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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박쥐 인간’…언론의 날조 본능

‘달나라 박쥐 인간’…언론의 날조 본능

‘달나라 박쥐 인간’…언론의 날조 본능
‘달에 희한한 인종이 산다. 온몸이 털로 뒤덮이고 박쥐와 같은 날개를 가졌다. 이들이 사는 곳 부근에서 아름다운 호수와 루비·사파이어로 만든 거대한 궁전까지 관측됐다.’ 1835년 8월 25일부터 6일 동안 ‘선(The Sun)지’에 실린 ‘특종 기사’의 골자다. 독자들은 ‘존 허셜 경(卿)의 천체 대발견’이라는 제목이 붙은 충격적인 기사를 믿었다. 당대의 천문학자인 존 허셜이 학술지 ‘에든버러 과학저널’에 발표할 논문을 미리 보도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천왕성을 발견한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의 아들인 존 허셜은 천체 관측을 위해 4년간의 일정으로 19개월째 남아프리카에 머물고 있었다.

‘허셜이 4만 2,000배율, 무게 7톤짜리 거대한 천체 망원경을 제작해 아프리카 희망봉에서 관측한 결과’라는 보도에 독자들은 깜빡 속았다.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모두 엉터리였다. 허셜이 1834년 11월 천체를 관측하기 위해 남아공으로 떠났다는 소식에 의존한 소설이었다. ‘선’ 지가 얼토당토않은 엉터리 기사를 보도한 배경은 경쟁과 독자 확보. 창간 2주년을 앞둔 신생지 ‘선’은 독자 확보를 위해 날조 기사를 실었다. 독자들의 열띤 반응으로 6회까지 시리즈 기사가 나갔을 때 판매 부수는 1만 9,360부로 이전보다 3배가량 늘어났다.

엉터리 기사에 일반 독자뿐 아니라 전문가들도 당했다. 예일대 과학위원회는 문제의 논문이 실린 ‘에든버러 과학저널(Edinburgh Journal of Science)’의 원본을 구해달라고 ‘선’지에 매달렸다. 당연히 구할 수 없었다. ‘에든버러 과학저널’은 실존했던 과학학술지였지만 1년 전에 폐간됐으니까. ‘선’지는 시리즈 기사 연재 보름 뒤에 ‘사실은 허구’라는 사실을 밝혔다. 독자들에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정정기사 대신 ‘허위라는 주장도 일부 있다’는 기사만 실었을 뿐이다. ‘선’지의 보도를 추종 보도했던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 사과는 없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셈이다.

독자들도 엉터리 기사에 항의하지 않고 오히려 반겼다고 한다. 이 신문은 타블로이드판 염가 대중지(Penny press)로 ‘재미있는 소식’을 원하는 독자들의 요구에 맞춰 사건 기사를 주로 보도하는 신문이었다. 19세기 내내 승승장구하던 이 신문은 1950년 다른 신문과 통합돼 없어졌으나 언론의 역사에 영향을 미쳤다. 신문·방송사에 처음 입사한 신출내기 기자가 으레 듣는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 된다. 늘상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개를 문다면 그게 바로 기사다(When a dog bites a man, that is not news, because it happens so often. But if a man bites a dog, that is news)’라는 말도 이 신문의 편집국장인 존 보카트라는 인물이 지어냈다.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엉터리 기사였던 ‘달 기사 소동’은 ‘완전 엉터리 달 기사(Great Moon Hoax)’라는 별칭으로 역사의 모퉁이에 처박히고 말았을까. 글쎄다. 엉터리 기사와 가짜 뉴스(fake news)가 갈수록 기승이다. 한국 땅에서는 더욱 그렇다.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날조를 서슴지 않고 스스로 권력기관으로 여기는 언론사가 버젓이 ‘정론지’로 행세한다. 의도적인 왜곡을 일삼는 언론은 해악, 그 자체다. 언론이 제 기능을 찾으려면 내부의 반성이 우선이겠지만 나쁜 언론을 가려내는 독자들의 선구안도 필요하다. 좋은 독자가 좋은 언론과 좋은 역사를 만든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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