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사설] 아쉬움 남는 '이재용 판결'

명시적 청탁 없는데 뇌물 인정

여론 지나치게 의식한 판결 의구심

삼성 리더십 공백 장기화 우려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결국 실형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은 25일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뇌물죄 등을 적용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삼성의 전직 임원들도 3~4년 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정치권력에 뇌물을 제공했다”며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공여와 횡령·재산도피·위증 등 다섯 가지 혐의 모두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여 유죄로 판단했다. 무엇보다 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이었다. 최씨의 소유인 코어스포츠에 대한 지원분 72억원을 뇌물로 본 것이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 부회장이 최씨의 역할을 충분히 인지하고 지원과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셈이다. 이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작업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도움을 기대하고 정씨를 지원하는 등 뇌물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재용→최순실→박근혜’로 이어지는 뇌물 의혹의 연결고리를 재판부가 사실로 인정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다만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대한 지원은 무죄로 선고해 이와 관련된 다른 대기업들은 부담을 덜게 됐다.

1심 재판부가 고심 끝에 내린 판결은 존중해야 하지만 증거주의 재판이라는 원칙에서 볼 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재판부는 명시적 청탁은 인정하지 않았으면서도 묵시적 부정청탁이라는 이유로 뇌물공여를 인정하는 모순된 판결을 내렸다. 이른바 ‘수동적 뇌물’이라는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뇌물 공여 등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었는데도 단지 정황과 추정만 근거로 판단했다는 항변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 쪽 요구로 어쩔 수 없이 응한 것이자 강요의 피해자라는 삼성 측의 주장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감이다. 재판부가 기소된 5개 혐의 모두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형량을 가장 낮은 수준으로 결정한 것을 놓고 무리한 법 적용을 자인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며 정경유착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전형적인 정경유착 부패범죄라며 헌법 가치를 크게 훼손했다는 특검의 도를 넘은 기소장을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법원이 일련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국민 여론을 의식해 예단을 갖고 재판에 임했다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사실 판결을 앞두고 시민단체는 물론 정치권과 청와대까지 나서 여론몰이 공세를 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조계 일각에서 재판부가 이런 압박을 이겨내고 오직 법리와 증거에 입각해 판결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판결로 삼성은 리더십 공백의 장기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그렇잖아도 2월 이 부회장이 구속된 후 총수 부재 상태가 6개월 이상 이어진 터라 더 걱정이다. 외신들도 우려를 나타냈을 정도다. 로이터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시간) “이 부회장의 복역기간이 길어지면 중요한 결정을 할 사람이 없는 ‘리더십 공백’ ‘리더십 부재’에 빠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 AFP통신 역시 “리더십이 불투명해지면 삼성은 지금까지 성공의 근간이 됐던 과감한 대규모 투자에 속도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잖아도 이 부회장의 공백으로 삼성의 글로벌 비즈니스가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는 소리가 삼성 안팎에서 들리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신수종사업 육성 등에 들어가는 수조원대의 투자 결정에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데 삼성의 투자시계는 멈춘 상태다. 실제로 이 부회장 구속 이후 반년 동안 삼성은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1·4분기에만 30여개의 대형 M&A가 진행됐지만 삼성은 단 한 건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 사이 구글·애플 등 경쟁업체들은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관련 기업을 인수하는 등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삼성의 경쟁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리더십 공백은 눈앞에 있는 실적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의 의사결정은 적어도 10년 후를 내다보며 이뤄지는 것이어서 이 부회장 부재에 따른 악영향은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리더십 공백 장기화가 걱정되는 이유다.

삼성 측은 이번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할 것이라고 한다. 2심에서는 여론이나 정치권의 압력에 휘둘리지 말고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유무죄를 판단해야 한다. 항소심 재판부가 철저하게 증거를 다시 따져 현명하고 신중한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