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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단종의 비극, 할아버지 세종이 원인 제공자?





20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단종의 비극, 할아버지 세종의 책임인가?’ 편이 전파를 탄다.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성군 세종대왕.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업이 있었으니, 바로 안정적인 후계구도를 완성하는 것. 그는 문종을 세자로, 단종을 왕세손으로 책봉하며 차근차근 차기 후계구도를 준비했는데. 하지만 세종의 사후, 아들 수양대군이 손자 단종을 죽이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비극의 불씨는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 위대한 성군, 세종의 유일한 실패

세종의 계획대로 안정적인 왕위계승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즉위 후 문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세종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문종. 워낙 후사가 늦어진 탓에, 왕세손이었던 단종이 열두 살의 나이로 즉위한다. 최연소 국왕의 탄생은 비극의 서막이었다. 왜 이렇게 문종의 후사는 늦어지게 된 걸까?

▲ 세 번 결혼한 남자, 문종

세종은 후계구도 안정을 위해 최고의 며느리감을 구하려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해준 배필과 금슬이 좋지 않았던 문종. 문종의 마음을 얻기 위해 민간의 주술까지 쓴 첫 번째 세자빈 휘빈 김씨, 잦은 음주와 동성애 스캔들의 주인공 두 번째 세자빈 순빈 봉씨까지. 급기야 세종이 직접 나서 2번의 이혼을 시키기에 이른다. 스펙터클했던 문종의 결혼생활로 들어가 본다.

▲ 왕실에 취업한 세종대 대군들, 화근이 되다?

조선 왕실에는 왕의 8촌 이내 친족은 벼슬을 하지 못한다는 ‘종친불사’의 원칙이 있었다. 이에 따라 대군이 정사에 관여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역사상 유일무이한 일이 일어난다. 대군들은 왕을 대신해 사신을 맞이하고 여러 관서의 책임자가 된다. 정사에 적극 참여했던 세종의 아들들, 세종은 왜 이런 선택을 한 걸까?



상왕이 말하기를 “주상이 어렸을 때부터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하였으니” <세종실록 권9>

세종의 유별난 고기 사랑은 기록에도 남아있을 정도. 하지만 육식을 즐기고 운동을 싫어했던 만큼, 젊을 때부터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재위 후반에는 관을 짤 정도였다는데. 이런 세종을 대신해 남겨진 과업들을 수행했던 세종의 아들들. 과연 그에게 남은 선택은 아들뿐 이었을까? 한의사에게 세종의 건강상태를 들어본다. 여봐라! 어의(御醫)를 불러오너라!

▲ 무엇이 단종을 죽였나?

세종이 수양대군에게 이르기를, “수양대군 너는 보통의 아들과 다르다, 나라의 안위에 관계된다.” <세조실록 권1>

출중한 능력을 가졌던 아들들은 세종에게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수양대군의 정치적 위상은 점점 높아지는데. 정사에 대군들을 등용했던 세종의 선택,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일까? 권력의 속성을 방기한 세종의 독선이었을까?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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