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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J노믹스 찾다 길 잃을라

권구찬 논설위원

'가보지 않은 길' 이라지만

이미 '지도에 없는 길' 밟아

노동·규제개혁 해법 있는데

굳이 없는 길 찾아 헤매는가





정부가 J노믹스(문재인 정부 경제정책)를 설명하면서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말했을 때 깜짝 놀랐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표현이라서다. 아닌 게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실세였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지난 2014년 7월 취임 첫날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정책 방향을 확 바꿔버렸다. ‘축소균형’의 함정에서 벗어나자며 확장적 재정정책도 꺼내 들었다.

가보지 않았으니 지도에 없을 테고 지도에 없는 길을 가볼 턱이 만무하니 두 표현은 다를 게 없다. 하필 3년 전 최 경제부총리가 한 말과 흡사한 표현을 썼을까. 일단 그것부터 의문이다. J노믹스 설계자들은 이런 비유가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뛸 것이다. 어디 비교할 것이 없어 적폐 세력의 정책과 닮았다니, 웬 헛소리냐고.

얼굴부터 붉힐 게 아니다. 두 길을 따져 보자. J노믹스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소득주도 성장이다. 가계소득이 오르면 소비증진->내수활성화->기업투자증가로 이어져 다시 가계소득이 오른다는 성장론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여태껏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이 아니다. 전 정부가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큰소리쳤건만 얼마 안 돼 길을 잃고 말았다. 최경환 경제팀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불러다 임금을 인상하라고 압박했다. 일부 기업이 화답하기는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지금의 논란거리인 최저임금 인상 폭을 8년 만에 최대로 끌어올렸다. 이뿐이랴.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수단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법인세를 깎아줬는데도 투자와 고용이 늘지 않았으니 법인세 인하분만큼 토해내 가계로 돌리라는 주문이었다. 기업은 일자리와 임금을 올리기보다는 손쉬운 배당 확대로 세금 폭탄을 피해갔다. 기업소득의 가계 재분배 정책은 그렇게 무력화됐다. 지도에 없는 길을 찾아 헤매는 사이 경제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2015년 성장률은 3%를 밑돌았고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로 올랐다. 부동산 거품과 가계 빚만 부풀린 채 말이다.



J노믹스는 일자리와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네 가지 축으로 움직인다. 일자리중심 경제는 용어부터 새로울 게 없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주야장천 외쳐온 말이다. 최근 10년여간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의 핵심 키워드가 바로 일자리 창출이다. 그럼 혁신성장은 어떨까. 신산업·신기술에 한해 규제를 과감히 풀어준다고 했는데 여전히 말 뿐이다. 아직 개념조차 모호하다. 창조경제와 다를 바 없고 4차 산업혁명을 살짝 얹을 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두 정책이 엇비슷하다고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다만 현 정권이 실패한 정부로 규정한 전 정권의 길을 굳이 따라가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말하는 것부터 난센스다. 빚내서 집사기를 부추겼던 당시 정책과는 다른 게 있고 강도의 차이가 나지만 싱크로율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50%를 넘는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벌써 들린다. 최저임금을 너무 올린 탓에 여권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가계소득을 어떻게 올릴지 막연하기만 하다. 직장인이라면 기업의 활력이 돋아야 하고 자영업자라면 장사가 잘 되는 수밖에 없는데 임금부터 올리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부담에 혁신성장의 주역인 중소·중견기업은 지금 죽을 맛이다. 3년 전 그랬던 것처럼 소득주도 성장은 단기 부양책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내년도 경제운용방향 수립을 앞두고 세종시 관가는 새 길을 찾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다. 헤매지 않을 길은 있다. 기업의 어려움을 풀어줄 규제 혁파,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노동개혁, 쓰지만 보약이 될 구조조정이 그런 길이다. 자주 가봐서 너무나 익숙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행로다. 누구나 아는데 아무도 가고 싶지 않은 길, 그것이야말로 ‘가보지 않은 길’이다.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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