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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자판기'를 통해 '책 it out'이 보내는 '두근거리는 초대장'

대학교 내 학회에서 사회적 캠페인으로 시작

3년 전부터 준비해 지난 6월 대학로에 첫선

헌책방 주인들과의 소통을 통해 신뢰 얻어

활동을 통해 진로가 바뀐 팀원도 있어

‘인액터스’(Enactus) 연세대지부 산하 ‘책 it out’(책잇아웃)팀의 이현진(상단 오른쪽부터 시계방향)팀장, 최용우·현지윤·허빈 팀원이 3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의 한 건물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종호기자




세상에서 단 두 대밖에 없는 자판기가 있다. 추리, 로맨스, 여행, 지식교양, 아동, 자기계발, 힐링, 랜덤 등의 총 8개 분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무작위로 책을 추천해주는 색다른 자판기다. 자판기에서 나오는 책들은 청계천 헌책방 주인들의 ‘간택’을 받은 물건들이다. 현금 5,000원이나 신용카드를 넣으면 자판기에서 책이 어떤 장르인지 알 수 없게 상자로 포장돼 나온다.

이 이색 자판기의 이름은 ‘설렘자판기’다. 지난 6월 10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 첫선을 보인 설렘자판기는 두 달간 총 700여권, 400만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며 인기를 끌었다. 최근 문을 연 고양 스타필드 ‘텐바이텐’ 매장에 2호기를 설치하면서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입소문까지 타고 있다.

설렘자판기를 만든 이들은 국제 비영리 단체 ‘인액터스’(Enactus) 연세대지부 산하의 ‘책 it out’(잇아웃)팀이다. ‘인액터스 연세’는 기업가 정신의 실천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 혁신을 추구하는 경영학회다. ‘책 잇아웃’ 팀은 헌책의 가치를 제고하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찾고 싶은 청계천 헌책방 거리 조성’을 위해 ‘설렘자판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책 it out’(책잇아웃)팀이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나가 헌책 큐레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헌책방 주인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인액터스’(Enactus) 연세대지부의 ‘책 it out’(책잇아웃)팀


△3년의 결실 ‘설렘자판기’, 이제 시작일 뿐

사실 설렘자판기는 3년 전 시작된 프로젝트다. 청계천 헌책방이 점점 활력을 잃어가는 것을 본 학생들이 ‘책잇아웃’이라는 이름으로 ‘헌책방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 한창 성수기였을 당시 청계천에만 200여개 업체가 밀집해 있던 헌책방이 지금은 약 20개도 남지 않을 정도로 존립 자체가 어려운 지경에 이른 모습에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책잇아웃’팀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청계천 헌책방 주인들과의 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속된 매출 감소로 인해 헌책방 업계는 외부인에 대해 대단히 폐쇄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프로젝트 설명을 위한 접근부터 쉽지 않았다. ‘책잇아웃’ 팀장인 이현진씨(21·경영학 2년)는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하면서 학생들이 도와준다고 나섰을 때, 그분들께 확신을 드릴만 한 뭔가가 없어서 꺼리신 것이 사실”이라며 “소통을 계속하면서 한 분, 한 분이 좋은 분이라는 알게 됐고, 신뢰를 쌓아가면서 참여 의지를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들을 찾아와 살갑게 구는 학생들을 헌책방 주인들도 더는 외면하지 못했다. 학생들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헌책방 주인들이 누구보다 학생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있다. 팀원인 최용우씨(24·산업공학 4년)는 “저희가 가는 날은 항상 기다리고 계세요. 같이 밥 먹자고 하시고 보고 싶어 하신다”며 “그럴 때마다 그분들의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설렘자판기는 온전히 헌책방 주인들을 위한 수익 구조로 돼 있다. 설렘자판기의 책 가격은 5,000원으로 고정돼 있다. 책 가격에서 2,700원 정도가 수익으로 잡히고, 나머지는 자재 비용, 배송비, 입점 수수료 등으로 쓰인다. 최씨는 “1950년대 초반부터 운영되던 헌책방들이 대형서점, 온라인서점 등의 확장으로 경쟁력을 상실해 쇠퇴했다. 이를 살리기 위해 만든 것이 설렘자판기”라며 “설렘자판기가 그분들을 위한 수익구조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책 it out’(책잇아웃)팀이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나가 ‘설렘자판기’ 상품을 들어보이고 있다./사진=‘인액터스’ 연세대지부의 ‘책 it out’(책잇아웃)팀


△고양 스타필드 내 ‘신박 아이템’, 설렘자판기의 탄생기

학생들이 처음 내놓은 비즈니스 모델(BM)은 온라인 판매 랜덤 북박스인 ‘설레어함’이었다. 도서 큐레이션이 가능한 헌책방 주인들이 소비자가 선택한 주제에 따라 책을 골라 배송해주는 사업이다. 설레어함은 온라인 쇼핑몰 옥션 도서 코너에 정기 입점해 8,000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학생들은 더 나아가 설레어함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설렘자판기다. 설레어함과 책을 추천해주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오프라인에서 고객들이 곧바로 책을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 설렘자판기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대당 500여만원에 이르는 자판기 설치비용은 학생들이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다행히도 ‘책잇아웃’이 한국 사회적 기업 진흥원에서 주최한 ‘소셜 벤처 동아리 지원사업’ 공모전에 당선돼 150만원의 지원금을 받게 되면서 첫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팀원들은 당시를 ‘가뭄 끝에 비가 온 상황’이라고 회상했다.

‘책잇아웃’팀은 이 지원금과 이전까지 모아 놓은 자금을 바탕으로 대학로 ‘텐바이텐’ 매장에 첫 번째 설렘자판기를 설치했다. 자판기 디자인은 감성 문구 전문업체인 ‘텐바이텐’ 디자인팀의 도움을 받았다. ‘텐바이텐’의 조언과 학생들의 의견이 합쳐져 지금의 설렘자판기의 모습이 탄생했다.

‘책잇아웃’팀은 앞으로 설렘자판기 설치를 확대할 계획이다. 고양 스타필드 입점 후 반응이 좋아 더 많은 곳에 설렘자판기를 설치할 수 있는 여건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책잇아웃’ 팀원인 현지윤(23·영어영문학 4년)씨는 “개점 후 일주일 정도가 지났는데 매출이 점점 오르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며 “기존 자판기 수익에 더해 다음 스토리펀딩과 피플펀딩 등 크라우드펀딩에서 진행 중인 모금으로 추가적인 자금을 마련한다면 더 많은 설렘자판기가 설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 ‘책잇아웃’, 힘들지만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

‘책잇아웃’팀의 일상은 오롯이 학회 활동을 위해 맞춰져 있다. 학기 중에는 일주일에 2~3번 회의를 갖고, 비교적 여유가 있는 방학 때는 일주일 내내 얼굴을 맞대고 향후 프로젝트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간다. 최씨는 “영어학원에도 가지 못 하고 이성 친구를 만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며 “직접 청계천에서 사장님들의 큐레이션을 돕고 포장까지 하기 때문에 시간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팀원인 허빈(21·창의기술경영학 2년)씨는 “학회 활동 중에도 수업과제, 시험 준비, 퀴즈 등 학업에 대한 압박이 있다 보니 일일이 일정을 기억하기 힘들어 학회 기록장을 따로 샀을 정도”라며 “활동에 대한 압박이 생기기도 하지만 만족감을 느끼면서 두 가지 활동을 잘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활동에는 살면서 주위 이웃을 돌아보지 못했던 반성이 담겨있다. 이씨는 “개인적으로도 자신과 주변 집단만 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뭔가 사회에 아주 미미하지만 한 점을 찍는 활동을 해보고 싶은 생각에서 이 활동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회 활동을 통해 진로가 바뀐 팀원도 있다. 현씨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탓에 학회 활동 전에는 막연히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대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며 “‘책잇아웃’ 활동 후 경영을 통해서도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돼 진로가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책잇아웃’팀의 궁극적 목표는 헌책방 거리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이씨는 “당장의 수입보다 헌책방 거리가 젊은 소비자에게 알려져 만족하는 헌책방 주인들의 모습을 꼭 보고 싶다”며 “그 모습이 그분들이 원하시는 가장 큰 소망일 것”이라고 말했다.

설렘자판기를 찾는 고객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허씨는 “좋은 책을 받아보고 싶다는 설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오묘한 기분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설렘자판기를 찾아달라”고 말했다.

/이종호기자 조은지인턴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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