘기본적’ 측면은 수천 년 동안 면면이 이어져왔다. 인류의 근대사는 경쟁과 충돌의 역사다. 워싱턴의 외교정책 역시 이를 충실히 반영한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군과 정보기관, 병력과 기지를 전 세계 수십 개국에 주둔시키고 있으며 몇몇 대륙에서는 군사개입을 진행 중이다. 이 정도면 정치적 힘겨루기는 물론 군사적 경쟁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국가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1945년을 기점으로 세계는 분명히 변했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른 여파였다. 미국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세우려 노력했다. 전쟁이 아닌 협상을 통해 국가 간 이견을 평화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국제기구를 만들고 규칙과 규범을 제정했으며 무역과 상업을 통해 세계 경제를 확대하고 모든 국가의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시장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또한 비인간적인 정책에 대한 보다 강력한 도덕적·법적 억지력을 갖추기 위해 기본적인 인권을 강조했다.

미국의 노력이 완전한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 소련과 그 동맹국들은 처음부터 이 같은 아이디어를 상당 부분 거부했다. 다수의 개발도상국들은 미국 주도로 구축된 시스템의 극히 일부만을 채택했다. 그러나 서유럽과 캐나다·미국은 사실상 평화와 경제·정치·군사적 협력을 이룬 경이로운 지역이 됐다.

물론 이들 사이에도 경쟁이 존재했지만 늘 성장과 자유·인권개선을 목표로 삼아 평화적으로 갈등을 해소했다. 수백 년간 사분오열됐던 유럽은 더 나은 일자리와 성장을 일구기 위해 이웃 국가들을 병합하거나 복속시키려 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평화의 구역’은 먼저 일본과 한국을 아우른 데 이어 소수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까지 끌어들였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은 붕괴했고 동구권의 많은 국가들도 개방된 국제질서를 향해 이동했다. 이 시스템의 중심에 미국이 자리 잡고 있다.

이후 미국의 대통령은 소속 정당에 관계없이 미합중국이 경쟁과 충돌을 기본으로 한 기존 국제질서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무언가 독특한 것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백악관에 입성한 트럼프는 이 같은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하는 듯 보였고 개방된 국제질서가 일궈낸 성과에 무지했다. 그는 정치·경제적으로나 도덕적 측면에서 미국과 가장 가까운 우방국들을 무시했다.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시진핑, 압둘팟타흐 시시, 로드리고 두테르테 등과 같은 스트롱맨을 찬양하는 발언을 일삼은 반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유럽의 거의 모든 지도자들을 폄하했다.

트럼프의 입장과 그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어쩌면 자유로운 국제질서를 서서히 부식시킬지도 모른다. 중상주의와 민족주의를 숭상하는 중국과 인도를 주축으로 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새로운 질서의 발흥을 의미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유럽의 재부상을 통해 기존 질서가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트럼프는 푸틴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방식으로 유럽대륙의 국가들을 결속시켰다. 바로 이 점을 강조라도 하듯 유럽 자강론을 내세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주 인도와 중국 총리를 잇달아 맞아들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푸틴과 마주 앉아 과거 미국의 대통령이 그러했듯 서구의 이익과 가치를 조목조목 짚었다.

트럼프가 서방세계의 종말을 초래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미국이 주도해온 새로운 질서의 핵심적 역할을 끝장낼 수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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