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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종교개혁 500주년과 퇴행하는 한국교회

안의식 탐사기획팀장

면죄부 판매처럼 기복 신앙 만연

종교인 과세 반대 명분 밀리자

이젠 '세무조사 안 받겠다' 주장

목회자들, 철저히 반성·개혁해야





대학생 때의 일이다. 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때 그 교회의 장로가 생일을 맞았다. 그런데 생일잔치가 너무 성대했다. 유력한 장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들이 청년예배 주보에 “예수님은 돈과 권력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올렸다. 그러자 담임목사가 주보 배포를 못 하게 했다. 이 일로 한동안 청년들과 담임목사가 갈등을 빚었고 상당수의 청년이 교회를 떠나갔다.

오늘로부터 정확히 500년 전인 1517년 10월31일 독일 동부의 한 소도시 비텐베르크. 한 수도사가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종이 한 장을 붙였다. 당시 가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다.

반박문 27번에서 루터는 “돈이 헌금함에서 쨍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이 연옥에서 해방된다고 꾸며대는 사람들은 인간의 허튼소리를 설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최고의 면죄부 판매 설교자였던 수도사 요하네스 테첼과 교황청을 겨냥한 것이었다. 테첼은 “성모 마리아를 강간해도 면죄부만 사면 깨끗이 벌을 용서받을 수 있다” “현세의 자손들이 낸 동전이 헌금함에서 ‘쨍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조상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직행한다”며 면죄부를 팔았다.

500년 전 돈으로 면죄부를 샀듯 오늘의 한국 교회 역시 돈으로 구원과 복을 살 수 있다는 기복 신앙이 만연해 있다. 목회자들은 “헌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 물질적으로, 사회적으로 큰 복을 받는다”며 이를 부추기고 있고 성도들 역시 “큰 복을 받는다는데 그 정도 돈쯤이야…”라며 ‘헌금 투자’를 하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 교회의 반성과 개혁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로 끝나가고 있다. 아니 ‘역시나’를 넘어 ‘한국 교회가 이렇게 국민들로부터 멀어져가는구나’ 하는 탄식만 깊어지는 모양새다.

종교인 과세를 둘러싼 논란과 그로 인한 민심이반이 하나의 이유다. 종교인 과세는 이제 내년부터 실제로 시행되는 분위기다. 지난 1968년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이 종교인 과세 추진을 발표한 후 50년 만이다. 종교인 과세에 반대하는 기독교계 일부는 그동안 ‘이중과세론’ ‘노동과 성직의 구분’ 등을 근거로 반대해왔다. 하지만 명분론에서 확연히 밀리자 이제 더 이상 그 얘기는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소득세는 낼 테니 세무조사만이라도 받지 않도록 해달라’며 정부에 매달리고 있다. 공식적인 이유는 ‘정교 분리’, 그리고 이단 등 음해 세력에게 교회가 공격당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무슨 불투명한 돈이 그렇게 많아 세무조사도 받지 않겠다고 애쓰나’ 하는 의혹 또한 사고 있다. 사랑과 희생·봉사 등 공동체의 가치 실현에 가장 앞장서야 할 교회가 공동체의 가장 기본 중 기본인 납세 문제를 그렇게 회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반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최근 기독교계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명성교회 세습도 안타까운 사건이다. 교회 세습이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에 따르면 자녀나 배우자·사위에게 직계 세습 또는 변칙 세습한 교회는 서울에 54개 교회 등 전국적으로 140개 교회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명성교회 세습은 남다르다. 명성교회는 교인 수 8만명의 국내 장로교 최대의 교회다. 명성교회 창립자이자 원로목사인 김삼환 목사는 한국 기독교계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수차례 교계를 대표해 대통령 면담도 했다.

김삼환 목사가 만 70세를 넘어 은퇴하던 2015년 말 이후 명성교회는 세습을 부인하며 ‘담임목사청빙위원회’를 꾸렸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제 아들 김하나 목사로의 세습이 공식화돼 마무리되는 단계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세상을 구원했다. 이렇듯 기독교는 ‘나를 죽여 나도 살고 세상도 살리는 종교’다. 하지만 이미 이 땅의 영광과 권력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예수가 다시 온다면 무슨 말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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