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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북핵이 뉴욕을 휩쓴 이유





지난 한 주 북핵이 뉴욕을 블랙홀처럼 집어삼켰다. 유엔본부가 위치한 뉴욕 맨해튼은 유엔총회 기간 동안 전 세계 100여개국 정상급 지도자들이 집결하며 북새통을 이룬다. 각국 정상의 수만큼 다양한 이슈들이 세계 최대의 외교무대를 장식하지만 올해는 세계를 뒤덮은 기후변화 이슈조차 북핵과 비교하면 조족지혈로 보일 정도였다. 뉴욕타임스(NYT)·월스트리트저널(WSJ)·NBC·CNN 등 미 주요 매체들도 지난 일주일 동안 한국 매체들 못지않게 연일 북핵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뉴욕에 북핵 태풍을 몰고 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이번 총회는 세계 최강국을 이끄는 ‘예측 불허’ 수장의 첫 유엔 무대 데뷔로 일찌감치 세계의 이목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 쏠렸는데 그가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것” “로켓맨(김정은)은 자살 임무 수행 중” 등 자극적 발언들을 쏟아내자 함께 언급했던 유엔개혁이나 기후변화 등의 테마는 순식간에 증발하고 북핵만 남았다.

그 덕에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다. 북한 외무상은 4년 연속 유엔총회에 참석해온데다 외교장관은 의전 서열상 대통령·총리에게 밀려 총회장은 물론 뉴욕의 공항과 호텔에서도 전혀 이목을 끌지 못하기 마련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지목에 리 외무상에게로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린 것이다. 뉴욕에서 4박 5일을 머문 리 외무상이 트럼프가 던진 말 폭탄에 응수해 뱉은 “태평양에서 수소폭탄 실험”이나 “미국의 선전포고에 자위권 발동” 등의 말은 주요 외신들을 타고 또 한 번 미 전역을 흔들었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과 막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미국 대통령이 가세해 ‘미치광이 전략’을 쓰자 안보전문가들은 “의도치 않은 충돌이 한반도에서 어이없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여론 변화에 민감한 편인 기자 입장에서 더 두려운 것은 트럼프의 ‘군사옵션’ 발언이 한두 차례의 구두경고에 그치지 않고 수개월 동안 신문 1면에 단골로 오르면서 미국인들의 뇌리 속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을 수도 있는 일’로 바뀌는 상황이다. 트럼프를 아는 미국인들은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을 경계한다. 월가의 한 중견 투자자는 최근 기자에게 한국 관련 자산을 40% 정도 매각했다고 밝히면서 “북한은 리스크가 아니지만 트럼프는 리스크”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북핵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트럼프 리스크’를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탄탄한 한미 동맹이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한국이 대북 관계 개선을 주도할 수 있다고 믿은 듯하다. 단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북한을 계속 위협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면 지난 7월 그렇게 쉽게 메아리 없는 군사회담 제안을 북측에 했을까 싶다.

문 대통령이 귀국한 뒤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닷새나 더 미국에 남아 뉴욕과 워싱턴DC를 동분서주한 배경을 외교적 수사로 덮는다고 해서 국민의 불안감이 해소될 것 같지도 않다. 출범 9개월이 지나도록 트럼프 정부가 주한 미국대사를 지명하지 않고 있는 것이 백악관에서 느끼는 문재인 정부의 무게감이라면 지나칠까. 언론을 앞세워 일본 정부가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한편으로 빌미를 줬다는 지적 역시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허약하고 내공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지만 시기가 워낙 위중해 교체할 타이밍은 아니다. 그렇다고 탄핵과 정권 교체 와중에 자리 보존에 급급했던 외교 관료들이 저만치 이미 떠나간, 보통 대통령과는 생각과 목표조차 다른 트럼프를 드라마틱하게 설득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데도 한계가 분명하다.

국력의 100%를 총동원해 전쟁을 하듯 전쟁을 막는 일에도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없다”고 선언한 명제를 현실적으로 뒷받침해줄 강력한 원군이 재계에 있다. 대기업의 한 총수는 미 공화당 출신 전직 대통령과의 회동도 바빠서 망설이다 짬을 내서 잠시 만났다고 할 만큼 미국 조야에 인맥이 두텁다. 외교도 기업처럼 다루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업인들에게 청와대가 마음의 문을 열고 적극 다가가야 한다. /뉴욕=손철 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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